기억의 여행

by 우물

“자네는 항상 뒤를 돌아보며 앞으로 걸어 나가는가?” 아니면 “자네가 보는 것은 항상 자네 등 뒤에 있는 것인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네의 여행은 항상 과거 속에서 진행되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탈로 칼비노


칼비노의 글을 읽으며, 우리가 만난 시간들을 떠올렸다.
내가 문장을 적고 이야기를 건네는 행위는, 어쩌면 칼비노가 말한 그 '뒤를 돌아보는 걸음'과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내뱉는 말과 써 내려가는 글들은 결국 내가 이미 밟아온 시간들의 말라붙은 자국들일지도.
나의 이야기는 현재라는 지점에 서 있으나 그 뿌리는 늘 과거의 어느 깊은 토양에 닿아 있다.

우리는 길 위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며 나아간다고 믿지만, 사실 그 길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표지판의 화살표가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과 이전에 겪었던 경험들의 찌꺼기이다.
마르코폴로는 쿠빌라이칸을 만나기 위해서 여행을 한 것일까.
아니면 여행을 하다 보니 쿠빌라이칸을 만난 것일까.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서 여행을 했던 것일까.
아니면 여행을 하다 보니 너를 만난 것일까.

마르크샤갈, 도시 위에서


마르코 폴로가 자신이 지나온 수많은 도시의 기호들을 쿠빌라이 칸에게 바쳤듯, 나 또한 당신을 만나 내가 즈려밟고 지나온 시간의 풍경들을 이야기한다.
같은 시간을 같은 공간을 지나왔음에도, 너와 나의 궤적은 이름 모를 이국(異國)의 도시만큼이나 생소했을 것이다. 그래서 너의 이야기를 듣는 나의 눈동자도 나의 이야기를 듣는 너의 눈동자도 그렇게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것일까.

과거는 그곳을 떠나는 순간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지지만
누군가의 입술을 통해 다시 발화되는 순간 비로소 선명한 형태를 얻고 생명을 되찾는다.
기억의 풍경은 시간의 풍화로 흐릿해지지만, 그 순간을 감싸던 감정의 온도는 화석처럼 단단하게 남는다.
내가 이야기하는 도시와 시간의 묘사들은 결국 실체의 형상이 아니라, 그 시간을 보내며 쌓여온 내 마음이 그려낸 형상일 뿐이다.

언젠가 당신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조차
먼 훗날 우리가 가보지 못한 어느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피어오를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뒤를 돌아보며 앞으로 걷고 있으며, 그 걸음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문장으로 붙들며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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