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옷장 문을 열면, 그곳엔 계절의 감각을 상실한 겨울 코트들이 매달려 있다.
무겁고 어두운 색조의 외투들 사이로 기운 없는 셔츠 한두 벌이 위태롭게 걸려 있고, 몇 장 되지 않는 바지들은 서랍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구겨져 있다. 문득 옷을 꺼내며 옷장의 풍경이 마치 지금 내 삶의 풍경인 듯 느껴진다.
어머니는 옷장사를 하셨다.
타인의 실루엣을 만지고 옷감을 고르는 것이 그녀의 업이었다.
덕분에 어린 시절의 나는 옷 입는 법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아들의 옷만큼은 결코 촌스럽지 않게, 좋은 것으로만 골라 입히셨다. 옷장사를 하던 어머니의 손길은 내 몸 위에 가장 세련된 질서를 부여하곤 했다.
어머니는 화장을 즐기지 않으셨지만, 유독 빨간 립스틱만큼은 잊지 않고 바르셨다.
그 선명한 붉은색은 고단한 삶의 현장을 버티게 하던 그녀만의 인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언제나 그 강렬한 붉은색과 닮아 있었다.
그녀가 골라주던 옷감들 사이로 배어 나오던 그 치열하고도 따스했던 붉은빛.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나만의 옷장'을 갖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이후였다. 2003년, 홀로 마주한 옷장은 형태상으론 이전과 다를 바 없었으나, 그 문을 열 때마다 쏟아지는 적막은 나를 슬프게 했다.
브라운 계열의 바람막이 하나, 무채색의 점퍼와 코트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샀던 검은 정장이 전부였던 그 빈약한 영토. 어머니가 부재한 옷장은 순식간에 색을 잃고 무채색의 겨울 속에 갇혀버렸다.
나는 그 보잘것없는 옷들을 차마 버리지 못했다. 일본 유학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십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 낡은 섬유들은 내 삶의 유적처럼 옷장에 박제되어 있었다.
그것은 옷이라기보다 어머니와 연결된 마지막 탯줄 같은 것이었다.
결국 내 손이 아닌 아버지의 투박한 손에 의해 그 흔적들이 처분될 때까지, 나는 차마 그 문을 닫지도, 그렇다고 비워내지도 못한 채 서성였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옷장을 '질서의 상징'이라 불렀다.
차곡차곡 쌓인 옷가지들은 인간이 자신의 삶과 기억을 정리하려는 본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십 년 넘게 낡은 옷을 품어왔던 나의 옷장은 어떤 질서를 염원하고 있었던 걸까.
아마도 그것은 상실이라는 거대한 혼돈 속에서,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온기라도 붙잡아 두려는 처절한 기억의 정돈법이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계절에 관계없이 걸려 있는 어두운 코트들을 본다.
이제 옷장 안에 어머니의 붉은색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지만, 어두운 코트 깃을 세울 때마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던 그녀의 단단한 얼굴이 떠오른다.
나의 옷장은 여전히 무겁고 어둡다.
하지만 이 어둠은 단순히 색의 부재가 아니라, 어머니라는 가장 뜨거웠던 색채를 기억하기 위해 내가 스스로 선택한 고요한 배경지일지도 모르지.
옷장 문을 닫는다.
오늘은 그 옷장의 닫힌 문틈 사이로, 2003년의 그 서글픈 공기와 어머니의 붉은 기억이 묘하게 교차하며 가슴 한구석에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