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폴리네르와 화가 로랑생의 가슴아픈 사랑
파리의 공동묘지는 우리와는 달리 혐오시설이 아니다. 봄에는 온갖 종류의 꽃들이 피어나고 여름이면 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며 가을에는 알록달록 단풍이 지는 공원이다. 그래서 공동묘지에 가면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파리 시내에 여러 개의 공동묘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파리 북동쪽에 자리 잡은 페르라세즈 묘지인데(연 방문객 200만 명 이상), 가장 넓어서이기도 하고(44 ha) 프레데릭 쇼팽이나 에디트 피아프, 짐 모리슨, 오스카 와일드 등 우리가 잘 아는 유명인사들이 묻혀 있기도 해서다.
1804년에 문을 연 이 묘지는 처음에는 파리에서 멀어 겨우 13구의 무덤밖에 없었지만,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몰리에르, 라퐁텐 등 소위 유명인사(?)들의 무덤을 이곳으로 이장하면서 지금은 약 7만 구의 무덤이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전시회를 끝낸 프랑스 화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incin,1883-1956)의 무덤도 여기 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우리 사랑도 흘러간다
기억해야 할까나
아픔 뒤엔 늘 기쁨이 찾아왔었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도 나는 늘 여기 있네...”
https://www.youtube.com/watch?v=CxbFjljl7o8
입체파 화가들의 뮤즈였던 그녀는 1907년 피카소의 소개로 귀욤 아폴리네르(1880-1918)를 만나 5년 동안 열렬한 사랑을 나누었으나 결국 헤어졌고, 아폴리네르는 결별의 아픔을 우리가 잘 아는 이 명시 <미라보 다리>에 녹여냈다.
“칼리그람”이라는 시각적 형태의 시를 만들어내기도 했던 아폴리네르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 중 머리에 포탄 파편을 맞아 몸이 약해져 결국 스페인감기로 숨을 거두었고, 그로부터 38년 뒤에 세상을 떠난 로랑생은 다른 사람이랑 결혼했지만 평생 아폴리네르를 잊지 못하여 죽을 때 한손에는 그의 시집을, 또 한손에는 장미를 들리고 흰색 드레스를 입혀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그녀의 유언은 그대로 지켜졌다.
다음 그림은 루소가 그린 아폴리네르와 로랑생이다.
아, 남녀의 사랑이란 얼마나 모질고 징한가.
이 두 연인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5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다) 묻혀 있다. 선돌 모양을 한 아폴리네르의 묘석은 피카소가 설계했고, 비용은 피카소가 마티스와 함께 그림을 경매에 부쳐 조달했다. 그리고 묘석에는 그의 시집 ≪칼리그람≫ 중 <언덕>이라는 시 일부(그의 죽음을 언급하는)와 심장 모양을 한 칼리그람 시(“뒤집혀진 불꽃과 흡사한 내 심장”)가 새겨져 있다.
https://www.thefrenchcollection.net/blank-27
이재형 작가는 20년째 프랑스에 살면서 113종의 불어 도서를 번역하였다.
(<나는 걷는다 끝>(베르나르 올리비에), <꾸뻬씨의 행복여행>(프랑수아 를로르),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그로), <세상의 용도>(니콜라 부비에), 등). 2018년 6월 출간 예정인 본인의 저서 <프랑스를 걷다>에서는 파리와 르퓌 순례길을 걸었던 경험들을 글과 사진으로 남겼다.
한국에서 프랑스의 풍경을 담은 두 차례의 사진전을 연 사진작가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