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없는 목수로 살 운명이라면 스스로에게 좋은 연장이라도 선물하며 살자
“도대체 뭐가 들었길래 이렇게 무거워요?” 내 가방을 잠시 건네받은 사람 열에 아홉은 그 무게에 놀란다. 언제나 나는 보따리장수처럼 너무 많은 짐을 지고 다닌다. 물건으로 가득 차 앞뒤로 불룩해진 천 가방에는 이런 것들이 들어 있다.
짙은 밤색 가죽 커버로 감싼 일기장과 읽을 책 조금(조금이라고 표현했지만 보통 두 권 이상이다. 독서에도 단짠단짠의 법칙이 적용되는지 에세이를 읽다 보면 소설이 읽고 싶어지고, 소설을 읽고 나면 시가 당긴다). 그리고 뜻밖의 여유 시간이 생길 것을 대비한 태블릿 PC(텍스트 노동자에게는 늘 마감하지 못한 원고가 있다). 여
기에 필름 카메라나 마실거리 정도가 옵션으로 추가된다. 따로 무게를 재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3킬로그램은 넘을 게 분명하다.
TPO라고 하던가. 멋쟁이들은 가방도 상황과 장소에 맞게 바꿔 든다던데. 나는 매일 같은 가방만 멘다. 출근할 때도 산책할 때도 여행을 떠날 때도. 잡동사니로 가득 찬 천 가방을 고집한다.
사실 내 가방에 든 물건 대부분은 글을 쓰기 위한 도구들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글 쓰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한 물건들. 쓸데없이 무겁고 비싼, 실용성이라곤 없는 것들. 기껏 가지고 나가서 막상 가방 밖으로 꺼내지 않는 물건도 많다. 그래도 일단 몽땅 가지고 다녀야 안심이 된다.
“글 쓰는 김혜원입니다”라고 나 자신을 소개할 수 있기를 오랫동안 꿈꿔왔다. 이제껏 나는 ‘어떤 선택을 하면 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인생의 방향을 정해왔다.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던 것도, 인생은 잡지사 에디터가 됐던 것도, 저녁 있는 삶과 주말을 자진 반납해가며 기어코 책을 냈던 것도(전국의 n잡러 분들 존경합니다). 모두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매 순간 나는 조금씩 부족했다. 스무 살 때부터 꾸준히 글을 써왔지만, 혼자 일기를 끄적이는 수준이었으므로 어디 가서 당당하게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진 못했다. 적어도 글로 밥벌이는 해야 글 쓰는 사람으로 불릴 만한 자격이 생길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잡지사 에디터가 됐지만 안타깝게도 직업 정체성을 ‘글 쓰는 사람’으로 규정하진 못했다. 매주 적지 않은 분량의 기사를 써내긴 했다. 다만 온전히 내 이야기를 담은 내 글이 아니었으 므로 글을 쓰며 산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에디터 5년 차, 드디어 내 이름이 적힌 책을 대형 서점에서 팔게 됐을 때도 상황은 여전히 비슷했다. 무명작가는 스스로에게조차 의심을 샀다. 잠깐 존재했다가 잊힌 책(보통 한 달이면 매대에서 사라진다) 몇 권 낸 사람을 작가라고 부르는 게 맞나. 베스트셀러 정도는 돼야 작가라고 불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창작자로서 가장 괴로운 순간은 내가 만든 작품이 그저 그렇다는 걸 스스로 깨닫는 때라고 한다. 내가 가진 능력이 너무 보잘것없어서. 내 작품을 알아봐주지 않는 세상이 야속해서. 뽀시래기 창작자는 자주 외로웠다. 가끔 회의감이 큰 파도처럼 밀려와 마음이 멀리까지 떠내려가기도 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잠도 못 자고 스트레스만 왕창 받아가며 사서 고생을 하나. 아무도 내 글을 원하지 않고, 돈도 별로 못 벌고 힘들기만 한데. 그냥 다 때려치우고 회사나 열심히 다니는 게 현명하지 않나. 글을 계속 써야 할 명분이 없어서 속이 쓰린 밤이 지속적으로 반복됐다.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꺼내 보는 노트가 하 나 있다. 그 노트를 손에 넣은 건 10년 전, 꼭 가고 싶었던 잡지사 면접을 시원하게 말아 먹은 이십 대의 어느 날이었다. 한껏 초라해진 채로 친척 언니를 만났다. 마침 약속 장소는 광화문 교보문고였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내 손을 잡고 언니는 문구 코너로 갔다. 그리고 고흐와 헤밍웨이가 애용했다는 고급 노트 앞에 나를 세웠다.
“마음 변하기 전에 얼른 하나 골라. 언니가 쏜다.”
취준생 생활비로는 엄두를 내기 힘든 비싼 노트였다. 나는 잠시 기뻐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 주제에 무슨 몰스킨이야. 나중에 진짜 글 쓰는 사람 되면 그때 사줘.”
“야! 그러면 지금은 가짜 글 쓰는 사람이냐? 인생은 ‘장비빨’이야. 좋은 장비가 있어야 좋은 글을 쓰지. 일단 사.”
그날 언니가 사 준 빨간 노트를 일종의 증표처럼 간직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좋은 노트에 손글씨로 날마다 일기를 쓰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유치하지만 그 자부심으로 누추한 현실을 견딜 수 있었다.
옛말에 ‘실력 없는 목수가 연장 탓한다’는 말이 있고, 어차피 실력 없는 목수로 살 운명이라면 스스로에게 좋은 연장이라도 선물하며 살자는 게 나의 입장이다. 물론 진짜 실력자는 이면지 위에 판촉물 볼펜으로 휘갈겨
도 좋은 글을 쓸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좋은 연장을 쓴다는 자부심이라도 필요하니까. 아무리 생활비가 쪼들려도 글을 쓰기 위한 도구, 그러니까 노트나 책을 사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손으로 만져지는 근사한 무언가가 있으니 어쩐지 ‘글 쓰는 삶’에 닿은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글을 쓸 때의 나는 다소 유난을 떠는 편이다. 일기는 문 구 브랜드 미도리에서 나오는 여행자 노트에 모나미 153으로만 쓴다. 독서는 종이책으로만 하고 밑줄 그을 용도로 쓰는 굵은 연필을 따로 챙겨 다닌다. 회사에서 지급한 노트북은 회사 업무를 처리할 때만 쓰고 싶어서, 오직 에세 이를 쓰기 위한 태블릿 PC와 타자기까지 따로 샀다. 1년에 한두 번 글을 쓴다는 명목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시답잖은 글 좀 쓰면서 이 야단을 피우는 게 남들 눈엔 우스워 보이려나. 예술가 코스프레 하는 어린애라고 무시하려나. 속으로 혼자 섀도복싱을 하다가 스스로를 설득한다.
‘이건 생활인에서 글 쓰는 삶으로 넘어가는 나만의 의식 같은 거다. 뽀시래기 창작자를 자괴감으로부터 지켜줄 연장이다.’
그러고 나서 나에겐 과분한 장비로 누구보다 진지하게 글을 쓴다.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는 그다음의 문제다. 어쨌거나 쓰는 삶을 지속한다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