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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un 16. 2021

기왕이면 아름다운 말로 인생을 기억하면 좋잖아요

오늘도 나는 성실히 단어냉장고를 채운다

나에게 냉장고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부엌 한가운데 놓여있는 짙은 회색의 양문형 냉장고. 집에 비해 덩치가 좀 큰 편이다. 다른 하나는 글 쓰는 일을 시작한 이후로 쭉 써온 메모 앱 에버노트 안에 들어 있다. 음식을 넣는 용도는 당연히 아니고, 책을 읽거나 대화를 하면서 보고 들은 신선한 단어들을 ‘단어 냉장고’라는 폴더에 모으고 있다. 단어는 식재료와는 달리 쉽게 상하거나 무르지 않아서, 특별한 노력 없이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하면 된다. 냉장고라 이름 붙이긴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식재료보다는 예쁜 소품을 모으는 마음과 더 비슷할 것이다. 

내가 단어 냉장고를 만들고, 여기저기서 신선한 단어들을 채집해 그곳을 채우기 시작한 데에는 아래 세 가지 사건이 큰 영향을 줬다.  


1. 백 선생님의 만능 소스 버금가는 만능 단어 ‘쩐다’ 

“쩐다”라는 말이 있다. 대단하다, 멋지다(혹은 짱이다)라는 뜻으로, 과거 염전이 많았던 지역 특성이 묻어난 인천 사투리란 소문이 있었다. 그 소문이 진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으 나 어쨌든 90년대 인천 어린이들은 ‘쩐다’라는 말을 정말 많이 쓰긴 했다. 

대부분의 유행어가 그러하듯 우리는 본래 의미에서 훨씬 더 확장된 의미로 ‘쩐다’를 사용했는데, 웬만한 대화는 “쩐다” 한 마디로 가능할 정도였다. 


어제 인기가요 봄? 2PM 쩔었음. (가수 2PM 인기가요 무대가 멋있었다는 뜻)
너희 엄마 쩐다. 인기가요 봐도 뭐라고 안 함? (수험생의 자유시간을 존중해주는 엄마를 뒀다니 부럽다는 뜻)
와 우리 오늘 쩔었다.(오늘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는 뜻)


언젠가 남동생이랑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는데, 옆에서 우리 이야길 가만 듣던 엄마가 말했다. “야 너희는 쩐다 없으면 대화가 안 되냐?” 예나 지금이나 엄마는 아닌 척하면서 정곡을 잘 찌른다. 


아닌 게 아니라, ‘쩐다’ 같은 만능 단어의 단점은 언어 능력을 퇴화시킨다는 것이다. 상황에 적합한 단어를 고심해 고를 필요 없이 ‘쩐다’라고 뱉으면 대충 의미는 통하니까. 무언가에 관해 설명하거나 내 기분을 표현함에 있어서 게을러진다. 


삼십 대가 된 지금은 ‘쩐다’라는 표현은 쓰지 않지만, 좋다는 의미를 대충 뭉뚱그린 감탄사를 여전히 자주 사용한 다. 요즘은 미쳤다, 돌았다, 찢었다(!) 3종 세트를 애용 중이다. 


하늘이 예쁘면, “오늘 하늘 미쳤다.”

마파두부 덮밥이 맛있어도 “이 집 마파두부 돌았다.”

좋아하는 뮤지션이 새 앨범을 냈을 때도 “넉살 이번 앨범 진짜 찢었다!” 


백종원 선생님의 만능 소스는 어떤 요리에 넣어도 기본 이상을 만들어주는 기특한 아이템이지만, 만능 소스로 맛을 낸 요리는 어쩐지 내 요리 같지가 않다. 손맛이 안 난달까. 멋이 없달까. 만능 단어를 사용해 대화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만능 단어를 쓰면 대충 뜻은 전달할 수 있지만 감동이 없다. 감탄사를 남발하는 내 모습은 어디선가 물려받은 패딩 점퍼를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중학생 같다. 보온 기능만 겨우 하는 못생긴 패딩 점퍼. 편하지만 멋은 없는 그런 옷을 뭐가 좋다고 매일 입고 다녔는지. 


2. 너는 글 쓴다는 애가 묘사를 왜 이렇게 못하니 

모든 설명을 감탄사로 퉁 치는 나쁜 버릇은 기어코 나를 곤란에 빠뜨리는데, 때는 몇 년 전 회사에서 제주 특집호 잡지를 만들던 여름이었다. 참고로 나는 1년에 15일, 휴가로 주어진 시간을 모두 제주에 쏟을 만큼 그 섬을 애틋하게 여긴다. 그렇기에 제주 특집호에 실릴 글은 누구보다 잘 써내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게는 아름다운 제주를 담아낼 단어가 없었다. 당시 나의 단어 냉장고에 들어 있던 건 저급한 감탄사 몇 개와 유치한 형용사, 뻔하고 부실한 비유가 전부였다. 최고다. 짱이다. 나만 알고 싶은 장소다. 꿈결처럼 아름답다. 뭐 이런 식의. 아침 햇살 받아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뭐라고 묘사해야 할까. 구름이 섞인 하늘의 오묘한 빛깔을 어떻게 설명하지? 너는 글 쓴다는 애가 묘사를 왜 이렇게 못하니! 막막한 마음에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가 난리를 피우던 마감 주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렇게 몇 날 밤을 지새우고 불만족스러운 채로 원고를 넘기던 순간의 수치스러움까지도. 


3. 낯선 단어를 쓰는 비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 

여행을 하다 보면 시인은 아니지만 시인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내가 찾는 여행지엔 근사한 풍경이 있고 우연히 만난 거리의 시인들(!)은 아름다운 동시에 낯선 단어들로 그 공간을 묘사한다. 


거리의 시인하니 강원도의 한 숙소에서 만난 남학생이 기억난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30분 이상 걸어서 나가야 하고, 주변에 식당은커녕 슈퍼도 없는 외진 곳에 있는 숙소였다. 조식이 제공되지 않는 대신 사장님이 차로 근처 식당에 데려다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마침 그날 숙소에 묵었던 숙박객 모두 뚜벅이 여행자였으므로 다들 흔쾌히 사장님을 따라나섰다. 밀폐된 공간에 서로를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으려니(사장님의 낡은 승합차 정원보다 태워야 하는 사람이 많았다) 꽤나 민망했고,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우리는 창밖 풍경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원도는 어디를 가든 산이네요.”, “겨울 산도 멋있네요. 볼품없을 줄 알았는데.” 고만고만한 감상을 나누는데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그날의 막내였던 남학생이 덧붙였다. 


“그러게요. 꼭 늑대가 엎드려 있는 것 같아요. 저기가 등이고 여긴 꼬리.”


그 말을 듣고 보니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들이 꼭 늑대의 털 같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표현을 생각해냈냐”며 감탄하는 사이 나는 속으로 괜한 자격지심을 삼켜야 했다. 예술하는 친구인가? 글은 저런 사람이 써야 하는데. 나는 왜 저런 생각을 못하지? 늑대 이야기를 한 뒤로는 그 친구가 하는 모든 행동이 괜히 비범해 보였다. 입대를 앞두고 7번 국도를 걷고 있다 고 했었는데, 여행은 무사히 마쳤으려나.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이라 그 친구의 이름이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겨울 산을 보면 ‘꼭 늑대가 엎드려 있는 것 우던 

같다’고 생각한다. 


일러스트레이터 최혜령 作 @teummmm

오늘도 나는 단어 냉장고를 성실히 채운다. 좋아하는 작가의 시집을 읽으며 내가 평소에 쓰지 않는 낯선 단어와 표현을 부지런히 줍는다. 그리고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할 때 사전을 찾듯 단어 냉장고를 열어본다. 여름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그동안 모아둔 여름에 관한 표현들이 쭉 뜬다. 그것들을 보면서 나의 순간을 설명할 가장 적절한 표현을 새롭게 만든다. 단어 냉장고가 생긴 뒤로 나는 글을 조금 더 신중하게 쓰는 사람이 됐다. 뻔하거나 유치한 비유 말고 신선하지만 정확한 단어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묘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몇 년 전 세계 거장들의 문체를 흉내 내어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말하는 놀이가 SNS에서 잠시 유행했다. 이를테면 ‘하루키 문체로 쓰는 오늘 면접 망한 썰’ 같은 식이었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단어와 표현을 사용하여 묘사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상황처럼 느껴지는 게 재밌었다. 


가끔 나도 비슷한 놀이를 연습하곤 한다.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질 때는 나를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황정은 작가님이 나의 오늘을 묘사한다면 어떤 표현을 쓰실까. 그라면 ‘일하기 싫어 죽겠다’, ‘피곤에 쩔었다’ 같은 표현으로 게으르게 묘사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연습을 하다 보면 평범한 하루가 새삼 애틋하게 느껴지고, 잊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진다.  


고만고만한 사건들을 겪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겠지만,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장르가 바뀔 수도 있다고 믿는다. 기왕이면 성의 없는 감탄사 말고, 비속어나 유행어 말고, 아름다운 말로 인생을 기억하고 싶다.



신간 <달면 삼키고 쓰면 좀 뱉을게요>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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