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g Jun 23. 2021

아빠의 육아휴직

쉬는 건 줄 알았던 육아휴직

2004년에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쉼 없이 15년을 달렸다. 100명 남짓한 한 직장에서 15년을 있다 보니 매일 만나는 직장동료들이 지겨웠고 회사의 부조리함이 싫었고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 같은 내 모습이 불쌍했다. 피난처가, 쉼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의 육아휴직은 이런 불손한 의도에서 시작했다.


첫 아이 태어나던 날 아빠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아빠가 된 것이 마냥 기쁘기만 했다. 똥기저귀를 치워야 하는 것도, 목욕시키는 것도, 분유 먹이고 트림을 시켜야 하는 것도, 그리고 한 동안은 밤잠을 설쳐야 한다는 것도 모두 하나씩 부딪혀서야 알게 되었다.


나의 육아휴직은 준비되지 않고 아빠가 되었던 그때와 꼭 닮아 있었다. 3년 6개월 동안 두 아이를 낳고 기르느라 사회생활을 멈추고 엄마로서 고생했던 아내가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양가의 도움받기도 쉽지 않았고 도움을 받지 않고 기르고 싶은 우리 부부의 생각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내가 육아휴직을 이어서 하기로 결정했다. 업무에서 보람을 느끼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며 매일매일의 삶이 새로웠다면 고려하지 않았을 결정이었다.


아내의 육아휴직기간이 끝나기 전 남은 휴가를 모두 사용하여 한 달의 인수인계 시간을 마련했다. 우리 가족은 이 한 달을 외국에서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여러 후보지가 있었다. 하와이, 산토리니, 포르투갈, 그리고 호주. 


육아휴직을 몇 달 앞두었을 때 호주 시드니에 업무차 방문해야 할 일이 생긴 적이 있었다. 2주 정도 호주에 대해서 공부하고 출장준비를 했는데 직속 상무가 육아휴직을 앞둔 직원은 출장을 보낼 수 없다는 비합리적 논리로 출장을 무산시켰다. 그때 열심히 준비를 했던 것을 사용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었을까? 아내와 나는 호주를 여행지로 선택했다. 


처음 외국 한 달 살기의 목적은 한 곳에서 내 집처럼 살아보고자 했던 거였으나 여행을 준비할수록 가고 싶은 장소와 도시가 늘어났다. 결국 외국에서 한 달 살아보기는 18일간의 여행으로 변경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육아 인수인계의 시간은 가족여행의 시간으로 변경이 되었다.


2019년 4월 그렇게 우리 네 식구의 호주 여행은 시작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