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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아빠 Oct 20. 2023

2. 나는 왜 딸의 아침을 차리기로 했나

휴직 아빠의 아침 밥상 #2 (23.06.11)  

휴직 D+11일

오늘의 아침 밥상은 "베이컨 에그 토스트"

어제 남겨둔 베이컨과 계란을 활용해 토스터에 구워내고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여 간편한 아침을 완성했다. 

따님의 평가는 A+


휴직과 함께 내가 딸의 아침식사를 준비하게 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리 딸의 입맛은 정말 까다롭다. 

까다롭다기보다는 제한적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즉 먹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우선 야채 종류는 입에 대지 않고, 식감이나 냄새가 마음에 들지 않는 식재료가 포함되어 있으면 식사를 거부하기 일쑤다. 식사 중단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식재료는 양파, 당근, 파, 호박, 오이 등이다. 요즘은 고등학생이 되어서 나름 컸다는 신호인지 거부의 횟수가 줄고 마음에 들지 않는 식재료들을 일일이 골라내고 있는 상태로 발전하긴 했으나, 이렇게 되면 결국 먹는 행위보다는 해당 식재료를 골라내는 행위에 집중하다 보니 먹는 양이 현격하게 줄어들기 마련이다. 결국 성장기 내내 반복된 이런 상황으로 인해 자연히 성장이 지연되게 되었고 영양은 불균형이 되는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인 것이다. 


딸의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서는 '갈아서 넣으면 된다.'  '안 보이게 잘게 썰면 된다.' 등의 조언을 해주었지만 그렇게 되면 오히려 맘에 들지 않는 식재료를 가려낼 수 조차 없게 되어 숟가락을 놓아버리는 사태를 만들어 그 방법은 포기하고 오히려 큼지막하게 썰어서 스스로 가려내게 만드는 상태로 진화된 것이다. 사실 웬만한 음식에 베이스로 들어가는 많은 재료들에 거부감이 있다 보니 메뉴 선정에 엄청난 스트레스가 발생하게 된다.


이렇다 보니 차릴 수 있는 메뉴가 매우 제한적이다.

게다가 과일도 수박, 멜론, 참외등은 오이와 동격으로 취급하여 냄새조차 싫다고 하며, 대부분의 과일도 거의 먹지 않는 상황이라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간단한 아침상인 과일과 우유로 차리는 아침상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태다. (딸은 유제품도 그릭 요거트 외에는 전혀 먹지 않고 우유는 입에 대지 않는다. 그릭 요거트도 그녀가 원하는 브랜드 제품 외에는 또 드시지 않는다.) 거기에 며칠 전 차려주었던 메뉴가 다시 밥상에 등판한다거나 단시일 동안 반복되는 메뉴가 있으면 밥상 거부가 일상이다. 상전이 따로 없지만 성장이 느린 편이다 보니 아직도 키가 조금씩 크고는 있어 이 마지막 성장기를 놓치면 키가 너무 작을 것 같다는 걱정 속에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간절해 어떻게든 먹을 수 있는 밥상을 제공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대부분의 글에서 딸을 따님이라고 호칭하고 있음. 상전과 하인의 관계라고나 할까?)


여기까지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말이 있다. 

'보모가 참 유난도 떠는구나. 안 먹으면 굶기면 되지'

그렇다 유난 떠는 것이 맞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정말 며칠을 굶어도 안 먹었다. 그러고도 견디던 아이였다. 그래서 언제나 또래 중에 가장 키가 작았다. 그나마 느린 성장덕에 중간키를 따라잡고 고등학생이지만 아직도 자라고 있는 지금,  마지막 성장의 기회에 제대로 먹이지 못해서 키를 못 키웠다는 후회를 남기긴 싫어서 끝까지 먹여보리라 마음을 먹은 것이다. 


또 하나, 같은 음식도 예쁘게 차리면 먹는다

따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푸드 스타일링이다. 예쁘면 좀 드셔주신다. 엄마는 전형적인 이과형에 이성적인 사람이라 음식은 맛일 뿐 스타일은 필요 없다는 주의인 사람이고 나는 이왕이면 다홍치마 맛이 없어도 예쁘면 맛이 있어진다는 생각을 가진 사림이다. 그래서 내가 차린 음식에 딸이 좀 더 반응을 하는 면이 있다. 물론 딸이 좋아하는 건강하지 않은 식재료 사용도 그 원인일 것이다. 예들 들면 베이컨 같은 것을 많이 사용하고 소금과 설탕을 충분히 듬뿍 넣는 것 등을 말한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아내에게 아침밥상 번아웃이 왔다

그동안 따님의 비위를 맞추면서 17년간 인고의 시간을 지내온 아내에게 아침밥상 번아웃이 왔다. 중학교 때 보다 더 빨리진 등교시간, 그리고 아침 밥맛은 더욱 없어진 따님. 고갈된 아참밥 아이디어. 이 상황을 해결해 보자 휴직과 함께 가족 앞에서 "내가 한번 나서 보리다!" 하고 손을 들었다. 점심이야 학교에서 급식으로 먹으니 신경 쓸 필요 없고, 저녁은 아내가 만들 것이니 아침밥상은 내가 차려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다 솔직히 무모한 도전이다. 고등학생인 딸의 등교시간에 맞추려면 익숙하지 않은 나의 요리 실력까지 감안하면 출근할 때 보다 더 이른 기상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또한 딸이 잘 먹어주리라는 보장은 더더욱 없었다. 히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기 위해 SNS로 만천하에 10개월 도전의 계획을 공개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무모하다. 


어제에 이어 2일째 사진을 올리니 바로 댓글이 올라온다 

"10달간 계속 올리게?" 

나는 답했다 

"매일은 못해요. 조금씩 해보려고요"

휴직은 11개월이나 복직 1달 전에는 아무래도 마음이 급할 듯하여 우선 10달간 진행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인데, 나 스스로도 사실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만천하에 알리고 시작하지 않으면 끝까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오늘까지 2번째 도전 메뉴를 만들었고 따님의 만족스러운 평가 속에 하루가 시작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아빠의 메뉴는 건강과는 거리가 멀다. 2일째 베이컨으로 맛을 내고 있다. 

내일의 메뉴는 무엇으로 할지 벌써 걱정이 된다. 이것이 주부의 삶일까?


2일차 메뉴 : 베이컨 에그 토스트 (난이도 下)

  ※ 소요시간 : 15~20분            


[재료]

식빵 2장, 베이컨 2줄, 계란 2개, 아스파라거스, 소금, 후추


[레시피]  

 1. 베이컨을 팬에 굽는다

 2. 베이컨이 어느 정도 익으면 동그랗게 모양을 잡으면서 계란 프라이 시작

 3. 계란에 소금과 후추 톡톡! 식빵에 들어갈 사이즈로 모양을 잡으면서 익히면 둘이 하나가 됨

 4. 식빵에 하나로 모양 잡힌 계란과 베이컨을 올리고 발뮤다토스터에서 3~5분 취향껏 조리

    식빵을 토스터에 따로 구운 뒤 3번의 베이컨과 계란을 바로 올리면 노른자의 색깔이 선명하고

    3,4 순서로 진행하면 노른자는 반숙이지만 색은 흰색이 됨

5. 토스터 조리하는 동안 아스파라거스는 팬에서 살짝 굽는다

6. 빵과 아스파라거스를 함께 플레이팅하고 맛있게 먹으면 끝~


[발뮤다토스터 레시피를 참조하여 조리. 발뮤다토스터는 내돈내산이며 발뮤다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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