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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Sep 28. 2023

천왕봉 가는 길

Ed Sheeran(2017), <Save Myself>

2021년은 유독 힘들었다. 끝없는 심연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 같은 나날이었다. 9월의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나는 나를 구원해야 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리셋해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 평탄하게만 살아온 내 삶의 구조적 취약성을 그때 깨달았다. 뭔 위기를 겪어 봤어야 극복하는 법도 알지. 그저 나이만 먹었지 세상사 면역력은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나는 결국 아주 전형적인 방법을 택했다. 산에 오르기로. 가파른 산길을 오르며 육체를 학대하면 그에 비례하여 정신은 회복될 것 같았다. 그러니 동네 뒷산 정도로는 안 되었다. 과감하게 지리산을 골랐다. 평소 로망이었던 종주를 이참에 해볼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일이 바빠 도저히 며칠 휴가를 낼 수가 없었다. 당일치기로 급전환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백무동–천왕봉 코스는 초심자도 할만하다 했다. 며칠 뒤 출발하기로 했다. 평소 온갖 신중한 척은 다 하는 나지만, 가끔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무모할 때도 있다.

    

전날 일찍 퇴근하여 준비물을 챙겼다. 마트에 가서 도시락(유부초밥), 초콜릿, 커피, 과일 등속을 샀다. 산행에 무리일 것 같아서 짐은 최소화했다. 어차피 아직 더워서 옷도 필요 없었다. 바람막이 한 벌을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별로 무겁지 않을 것 같아서 넣었다. 9시에 잠자리에 누웠다. 새벽 1시에 출발해야 하므로 잠을 자 둬야 했다. 그런데 평소 그보다 훨씬 늦게 잠들었으니 잠이 올 턱이 있나.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뜬 눈으로 1시를 맞았다. 나는 가벼운 운동복에 등산화만 신은 채로 집을 나섰다.

     

백무동까지 운전해서 가는 길에는 Ed Sheeran의 <Save Myself>만 계속 들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텅 빈 고속도로가 현실감각을 없애 주었다. 이대로 그냥 또 다른 시간의 차원으로 이동했으면-- 하고 망상의 나래를 펼쳤다. 어느덧 백무동에 다다랐다. 그래, 오늘 이후로 나는 나를 리셋하는 거야. 그렇게 나를 구원하는 거야. 이게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야. 이딴 중2병스러운 생각을 하면서 등산로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인터넷에는 새벽 3시에도 올라가는 사람이 많다고 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상 초월로 어두웠다. 아무것도 안 보였다. 새벽 산행에는 헤드랜턴이 필수임을 그때는 몰랐다. 할 수 없이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그 연약한 빛에 의지해서 계단 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슬슬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시야가 어느 정도 확보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거기다 바람은 왜 그리 무섭게 부는지. 바람 자체보다도 풀과 나무들이 서로 격렬하게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으스스했다. 문득 지금이라도 계획을 취소하고 하산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성과 감성이 서로 다투었다. 이성은 뭔 일 나기 전에 내려가라고 하는데, 감성은 여기까지 왔는데 아깝지 않냐고 했다. 평소에는 늘 이성 편을 들던 나였다. 그래서 그날만큼은 감성 편을 들기로 했다.

     

1차 기착지인 참샘에 도착했다. 그제야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헤드랜턴에 지팡이에 허리춤에는 정체불명의 물건들을 주렁주렁 달았다. 게다가 백팩은 또 왜 그리 큼지막한지. 누가 보면 어디 히말라야라도 등정하는 줄 알겠다. 그런데 그분들은 오히려 어이없다는 듯 내게 말했다.

     

“아니 학생(얼마 만에 들어 보는 말인지... 어두워서 잘 안 보였나 보다), 여기까지 그러고 왔어? 허허 스틱 하나 없이 정말 대단하네”

    

참샘을 지나니 소지봉이 멀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빼박이다. 돌아가고 싶어도 못 간다. 소지봉까지는 능선길이라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바람이 정말 미친 듯이 불었다. 기온도 뚝 떨어졌다. 와... 이거 여름 날씨 맞아? 왜 이렇게 추워? 나는 마지막에 넣었던 바람막이에 생각이 미쳤다. 급하게 꺼내서 입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였다. 만약 이 바람막이를 안 챙겼다면, 뭔 사달이 나도 제대로 났을 것이다. 나는 미친 듯 불어 제끼는 바람을 뚫고 몸을 움직여 나갔다. 내가 지금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슬슬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운동 부족으로 다져진 저질 체력이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기서 탈진하면 구해줄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꾸역꾸역 발걸음을 옮겼다. 동이 트기 시작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주위가 밝아지니 그제야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탈진할 때 하더라도 장터목 대피소까지는 가야 한다. 근데 왜 이렇게 대피소가 안 보이냐. 진작 도착했어야 하는 거 같은데. 설마 길을 잃은 건 아니겠지.

     

산행 시작 3시간 만에 장터목 대피소까지 왔다. 이미 체력은 바닥이었다. 안내판이 보였다. 천왕봉까지 2시간을 더 가야 한다고? 20분이 아니라? 오 마이...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강병철 감독이 했다던 명대사가 떠올랐다. “동원아 우짜노... 여까지 왔는데...” 나는 최동원이 되어 마운드에 오르는 심정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마, 함 해보입시더.”

     

일단 아침을 먹으며 체력을 회복하기로 했다. 그러나 날은 춥지, 몸은 고되지, 입맛은 없지... 그 상황에서 마트에서 산 왕건이 유부초밥은 최악의 메뉴였다.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옆에서 후루룩 짭짭 컵라면을 먹는 아재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아 저 뜨거운 국물 한 번만 마셔 보았으면... 한 입만 달라고 하려다가, 최소한의 이성은 아직 살아있어서 참았다.

    

다시 대피소를 나섰다. 이제 천왕봉 앞까지 왔으니 힘든 구간은 더 없겠지, 하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길이 더 험해졌다. 그제야 등산 스틱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잇템인지를 깨달았다. 그날 내가 본 천왕봉 등반객 중에 스틱이 없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누가 버리고 간 스틱이 없나 하고 주변을 찾아봤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제석봉을 지나면서는 이제 더 이상은 못 간다, 도대체 누가 이 코스를 쉽다고 한 거냐, 잡히면 XX해 버리겠다, 하는 생각만 반복했다.

     

그러나 끝은 있었다. 아침 8시, 마침내 천왕봉에 도착했다. 그때의 광경을 잊지 못한다. 세상의 끝이 있다면 여기겠구나 싶었다. 발 아래로 구름이 뭉게뭉게 흘러 다녔다. 해발 1,915m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까마득했다. 저 보이지도 않는 아래에서 오밀조밀 아웅다웅하며 살고 있을 인생들이 부질없어 보였다. 탁 트인 하늘 옆으로 펼쳐지는 지리산의 능선들은 그저 신비로웠다. 그 절경을 아무 생각 없이 눈에 담았다. 새벽에 길을 나서면서 생각했던 것들, 리셋이니 구원이니 하는 단어들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 단어들이 자리하고 있던 허망한 감정들을 툭툭 털어냈다. 그 순간 나는 그저 천왕봉의 일부였다.

      

하지만 감동은 감동이고, 여기 왔다는 증거는 남겨야 했다. 천왕봉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컵라면을 맛나게 먹던 그 아재가 찍어주었다. 이곳에 왔다는 감격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받았다. 아내에게 걸었다. 당시 아내는 부산 친정에서 산후조리 중이었다. 받았다. 그런데 우는 아기를 쩔쩔매며 달래는 중이라, 내가 천왕봉에 왔는지 안나푸르나에 왔는지 알빠노였다. 그냥 아침 인사나 하고 끊었다.

    

천왕봉에서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절경을 계속 보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체력이 완전 방전됐기 때문이다. 결국 어찌어찌 내려오긴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정말이지 하나도 기억 안 난다. 기억나는 건, 내려와 보니 오후 1시였다는 것과, 돌아가는 길에 잠이 폭포수처럼 쏟아져서 휴게소에 3번이나 들러야 했다는 것이다. 추가로 며칠 뒤 병원 가서 죽어버린 엄지발톱을 뽑아야 했다는 것도 있다.

    

무모했던 천왕봉 당일 등정은 그렇게 끝났다. 정말 모르니까 갔지, 알고는 못 갔을 것이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가, 등짝 스매싱을 네다섯 번은 거하게 쳐맞았다. 나잇살이나 먹고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냐며. 어머니 말씀이 백번 옳다. 아마 두 번은 못 갈 거 같다. 그래도 반드시 가야 한다면, 다른 건 몰라도 스틱만은 꼭 챙겨갈 것이다.


Offered off my shoulder just for you to cry upon
네가 기대어 울 곳이 필요하대서 내 어깨를 내어주었지
Gave you constant shelter and a bed to keep you warm
네가 따뜻하도록 늘 쉼터와 침대도 주었어
They gave me the heartache and in return I gave a song
 그들은 내게 아픔만 주었지만, 대신 나는 노래를 주었어
It's goes on and on
그건 계속되고 있어
Life can get you down so I just numb the way it feels
삶이 널 지치게 할 수도 있어, 나도 무감각해지는걸
I drown it with a drink and out of date prescription pills
 난 그걸 술과 오래된 처방약으로 버텨내
And all the ones that love me they just left me on the shelf no farewell
날 사랑한 모든 이는 날 두고 떠나, 작별인사도 없이
So before I save someone else I've got to save myself
그래서 난 누군가를 구하기 전에, 나부터 구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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