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dplay(2002), <The Scientist>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자 중에 김빛내리라는 분이 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이면서 내가 일하는 연구소의 연구단장이기도 하다. 세계 어디를 나가도 그 이름만으로 모든 설명이 끝나는 분이다. 실력도 월드클래스지만 인품도 아주 훌륭하다. 나와 같은 하찮은 행정직원에게도 늘 공손하게 대하신다. 이분이 과학자라는 직업을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
하고 싶은 취미를 평생하고 월급까지 받을 수 있는 아주 사치스러운 직업
세속적 기준에서 과학자를 좋은 직업이라 하기는 어렵다. 많은 과학자가 국가R&D사업 편성 결과에 명줄이 달려 있다. 즉, 대부분 계약직이라는 의미다. 학계에서 흔히 통용되는 연구교수, 박사후연구원, 초빙연구위원 등의 직함은 보기는 그럴듯하나 본질은 비정규직이다. 경력 대비 급여도 적다. 올해처럼 연구비가 급감하면 연구 중단은 물론 적을 둘 곳도 없어진다. 우리나라에서 40대 이상 고학력 인재들의 재취업은 결코 쉽지 않다.
공리주의적으로 따져도 과학자는 별 효용이 없는 존재다. 그들이 뭔가를 발견한들 사회의 행복에는 플러스 요인이 되기 어렵다. 내가 일하고 있는 연구단의 목표는 암흑물질을 발견하는 것이다. 우주의 70%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나, 그게 정확히 뭔지는 아무도 모르는 물질이다. 이걸 찾겠다고 수십 명의 고급 인력이 10년 넘도록 매일 실험을 하고 있다. 옆 동네에는 식물을 연구하는 집단도 있다. 이들은 몇 년에 걸친 연구 끝에 꽃잎이 떨어지는 이유를 밝혀냈다. 식물이 노화하면서 생성되는 어떤 물질이 꽃잎을 정확한 위치에서 떨어뜨리게 한다는 결론이었다. 과학자들은 보통 이런 데에 청춘을 건다. 아마 일반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는 덕업일치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김빛내리 교수가 사치스러운 직업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와 통한다. 과학자는 호기심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이 치명적 매력 때문에 아무리 이공계가 위기이고 의대 인기가 높아져도 과학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평소 궁금했던 것을 알아냈다고 돈과 명예를 얻는 노동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사실 이런 걸 노동이라고 하기도 뭐하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자본주의적 노동보다는 도를 깨우치는 종교적 수행에 더 가깝다.
내가 주위에서 보는 과학자들도 회사원보다는 구도자의 느낌이 더 강하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대부분 세상 물정에 어둡다. 이재에 밝지도 못하다. 그러나 학문에 대해서만큼은 한없이 진지하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연구하는 일, 자연의 질문에 답하는 행위 그 자체다. 그 결과를 어디에 써먹을지는 관심이 없다. 이제는 벼락부자가 되기보다 벼락거지가 안 되려고 아등바등하는 시대다. 그래서 어떻게든 약간의 이문이라도 남겨 보려고 여기저기에 투자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의 과학자는 참으로 한가로운 직업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과학자라는 직업이 존재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모두가 돈벌이에만 매몰되는 사회만큼 삭막한 곳도 없을 것이다. 전체주의가 별다른 게 아니다. 사회가 전체주의로 흐르지 않으려면 소수라도 보편의 지향과 반대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늘 있어야 한다. 즉 자본의 지배 속에서도 누군가는 별을 향해 손을 뻗고, 진리의 위대함을 기록해야 한다. 과학자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우리나라가 이 정도 집단을 운영할 여유가 없지 않다고 믿는다. 적어도 그들만큼은 경제 상황과 무관하게,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해보라고 놔둬 봤으면 좋겠다.
Coldplay의 초창기 히트곡 <The Scientist>는 사랑에 대한 발라드다. 제목과는 달리 과학자와 아무 상관이 없는 노래다. 가사 내용은 이별을 결심한 여자의 마음을 되돌리려는 남자의 애원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가사를 찬찬히 따져보면, 과학자들이 처한 작금의 상황과도 묘하게 통하는 부분이 있다. 힘들겠지만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하는 문장이 그렇다. 제목과 연관 지어 본다면, 과학자라는 직업의 본령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미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Nobody said it was easy
아무도 이게 쉬울 거라고 하지 않았죠
It's such a shame for us to part
이렇게 헤어지는 건 너무나 슬퍼요
Nobody said it was easy
쉬울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No one ever said it would be this hard
하지만 이렇게 힘들 거라고도 하지 않았죠
Oh, take me back to the start
오, 우리의 처음으로 나를 데려가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