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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Nov 25. 2020

리영희, 진중권, 최장집

‘사숙(私淑)’했다는 표현이 있다. 과거에 비해 요즘은 잘 안 쓰는 말이다.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았지만 마음속 스승으로 삼아 학문을 배웠다는 뜻이다. 평범한 회사원인 내게도 그런 마음속 스승들이 있다. 


1999년 나는 대학의 사회과학계열에 입학했다. 점수에 맞춰서 갔지만 대학에는 기대가 컸었다. 대학은 문자 그대로 큰 배움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첫 학기 수업을 들어보니, 고등학교 때 배운 것과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내용은 더 전문적이고 어려웠다. 그러나 앨프리드 마셜이 말한 ‘뜨거운 가슴’을 일깨우는 뭔가가 없었던 것 같다. 사회과학은 말 그대로 사회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텐데, 교수님들의 수업은 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선배들과 함께 하는 세미나가 더 사회과학의 본령에 충실하다고 느꼈다. 세미나에서는 우리가 지금 사는 사회가 어떻게 형성됐고, 모순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를 다뤘다. 이를 위해 선배들이 읽어오라고 한 책들은 전공 수업의 레퍼런스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렇게 강의실 밖의 사회과학에 더 관심이 커졌고, 교수님들이 나눠주는 레퍼런스보다는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중에 내 사고체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세 명의 저자가 있다. 리영희, 진중권, 최장집이 그들이다. 세 분 모두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다. 그러나 사숙하면서 지도교수님이나 인생의 그 어떤 선배보다 더 큰 영향을 받았다.




리영희는 진보진영의 ‘사상의 은사’로 불린다. 민주화가 시대정신이었던 1980년대 학번 중에 그의 책 한 권 안 읽어본 사람이 드물 것이다. 다만 내가 대학을 다닌 2000년대에 그는 이미 은퇴했고 민주화도 거의 완성되었었다. 그래서 우리 세대에서는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사숙의 대상으로 그를 꼽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대학 시절 처음 읽은 사회과학 서적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였다는 것이다. 후기 리영희를 대표하는 이 책은 제목부터 인상적이다(비록 본인이 아닌 미국의 목사 제시 잭슨이 한 말이지만). 당시 구름 위의 선문답 같은 전공 수업에 흥미가 떨어진 내게, 사회의 금기를 부수고 이데올로기적 편견들을 논파하는 이 책은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쉬운 문장들로 당연하게 생각했던 관념들을 해체시키는 일필휘지의 논리에 감동받았다. 나는 리영희의 칼날 같은 논리와 해박한 지식에 매료되었고, 그 후로 한동안 그의 책만 구해 읽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제목은 진보‧보수라는 사회의 정신적 균형의 필요성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 멋진 표현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책이 나왔던 1994년만 해도 꽤 도발적인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보수정치인들마저 인용할 정도로 상식이 되었다. 이후에도 몇 년에 한 번씩 꺼내어 읽었다. 수험 공부를 하듯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치고, 메모도 하면서 말이다. 다만 소중했던 그 책은 후배에게 빌려준 뒤에 돌려받지 못했다는 점이 지금도 아쉽다.


둘째는 학생운동을 하면서 형성된 나의 NL적 정체성에 이 분도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학생운동의 이른바 ‘정파’는 입학 후 어떤 선배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들 한다. 나도 그랬다. 지방에서 올라온 나를 살뜰히 챙겨주고, 그다지 어렵지 않게 사회의 모순에 대해 설명해준 선배들이 NL 성향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NL 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NL은 이성보다는 감성, 지식보다는 행동이 중요한 정파이다. 이론적으로도 NL은 빈곤하기 짝이 없었다. 진보지식인들 중에서도 NL의 대변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막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던 나는 NL의 정당성을 리영희의 이론에서 찾고자 했다. 리영희가 주로 다룬 문제가 평화통일, 반제국주의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북한에 대한 공포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찾는 남한 지배층을 통렬히 비판했다. 열정만 컸지 무식했던 나는 이 비판의 온전한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분 역시 NL에 대한 비판자라는 것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 NL적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후일 다시 읽으니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의 논지 역시 다르게 다가왔다. 리영희는 이 책에서 공산주의 몰락을 예견하지 못한 자신을 반성한다. 그리고 그 오류의 원인이 성선설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있지 않았나 하고 고백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은 이제 동구 사회주의가 아닌 서유럽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도 말했다. 이는 20살에 처음 읽었을 때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부분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시대의 사표였지만, 이렇게 자신의 한계를 냉정히 성찰하는 풍모도 그를 좋아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다.

지식인 리영희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진실과 이성이다. 내가 리영희에게 매료된 부분도, 어떤 거대 담론보다도 바로 이 진실과 이성에 대한 강조였다. 대부분 청소년들처럼 나도 인생에서 가장 예민한 10대 후반을 입시 공부만 하며 보냈다. 그렇게 세상에 대한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 20살이 되었다. 그때 만난 리영희의 글은 내면 깊이 침잠해 있던 감수성을 일거에 일깨웠다. 그의 글을 읽으며 사회과학이 가슴 뛰는 학문일 수 있음을, 내가 전공을 잘못 선택하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다음의 문장은 언제 읽어도 울림이 느껴진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 리영희(1977), 「우상과 이성」


그 다음으로 영향을 받은 이는 진중권이다. 그는 요즘 진보진영의 위선과 내로남불을 최선두에서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보수의 지지를 받는 진보지식인이라는 다소 희한한 포지션에 있다. 그런데 이 상황이 도착적으로 보이는 것은 시대 탓이지 진중권이 달라졌기 때문은 아니다. 과거 비주류 비판담론을 생산하던 민주진보진영이 이제는 주류 기득권 세력이 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진중권의 시그니처는 지식인은 동일한 기준으로 권력자들을 대해야 한다는 태도이다. 특히 예나 지금이나 그가 한결같은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집단주의적 광기이다. 그가 ‘논객’으로 활동한 지난 20여 년 간, (몇 번 헛발질도 했지만) 이 기준에서 벗어나 정치적 목적이나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려 했던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진중권에게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상식적인 좌파’라는 테제다. 진중권이 이 이야기를 주로 했던 시기가 대략 2000년대 초반이다. 그때 나는 군 제대 후 단과대 학생회 간부로 일하고 있었다. 즉 졸업이 코앞이었음에도 운동판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나를 조급하게 만든 것은 졸업이 아니라 이놈의 운동이 도무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자각이었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구식의 교리로 이 복잡다단한 세상을 설명하고, 현실성 없는 과격한 목표에 학생들을 희생시킨다는 것이 당시 내 생각이었다. 매주 반복되는 비슷한 집회에 사람들을 모으느라 벅찼고, 가끔 있는 주요 시설 타격투쟁에는 그런 위험한 짓에서 우린 빼 달라고 상급 단위와 싸우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 와중에 진중권의 글을 자주 읽었다. ‘상식적인 좌파’라는 문구가 단숨에 눈에 들어왔다. 그가 말한 상식적인 좌파는 혁명주의적 사고와 실천에서 벗어나자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좌파도 시민사회의 일부로서 공론장에 참여하여 대안을 검증받음으로써 국가운영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활동하려면 당연히 우파를 파트너로서 전제해야 한다(그 전까지 좌파에게 우파는 파트너가 아니라 지구 상에서 없애버려야 할 적이었다). 거기에 필요한 공통분모로서 진중권은 시민적 ‘상식’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니까 꼭 적들을 때려 부수고 타도해야만 좌파질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공론장 안에서, 의사소통 합리성을 통해 좌파적 가치를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당대비평에 실렸던 ‘지배의 언어, 탈주의 언어’라는 글은 가장 인상적이었다. 진중권의 저작은 (미학 서적을 제외하면) 거의 다 읽었지만, 그중 최고는 단연 이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 논문은 진보진영을 좌우하던 NL과 PD의 텍스트들을 언어철학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지배의 언어는 NL의 언어, 탈주의 언어는 PD의 언어를 뜻한다. 진중권은 NL의 언어가 파시즘의 대중 통제 수단과 닮았고, PD의 언어는 아무 대안도 없이 끊임없이 현실에서 탈주하는 고담준론이라고 비판한다.


나는 발간 후 몇 년이 지나서야 이 글을 읽었다. 그동안 활동하며 쌓인 답답 의문점들이 해명되는 느낌이 들었다. 꼭 이 글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결국 졸업을 1년 앞두고 대학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학생운동을 정리했다. 리영희가 눈뜨게 해 준 진보적 사회과학에 대한 믿음이 진중권에 의해 크게 방향을 바꾸게 된 것이다. 이 무렵부터 내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사회과학을 기초부터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말하자면 진중권은 내 무지를 낱낱이 일깨우고, 처음부터 공부를 다시 하라고 매몰차게 지적한 계몽의 은사인 셈이다. ‘진중권’ 인장이 박힌 듯한 아래와 같은 문장을 읽을 때마다, 이 지식인의 팬이 될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제발 신학자들의 독재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사회주의 신학은 개인에게 철학적 정체성을 주는 데에 소용이 있을지는 모르나, 정당의 정체성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가 영원히 지속된다고 믿는 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미신이리라. 경제가 발달하고,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인간들은 점점 더 새로운 욕구를 갖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지금 이 시점에 벌써 먼 훗날을 얘기하는 좌파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가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좌파적 실천을 힘겹게 써넣어 갈 사회라는 이름의 페이지 속에서 탄생할 것이다. 지금 이제까지 해보지 못한 새로운 싸움이 눈앞에 있다. 우리는 대안을 마련하고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 진중권(2002), ‘적‧녹‧흑,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마지막으로 최장집에게도 많은 배움을 얻었다. 최장집은 국내 최고의 민주주의 이론가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라는 주제를 30년 가까이 연구해오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연구주제 때문인지 언론에서는 최장집을 ‘진보학계의 대부’로 곧잘 소개한다. 그러나 딱히 맞는 표현은 아닌 듯 하다. 일단 스스로 마르크시스트가 아닌 베버리안이라고 규정하고, 사상적 뿌리도 미국의 주류이론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자주 인용하는 학자들은 로버트 달(다원주의), 필립 슈미터(조합주의), E. E. 샤츠슈나이더(정당정치), 아담 쉐보르스키(분석마르크스주의), 찰스 린드블럼(점증주의) 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양한 갈등 간 타협‧조정으로서의 민주주의라는 현실적 정의를 채택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자유주의의 자장 안에 있는 이론들이다. 실제로 최장집은 한국 진보세력의 대안을 자유주의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여기서의 자유주의는 레쎄페 식의 시장만능 자유주의와는 다르다. 굳이 분류하자면 사회자유주의,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를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그를 진보학계의 대부로 명명하기에는 과하다. 특히 ‘정당정치 중심 최소주의적 민주주의’로 요약되는 그의 이론은, 많은 진보파들이 좋아하는 직접적, 근본주의적 민주주의와는 상극이다.


학자로서 최장집은 ‘현실적 문제해결 방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는 대단히 냉정하고 현실적인 이론가이다.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이상향이나 완성된 체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일상적 문제에 대한 끊임없는 합리적 조정 과정일뿐이다. 우리나라는 군부독재와 맞서 싸워 어렵게 민주주의를 쟁취해서 그런지, 필요 이상으로 민주주의에 성스러운 아우라를 불어넣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6월항쟁이나 대통령 탄핵 촛불시위처럼 수많은 군중이 거리로 나와 정권과 싸워 이기는 것으로 여긴다. 최장집도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운동은 민주주의의 예외적 현상에 가까우며,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일상적 무게중심은 정당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는 점이 다르다. 그는 한국 민주화 역사에서 운동이 늘 긍정적 영향만 발휘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 지점에서 그가 제시하는 개념이 ‘열정과 냉정의 사이클’이다. 아무리 강력한 운동도 초반의 열기를 지속할 수 없 시간이 지나면 냉각기에 접어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즉 개혁의 희망을 갖고 운동에 참여한 이들이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면, 반대급부로 실망도 커진다. 이것이 결국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한국 민주주의도 폭발력 있는 운동을 매개로 열정과 냉정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진행됐다. 이 틈바구니 속에서 제대로 된 정당정치가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이 최장집의 지적이다.


정당정치는 대의민주주의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현대 국가에서 사회적 균열을 표출하고 해결할 수 있는 핵심 기제이다. 운동은 휘발성은 강하지만 지속성은 떨어진다. 이렇듯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에너지를 낭비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를 반영하는 정당정치를 통해 안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자는 것이 그의 논지이다.

그는 이미 이러한 총론적 얼개를 20여 년 전에 완성했다. 최장집이 비교정치학 관점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책이 1993년작 「한국 민주주의의 이론」이다. 물론 대중적으로는 2002년에 출간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더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라는 문제의식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이론서라는 점에서, 그의 연구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저작은 이 「한국 민주주의의 이론」일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국가-정치사회-시민사회라는 삼분 모델을 제안했다. 이에 따르면 국가와 시민사회의 중간에 위치한 정치사회, 즉 정당정치가 국가행정과 시민적 요구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종합하는 구조가 민주주의를 원활히 작동시킨다. 따라서 진보진영도 국가 전복 투쟁에 몰입할 것이 아니라, 본인들을 대변하는 정당을 통해 국가를 민주화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정당정치의 역할을 중시하는 그의 지론이 이 책에서 원형을 갖춘 셈이다.


최근에 이르기까지 최장집의 논점은 이 틀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 사이 한국정치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여러 이념과 세력도 명멸했다. 그러나 최장집 냉정한 분석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이 일관성이 오늘날 최장집의 민주주의 이론을 하나의 학문적 브랜드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필자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는 민중(people)의 광범한 정치참여에 의한 공적 결정과 그 결정을 집행하는, 일련의 규칙 또는 제도를 가지며, 이를 통하여 그것은 정치의 영역에서 민중의 권력으로 표현되고 사회의 영역에서 민중의 물질적, 문화적, 정신적 삶의 질적 고양이 담보되는 정치적 체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이미 그 정의에 있어 민중의 권력에 대하여 기득이익을 수호하려는 사회세력과 민중 간의 일정한 갈등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관한 정의는 어디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내부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언술의 수준에서 여러 가지로 정의될 수 있고, 또 지배적 언술이나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특정 형태로 정의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에 있어서 민주화의 과정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를 둘러싼 정치적 경쟁이나 투쟁이 아닐 수 없다.

 - 최장집(1993), 「한국 민주주의의 이론」


나는 세 명의 학자 중 최장집에게서 가장 큰 실제적 도움을 받았다. 내 석사학위논문이 이 분이 만든 이론적 토대 위에서 사례연구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결과지만 논문의 참고 문헌에도 이 분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사회과학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후, 여러 대가들의 책을 읽으며 대학원 입시를 준비했었다. 그때 가장 큰 영감을 준 이가 바로 최장집이었다. 그의 이론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실현가능한 해법을 제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읽은 것이 직접적 계기였다. 이 책은 지금까지도 인생의 책 목록 첫 손가락에 꼽는다(관련 글).


대학원 입학 준비부터 학위논문을 탈고할 때까지 최장집은 늘 배움의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대학원 입시 면접에서 받은 질문에 내가 “최장집 선생의 이러이러한 이론에 따르면...”으로 시작하는 아주 긴 답변을 하자, 잠자코 듣고 있던 면접관 교수님의 코멘트가 아직도 기억난다. “자네 그러면 고려대 정외과로 가서 최장집 선생에게 배울 것이지 여기는 왜 지원했나?”(...)


최장집의 수업을 단 한번도 들은 적은 없지만, 누구보다 그의 저작을 열심히 읽고 그 논리를 체화하고자 노력했다. 물론 직접적으로는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생각보다 더 많은 부분에서 영향 받았음을 느낀다. 세계관과 정치관이 닮아갔음은 물론, 글 쓰는 작법에서도 은연중에 그 스타일을 따라 하려고 노력하게 됐다. 직장 생활을 하는 지금도, 최장집은 여전히 내게 중요한 글쓰기 롤모델이다.


내가 사숙한 리영희, 진중권, 최장집의 공통점은 아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진보지식인이라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세 학자는 이데올로기적 색깔보다는 진실과 상식으로 대변되는 합리주의 성향이 더 강하다. 즉 모든 걸 한 방에 바꾸자는 급진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그보다는 이성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느리지만 분명하게 진보를 도모해나가는 온건주의자들이다. 그러니 평생 혁명은 꿈꿔 본 적 없는 무색무취 맹탕 진보주의자인 내게, 참 잘 어울리는 스승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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