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대웅 Jun 23. 2024

출근길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록 명곡들

직장인의 월요일 아침을 찢는 필수 BGM

그 옛날 데모 행렬의 선두에는 늘 사수대가 있었다. 이름에서 짐작하듯, 경찰과 충돌이 일어나면 본대를 지켜야 하는 자들이다. 백골단과 구사대의 서슬이 퍼렇던 1990년대만 해도 꽤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쇠파이프(빠이), 화염병(꽃병) 등 무장도 필수였다. 다만 내가 대학을 다닌 2000년대에는 그런 건 없었다. 정말 싸운다기보다는 본대가 도망칠 때까지 몸빵하는 정도랄까. 곱게 자라온 20대들이 싸워봐야 뭘 얼마나 싸우겠나. 근데 남총련(광주)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실제로 잘 싸웠다ㄷㄷㄷ     


나도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늘 사수대에 (가기 싫었지만) 불려 나갔다. 사수대도 출발 전에 결의대회를 한다. 그때마다 사수대장(지역총련 투쟁국장쯤 되는) 형이 노래를 몇 곡씩 시키곤 했다. 주로 <단결투쟁가>, <한총련진군가>, <복수가> 같은 제목부터 무시무시한 민중가요들이었다. 나도 민중가요를 좋아했다만 이런 투쟁가는 영 취향에 안 맞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투쟁가를 부르다 보면 피가 끓어오르며 힘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그래놓고 실제로 경찰과 부딪히면 도망가기 바빴다만.

     

한참이 지나 직장생활을 해보니, 이런 투쟁가(?) 플레이리스트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사실 직장도 시위현장만큼이나 전쟁터가 아닌가. 특히 월요일 출근길은 대학 시절 사수대에 나가는 것만큼이나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만들었다. 출근길 차에서 크게 틀어놓고 전투력을 끌어올릴 요량으로. 주로 강렬한 기타 사운드와 폭발적인 드러밍이 돋보이는 하드록 명곡들이다. 딸아이가 태어난 후부터는 거의 못 들었던 곡들이기도 하다. 가끔 밤에 헤드셋을 쓰고 듣는데, 소심하게 헤드뱅잉을 할 때마다 현타가 밀려온다(…).

      

어쨌든 직장인이라면 출근해서 업무 시작하기 전에 이 곡들을 한번 들어보시라. 전투력이 단박에 충전될 것이다. 오늘도 한숨 푹푹 쉬며 출근길을 나서는 당신들의 무운을 빈다. 



    

Metallica, <Master of Puppets> (S&M live)

     

헤비메탈이라는 장르 그 자체인 곡이다. 지금도 수많은 헤비메탈 곡이 발표되고 있지만, 1986년에 나온 이 <Master of Puppets>를 뛰어넘을 곡은 없을 것이다.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 모든 전쟁 영화는 숙명적으로 그 작품과 비교되는 것처럼. 그야말로 헤비메탈의 애국가(anthem)다.

      

장장 8분이 넘는 대곡이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사운드 전개가 빠르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듣다 보면 기타와 드럼으로 속사포를 쏘는 것 같다. 그렇다고 과격하게만 들리지 않는다. 사운드의 서사를 자세히 뜯어보면, 포지션 간 정밀한 역할 배분과 치고 빠지기에 놀라게 된다. 겉으로는 격렬해 보이나 속으로는 아주 논리적인 곡이라 하겠다.

     

어느덧 환갑이 넘은(…) 메탈리카 성님들이 아직도 셋리스트에 넣는 곡인 만큼, 연주 버전도 무지 많다. 그중 1999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의 협연을 강추한다. 강렬한 헤비메탈 사운드에 녹아드는 감성적인 오케스트라 선율이라니, 어색하면서도 묘하게 잘 어울린다. 영화 <아저씨>에서 꽃미남 원빈이 연기하는 인간 병기 차태식을 보는 것 같다. 폭주하는 록밴드에 맞춰 격렬하게 움직이는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모습도 킬포다.

     

Pearl Jam, <Jeremy>  


1990년대 불어닥친 너바나 신드롬은 대전 촌구석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시절 음악 좀 듣는다는 고딩들의 가방에는 죄다 <Nevermind> 앨범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교실 한 곳에서는 <Smells Like Teen Spirit>의 기타 리프가 울려 퍼지곤 했다. 메인스트림에 맞선 ‘얼터너티브’를 앞세운 너바나였지만, 트렌드에 민감한 고딩들에게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주류였다. 

    

그때도 홍대병 기질이 있던 나는 그래서 너바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과 라이벌 기믹이었던 펄잼을 들었다. 라이벌이라지만 우리나라에서 인지도는 너바나가 압도적이었다. 라디오에서 <Smells Like Teen Spirit>는 그래도 종종 나왔으나, 펄잼의 이 <Jeremy>는 거의 들어본 기억이 없다. 한참 후에야 Jeremy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한 미국 고등학생의 이름이었다는 걸 알았다. 고딩 때라 가사의 의미는 잘 몰랐지만, 소년을 추모하는 슬프고 우울한 정서에 비슷한 나이인 나도 공감했던 게 아닐까.

     

이 곡의 감상 포인트는 역시 보컬일 것이다. 그 시절 수컷미 뿜뿜하며 무대를 압도했던, 90년대 록의 섹시 아이콘 에디 베더. 그가 내지르는 거친 보이스는 이 곡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Scorpions, <Rock You Like a Hurricane>

     

스콜피온스는 가장 인기 있는 해외 록밴드 중 하나다. 그 이유는 디스코그래피를 수놓는 주옥같은 발라드들에 있다. 록발라드에 진심인 대한민국 남자들은 <Holiday>, <Still Loving You>, <Wind of Change>, <You and I> 같은 명곡들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비음에 쇳소리가 섞인 클라우스 마이네의 보컬은 애절한 발라드에서 엄청난 버프를 받는다.

     

그렇지만 이 밴드의 정체성은 역시 강렬한 하드록이다. 특히 이 <Rock You Like a Hurricane>의 초반을 장식하는 기타 리프는 그들의 발라드만큼이나 유명하다. 이 곡을 들어보면 클라우스 마이네의 그 독특한 보이스는 빼박 하드록을 위한 것(발라드는 거들 뿐)임을 알게 된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 푹푹 찌는 출근길만 떠올려도 땀이 흐르는 것 같다. 그럴 때 탄산음료 같은 청량감을 선사하는 이 곡을 들어보자.

    

Guns N’ Roses, <You Could be Mine> 

    

하드록도 힙합만큼이나 간지가 생명인 장르다. 보컬이나 연주는 구려도 괜찮으나, 간지가 안 나는 건 못 참는다. 그 점에서 건즈 앤 로지스는 최고의 밴드가 아닐까 싶다. 액슬 로즈와 슬래시라는 두 간지남의 전성기 포스는 실로 대단했었다. 특히 슬래시의 시그니처 포즈 - 실크햇에 선글라스 쓰고, 긴 곱슬머리로 얼굴을 가린 채, 담배 꼬나물고 기타를 거의 무릎까지 내려서 후려갈겨대는 – 는 그야말로 간지의 결정체였다. 물론 두건에 핫팬츠 차림으로 노래한 액슬 로즈는 간지보다는 똘끼(…)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키가 좀 작아서 그렇지, 이 양반도 전형적인 금발 미남이었다. 특히 피아노 치면서 노래할 때 그 우수 어린 미모가 더욱 빛났다.

     

문제는 이 간지남들의 우애가 그리 길지 못했다는 것. 한창 인기 많았던 1994년에 해체 수순을 밟았다. 이 <You Could be Mine>은 그들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1991년 <Use Your Illusion Ⅱ> 앨범에 들어있다. 하지만 히트곡이 워낙 빵빵 터진 <Use Your Illusion Ⅱ>의 수록곡보다는,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터미네이터 2>의 OST로 더 유명하다. 슬래시의 강렬한 기타와 액슬 로즈의 고음 절창은 <터미네이터 2>의 디스토피아적 대도시를 표현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래서인지 이 전형적인 90년대 메탈곡은 드라이브할 때도 꽤 괜찮은 BGM이 된다. 물론 출근길에 아직 덜 깬 잠을 깨우는데도 효과가 직빵이다. 

    

Limp Bizkit, <Take a Look Around>

     

지금까지 할재급 밴드들만 소개했는데, 드디어 아재급으로 넘어왔다(…). 그래봤자 60대에서 50대로 온 거지만. 장르도 좀 다르다. 앞의 밴드들이 크게 보아 하드록/메탈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이 림프 비즈킷은 뉴메탈로 분류된다. 사실 뉴메탈이란 장르도 스펙트럼이 넓긴 하다. 나는 대충 헤비메탈과 얼터너티브 록과 힙합을 섞은 장르라고 이해하고 있다. 좋게 말하면 크로스오버, 나쁘게 말하면 무근본 잡탕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림프 비즈킷도 비주얼만 보면 록밴드보다는 래퍼들 같다. 메탈과 힙합이 합쳐졌다니 꽤 시끄러운 음악일 것 같은데, 실제로 그렇다. 가사에 f로 시작하는 욕도 추임새 수준으로 튀어나오고. 그래도 2000년대 초에 인기 정말 많았다. 서태지가 솔로 데뷔하면서 이들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그저 뉴메탈 장르 특유의 분위기가 흡사한 수준이었다. 유희열에 비하면 표절의 ㅍ자도 못 꺼낼 수준이다.     


<Take a Look Around>는 이들의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다. 뉴메탈이나 림프 비즈킷을 모르는 사람도 아주 익숙할 것이다. 왜냐면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OST를 차용했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그 유명한 <미션 임파서블>의 메인 테마가 장중하게 흐르다가, 중반부터 광란의 랩과 샤우팅이 튀어나온다. 그 반전의 순간이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래서 회사에서 상사에게 킹받을 때 속풀이용으로 들어도 좋은 곡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