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배터리라는 말이 있다. 투수와 포수를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격언도 있듯, 야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포지션은 투수다. 그러나 투수의 투구는 포수의 포구를 전제로 하는 행위다. 배터리가 +극과 –극이 이어지면서 전기를 생성하듯 말이다. 따라서 뛰어난 투수가 되려면 그만큼 좋은 포수의 도움이 필요하다. 야구 역사를 봐도 그렇다. 선동렬-장채근, 정민태-김동수, 김광현-박경완, 심수창-조인성의 사례에서 보듯, 레전드 투수에게는 그를 뒷받침한 포수가 있었다.
음악의 가수와 프로듀서도 야구의 배터리와 닮았다.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가수다. 그러나 가수가 그렇게 빛나도록 모든 조건을 최적화하는 건 프로듀서다. 좋아하는 가수를 떠올리면 그만의 스타일과 개성이 함께 연상된다. 그건 많은 경우 프로듀서가 치밀한 계산에 따라 창조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가수를 깊게 이해하고 싶다면, 그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 프로듀서와 겹쳐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1990년대 가요에는 유독 좋은 가수-프로듀서 조합이 많았다. 특히 이 시기 양적‧질적으로 급성장한 발라드 장르에서 그러했다. 팝을 동경한 뛰어난 뮤지션들이 가수 못지않게 프로듀서의 길을 많이 택한 것이 이 시대 아닌가 싶다. 덕분에 가요가 팝에 한층 더 가까워지고 고급화될 수 있었다.
이문세와 이영훈은 1990년대 발라드의 대명사들이다. 보통 프로듀서가 가수를 발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둘의 만남은 말 그대로 윈윈이었다. 이문세는 이영훈의 곡을 부른 3집부터 전혀 다른 가수가 되었다. 이영훈도 이문세를 통해 발라드 마에스트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이영훈의 클래시컬하고 세련된 발라드 작법은 흔히 유재하에 비교된다. 그러나 유재하에게는 이문세 같은 페르소나가 없었다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서로가>는 이들이 합작한 시대의 명곡들 - <난 아직 모르잖아요>, <소녀>, <사랑이 지나가면>, <광화문 연가>, <옛사랑> - 에 비해 인지도는 높지 않다. 그러나 고급스럽고 서정적인 연주에 시적인 가사를 입힌, 감히 말하건대 1990년대 발라드의 완성이라고 할 만한 곡이다. 아무리 좋은 곡도 듣다 보면 식상해진다. 이 곡은 그런 거 없다. 처음 들었을 때 든 가슴 저미는 아릿함이,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정석원은 이미 015B라는 프로듀서 팀으로 1990년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그의 최고작은 015B의 그 어떤 객원가수 – 윤종신, 이장우, 김돈규 등 – 도 아닌 박정현이 아닐까 한다. 박정현의 풍성하면서도 드라마틱한 보컬은 정석원의 대곡 스타일 발라드에 최적이다. 특히 그의 시그니처인 오케스트라 대폭발을 뚫고 나올 목소리는 박정현 말고는 없을 것이다. 박정현 역시 정석원의 덕을 크게 보았다. 3집까지는 노래 좀 하는 R&B 가수였던 그녀가, 4집에서 정석원과 협업하면서 명실상부한 디바로 올라섰다.
둘의 대표작은 역시 4집 <Op. 4>다. 이 앨범에 불멸의 히트곡 <꿈에>를 비롯해서 <미장원에서> 같은 클래시컬한 대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발라드라고 무조건 빵빵 터져야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이 <앤>을 한번 들어보시라. 절제된 목소리의 박정현이 얼마나 짙은 여운을 남기는지를 알 수 있다. 거기에 정석원의 어쿠스틱 편곡도 조화롭게 녹아든다. 편곡 스타일로 보면 015B 5집의 <슬픈 인연>이 연상되기도 한다.
1990년 강수지의 데뷔에 설렜던 남학생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일찍이 가요판에서 본 적 없던 청초한 외모의 그녀가, 부끄러운 듯 살랑거리며 불렀던 <보라빛 향기>를 기억하는지? 그 노래는 제목과 달리 나를 비롯한 남자들의 가슴에 그야말로 불을 질렀다. 이 곡은 트렌디한 신예 프로듀서로 떠오른 윤상의 작품이기도 했다. 그땐 그런 용어조차 몰랐지만, 1980년대 일본에서 유행했던 시티팝 스타일의 곡이었다. 윤상은 이런 일본스러운 시티팝에 일가견이 있었다. 나중에 강수지도 일본 아이돌 쿠도 시즈카의 콘셉트를 따라 했다는 걸 알고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만.
그런데 2집에서 둘은 의외로 정통 발라드 <흩어진 나날들>을 들고 나왔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스산함의 심상이 곡 전체에서 묻어나는 명곡이다. 당시 한국 발라드의 종특이었던 뽕끼를 함유하지 않는, ‘세련된 서글픔’이 극대화된 곡이라고 하면 적절할 것 같다. <보라빛 향기>에서 통통 튀었던 강수지와 윤상은 이런 성숙한 발라드에서도 잘 어울렸다. 가수와 프로듀서로서만이 아니라, 작사가와 작곡가로서도 그렇다. 이 곡의 가사는 강수지가 썼는데, 20대 초반의 교포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문장미가 돋보인다.
1980~90년대 동아기획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때는 이 회사를 언더그라운드라고들 했다. 요즘 말로 하면 인디 레이블 정도 될 것이다. 그만큼 방송에서 보기는 어렵지만, 작가주의 성향의 뮤지션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가왕’ 조용필의 언더그라운드 버전 ‘가객’ 김현식이 수장이었으니 말 다했다.
이소라는 그런 동아기획의 마지막 불꽃과도 같은 가수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지간한 막귀도 구분해낼 만큼 독특하다. 그런데 음악 스타일에 있어서는 좀 미묘하다. 듣다 보면 동아기획의 잔향이 느껴질 때가 많다. 마치 한영애, 신촌블루스, 장필순의 바이브가 물결치는 듯하다. 물론 동아기획의 적자였던 프로듀서 김현철의 영향일 것이다. 천재 김현철의 전성기는 1집으로 끝났다고들 하지만, 그가 만든 이소라의 음반들을 들어보면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4집의 <그대와 춤을>도 그런 동아기획 스타일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사실 좀 비운의 곡이라고도 생각한다. 바로 앞 트랙인 <제발>의 어마어마한 임팩트에 묻히는 감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이소라 하면 떠오르는 명곡들 - <난 행복해>, <그대 안의 블루>, <믿음>, <바람이 분다> - 만큼 유명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역시 이 곡처럼 재지한 사운드에서 잘 살아난다는 생각을 해본다. 왕년의 동아기획도 바로 이런 퓨전재즈의 명가이기도 했고. 원래 앨범을 잘 내지 않는 이소라지만, 이런 스타일은 이제는 더 안 하는 것 같아 아쉬운 곡이기도 하다.
1990년대 발라드 계보에서 이승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활동한 변진섭, 신승훈, 조성모만큼 언급되지는 않는 것 같다.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승환은 발라드 이외 장르의 스펙트럼도 넓은 가수였고, 방송보다는 공연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본인도 발라더보다는 록커로서 자신을 규정할지 모르겠다.
다만 그러기에는 발라더 이승환의 명곡들이 워낙 많다. 판매량으로는 4집의 <천일동안>으로 상징되는, 오케스트라와 악기 편성이 빵빵하게 들어간 대곡들이 월등할 것이다. 이승환 하면 고퀄 사운드에 큰돈을 쓰는 가수로 유명하기도 하고. 그러나 초창기의 그 수줍은 듯한 미성을 느낄 수 있는 곡들도 여전히 좋다. 이 시기의 이승환과 호흡을 맞춘 프로듀서가 오태호다. 우리나라에서 감성적인 멜로디를 뽑아내는 걸로는 원톱을 다투는 뮤지션이 아닐까 싶다.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 이상우의 <하룻밤의 꿈>, 서지원의 <또 다른 시작>이 죄다 이 양반 작품이다.
이승환과 작업한 곡도 워낙 많은데, 그중에서 <눈물로 시를 써도>를 골랐다.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한 사람을 위한 마음>, <화려하지 않은 고백>은 이미 너무 유명해서. 게다가 이 곡은 무려 1989년에 나온 이승환 1집의 수록곡이기도 하다. 들어 보면 가사, 멜로디, 창법, 모두 다 맑고 순수하다는 느낌이 든다. 요즘 같은 삭막한 사회 분위기에서 나오기 힘든 화석 같은 곡이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