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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Jun 02. 2023

진화는 어디에나 있다

진화론과 선을 넘는 과학

현대야구에서 4할 타율은 신의 영역이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1941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 우리나라 KBO리그는 1982년 MBC 청룡의 백인천이 마지막이다. 일본 NPB 리그는 전무하다. 열 번 나와서 네 번 안타를 치는 게 그렇게 어렵나? 야구가 투수보다 타자의 기술적 난도가 훨씬 높은 스포츠라서 그렇다. 그래도 옛날에는 4할에 근접하는 타자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마치 공룡이 멸종하듯 사라져 버렸다. 왜 그럴까? 야구계의 가설은 세 가지다. 첫째, 요즘 선수들의 정신력이 해이해졌다. 둘째, 장리 이동과 야간경기 비중이 높아지는 등 환경이 바뀌었다. 셋째, 투수, 수비, 구단 스태프의 능력은 일취월장했으나 타격 기술은 뒤처졌다.


미국의 고생물학자이자 열혈 야구팬인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이 가설들이 죄다 틀렸다고 한다. 첫째는 전형적인 “라떼는 말이야…” 식의 과거 미화일 뿐이다. 둘째는 환경변화는 타자뿐 아니라 투수와 수비수에게도 공평하다. 게다가 선수연봉 상승, 인프라 개선 등 긍정적 변화도 있었다. 셋째는 야구의 발전 추세 속에서 오직 타격만 뒤처질 이유가 없다. 실제로 지난 100년 동안 메이저리그의 평균 타율은 2할 6푼 내외를 유지했다.



     

진화 관점에서 보는 4할 타자의 멸종


굴드는 4할 타자의 멸종을 진화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우선 두 가지 전제를 세웠다. 첫째로 야구는 최고의 선수들이 오랜 시간 같은 규칙으로 경기해 왔다. 초창기에는 경기 방식과 전략이 정립되지 않아, 압도적 선수들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시행착오가 쌓이며 리그 수준이 올라간 뒤에는 그럴 여지가 매우 적어졌다. 둘째로 선수 기량이 아무리 향상되어도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다. 예컨대 시속 200㎞짜리 공을 던지는 투수나, 바운드 볼을 홈런으로 만드는 타자는 있을 수 없다. 두 전제를 종합하면, 지난 100년간 리그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져 최근에는 인간 한계의 턱밑까지 왔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4할 타자의 멸종을 추적하는 기본 배경이 된다.

 

리그 초창기에는 타자의 수준이 당연히 낮았다. 이를 정규분포 그래프로 그려보면, 오른쪽 끝(인간의 한계) 보다 훨씬 먼 지점을 중심으로 좌우로 넓게 퍼진 종 모양을 이룬다. 이때도 리그 평균 타율은 2할 6푼이었다. 그러나 각 선수의 타율은 평균에서 떨어져 넓게 분포한다. 따라서 특히 멀리 떨어진 아웃라이어(튀는 존재), 즉 4할 타자가 간혹 출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타자들의 기량은 향상된다. 그러면 그래프는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평균을 중심으로 더욱 조밀하게 몰리는 형태로 바뀐다. 그 바로 오른쪽에는 인간의 한계가 벽처럼 막고 있다. 그만큼 변이의 등장 가능성은 훨씬 줄어들었다. 물론 이 상황에서도 평균 타율은 일정하다. 그 이유는 주최 측의 농간, 아니 조정 때문이다. 야구는 투수와 타자의 밸런스 게임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재미가 없어진다. 이를 막으려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여러 요인을 조정해서 평균 타율을 유지한다. 마운드 높이, 스트라이크존의 폭, 공인구의 반발력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야구에서 4할 타자의 멸종은 리그의 상향평준화로 인한 변이(아웃라이어)의 감소로 설명할 수 있다.

굴드의 결론은 이렇다. 리그 출범 후 약 100년간 타자들의 역량은 인간의 한계 직전에 이를 정도로 상향 평준화했다. 여기에 더해 리그 사무국이 흥행을 위해 평균 타율을 2할 6푼 선으로 꾸준히 맞추었다. 그 결과 변이, 즉 4할 타자라는 아웃라이어가 튀어나올 가능성은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굴드의 이러한 해석에는 진화론의 기본 논리가 투영되어 있다. 이렇듯 진화론의 효용은 과학 연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어디든 시간과 생명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존재한다면, 거기에는 진화도 있다.



     

자연선택의 과학적 논리

     

진화론의 발견자는 모두가 알듯 영국의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다. 1831년 갓 대학을 졸업한 다윈이 해군함 비글(Beagle)호에 타면서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당시 영국은 식민지 개척을 위해 먼 오지에도 군함을 보내 조사 활동을 벌였다. 비글호는 측량 임무 중 선장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후임 로버트 피츠로이(Robert FitzRoy) 대령은 재출항을 앞두고 말벗이 될 젊은 박물학자를 동승시켰다. 그가 다윈이다.

 

5년이나 걸린 이 항해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1835년 9월의 갈라파고스 제도였다. 이곳에는 핀치라는 새가 섬마다 각양각색의 종으로 존재했다. 본래 다윈은 이것들이 각기 다른 새라고 생각해 동물학자 존 굴드(John Gould)에게 조사를 의뢰했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다윈이 의뢰한 13종의 표본은 모두 핀치였다. 이들은 같은 종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신체 특징, 특히 부리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갈라파고스의 핀치는 1,000여㎞ 떨어진 남미대륙의 종과도 유사했다. 남미대륙이 바다에 의해 갈라지면서 생물 종도 변화했다고 가정하면 이를 설명할 수 있었다. 핀치는 갈라파고스라는 새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를 겪었음이 분명했다. 개체 수 증가로 먹이 쟁탈전이 격화되었을 것이고, 다양한 먹이를 섭취하면서 부리를 비롯한 신체 특징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 차이가 심해져 아예 서로 교배가 안 되는, 다른 종으로 분리되었을 것이다. 변이가 새로운 종까지 만들어낸 셈이다. 다윈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이렇게 작지만 밀접하게 연관된 새들의 그룹에서 나타나는 구조의 점진적인 변화와 다양성을 볼 때, 어쩌면 이 제도에 있던 소수 토착종 새들 중에서 하나의 종이 선택되어 여러 가지 다른 목적에 맞게 변종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할 수 있다.


다윈의 상상은 곧 과학으로 발전했다. 다윈은 동물 사육사들이 좋은 품종을 골라 교배시키는 과정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자연에서도 일어난다는 대담한 발상을 했다. 다윈의 시그니처인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은 이렇게 인위선택(artificial selection)에 대한 유비 개념으로 고안되었다. 사육사가 원하는 품종을 인위적으로 개량하듯, 자연도 특정 종을 골라냄으로써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는 새 환경의 먹이쟁탈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신체적 변화를 겪었고 결국 다른 종으로 분리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은 왜 그런 선택을 하는가? 즉 자연선택은 무엇을 계기로 일어나는가? 다윈을 가장 괴롭힌 질문이 이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경제학이 힌트를 주었다. 다윈은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의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에서 중요한 영감을 얻었다. 이 책의 요지는 이렇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따라서 식량 생산은 성욕본능에 따른 인구압력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 결과 인류에게 기근과 질병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기근과 질병이 인구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여 인류는 유지될 수 있다.


다윈은 이 냉혹한 메커니즘이 자연에도 적용된다고 보았다. 특히 그가 주목한 부분은 인구와 식량 간 불균형으로 인한 생존투쟁의 필연성이었다. 생존투쟁에 적응하여 살아남은 종들은 자신의 특성을 후대로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은 도태된다. 이러한 변화가 긴 시간 누적되면서 진화가 일어난다.


다윈의 진화론은 기나긴 숙고와 검증을 거쳐 완성되었다. 1837년의 연구 노트에서 한 종이 새로운 종으로 가지치기해 나가는 계통도가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22년 뒤에야 발표되었다. 이렇게 오래 걸린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다윈의 신중함이다. 그는 자신의 이론이 어떤 충격을 일으킬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완벽하게 근거를 갖추어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로 다윈의 급작스러운 일탈이다. 그는 1846년 따개비에 꽂혀서 8년간 그것만 팠다. 왜 하필 진화론을 완성해 가는 중요한 시기에 그랬을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했으나 명확히 알려진 이유는 없다. 다만 따개비 연구가 가벼운 부업은 아니었음이 확실하다. 두 권의 따개비 연구서는 1,000페이지가 넘는다.


1858년 다윈은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Alfred Russel Wallace)로부터 최근 쓴 논문의 논평을 부탁받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논문에는 지난 20년 동안 벼려온 자연선택론이 그대로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발표를 미루는 사이에 후배에게 선수를 뺏긴 것이다. 아마 그 순간 다윈은 따개비에게 바친 8년의 세월을 후회했을 것이다. 다윈은 쓰던 책을 급히 요약본으로 바꾸어 탈고를 서둘렀다. 그리고 자연선택에 대한 논문을 월리스와 공동 저자로 발표했다. 월리스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평소 다윈을 존경했기에 오히려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논란과 파장

    

1859년 드디어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즉 생존투쟁에서 유리한 종족의 존속(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이하 『종의 기원』)이 출간되었다. 초판 1,250부가 첫날 다 팔렸다. 그리고 엄청난 관심과 논란이 뒤따랐다. 슈퍼스타가 되려면 열성팬과 안티팬이 모두 있어야 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윈은 슈퍼스타였다. 안티팬의 선봉은 (누구나 예상하듯) 종교인들이었다. 출간 직후 다윈은 기사 작위 후보로 추천되나, 종교인들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안티팬 중에는 전 비글호 선장 피츠로이도 있었다. 과학자이자 종교인이었던 그는 다윈을 등용해 『종의 기원』에 일조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게다가 재정난까지 겪다가 결국 자살했다. 비글호 선장의 비극은 그렇게 한 번 더 반복되었다. 반면 열성팬도 적지 않았다. 다윈은 평생 수천 명의 과학자와 1만 통이 넘는 편지를 교환했다. 그중 토머스 헉슬리(Thomas Huxley)가 있었다. 헉슬리는 불가지론의 고안자답게 창조론 일변도의 세계관에 반발해 진화 개념을 지지했다. 다윈이 보낸 『종의 기원』 초고를 읽은 그의 반응은 이러했다. “이런 걸 진작 생각하지 못했다니 바보 같군!” 헉슬리에게 다윈의 자연선택은 콜럼버스의 달걀이었던 셈이다. 헉슬리는 요즘으로 치면 키보드워리어 기질이 다분했다. 그래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다윈을 대신해 온갖 논쟁에 참전했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그에게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은 썩 잘 어울렸다.


『종의 기원』으로 다윈은 진화론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다윈을 진화론과 동일시하는 관념은 다른 각도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진화가 다윈만의 발명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전에도 생물이 진화한다는 관념은 막연하게나마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에도 시간에 따른 생물의 변화라는 발상이 있었고, 중세 이슬람에서는 동물이 생존투쟁을 거치며 변형된다는 이론도 등장했다. 『종의 기원』 출간 즈음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진화를 연구하고 있었다. 다윈의 공로는 진화를 자연선택이라는 논리적 설명을 통해 과학으로 정립한 것이다. 둘째로 다윈은 진화 개념의 사용에 매우 신중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의 오해와 달리 다윈은 『종의 기원』 초판에서 ‘evolution(진화)’이라는 명사를 쓴 적이 없다. ‘evolved(진화했다)’라는 동사를 마지막 문장에서 단 한 번 썼을 뿐이다. 『종의 기원』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이기도 하다.

     

처음에 몇몇 또는 하나의 형태로 숨결이 불어 넣어진 생명이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이 행성이 회전하는 동안 여러 가지 힘을 통해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러한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1859년 초판에 대한 서울대 장대익 교수의 번역이다. 여기서 ‘전개’로 번역한 원문의 단어가 ‘evolved’다. 기존 역자들은 ‘진화’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다윈은 1872년 6판부터 진화라는 명사를 썼다. 이전까지 다윈이 썼던 표현은 ‘변이를 수반한 계승(descent with modification)’이었다. 진화라는 간단한 명사를 두고 이렇게 여러 단어를 조합한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진화가 ‘더 나은 상태로의 진전’이라는 목적론적 함의를 가졌기 때문이다. 즉 진화는 진보(progress)와 구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윈이 정의한 자연선택은 어떤 목적이나 진전, 개선을 전제하지 않았다. 자연선택은 특정 종이 우월해서가 아닌, 우연히 그 환경에 적합해서 이루어진다. 장대익 교수의 번역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종의 기원』에서 가장 유명한 마지막 문장. 초판에서 다윈은 evolved라는 동사를 단 한번 썼을 뿐이다.



     

과학을 넘어선 과학

     

『종의 기원』의 논지는 명료하고 직관적이었다. 다만 19세기에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거대한 이야기였고 실증적인 확인도 어려웠다. 이 문제는 20세기 들어 유전학, 세포학, 식물학, 고생물학, 생태학 등이 발달하면서 점차 해결되었다. 이 분야들이 진화라는 공통의 테마를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수학과 통계학도 동원되면서 다윈이 제기한 논점들의 근거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진화론은 현대과학을 떠받치는 근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진화론은 사회과학의 태동과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사회과학의 개척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과학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자연과학의 실험적, 실증적 방법론을 벤치마킹했다. 진화론도 마찬가지였다. 긴 시간에 걸친 생물 종의 변화를 추적하는 진화론은 역사와 사회를 탐구하는 이들에게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회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는 다윈보다도 먼저 진화 개념을 사용했다. 그 핵심 메커니즘은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으로 요약된다. 이를 다윈의 용어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스펜서가 고안한 것이다. 잘 알려졌듯 무한경쟁에서 적응한 자,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스펜서의 진화 개념은 다윈과 달리 진보와 진전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냈다. 스펜서는 적자생존을 통한 진화의 원리가 자연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된다고 보았다. 이를 사회다윈주의, 또는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이라고 한다. 사회진화론은 사회의 발전 법칙을 최초로 체계화했고 이것이 사회학의 기원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자 이를 정당화하는 논리로서 자본가와 정치가들에게 환영받았다. 이로써 다윈의 의도와는 달리 ‘진화 = 적자생존’의 인식이 널리 퍼졌다. 스펜서에게 부정적이었던 다윈도 나중에는 이 개념의 직관성과 편의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맬서스와 다윈의 관계에서 보듯 진화론과 경제학은 원래 가까웠다.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아예 경제학에 진화론을 섞어 진화경제학을 창안했다. 정통 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성을 불변의 법칙으로 전제하고 연역적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시장의 수학적 모델링도 그래서 가능하다. 그러나 베블런은 경제학을 인과 과정에 의한 변화와 연쇄의 학문이라고 봤다. 시장도 정태적 수학 모형이 아닌 역동적 사회 제도로 파악했다. 이 제도 형성에 인간의 본능과 습관이 영향을 미친다. 본능과 습관은 논리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경제분석에는 경제학뿐만 아니라 심리학, 인류학, 생물학 등의 다양한 도구들이 필요하다. 베블런에 의하면 인간의 경제생활 자체가 생존투쟁이며, 자연선택을 통한 적응의 과정이다. 그의 시그니처인 유한계급(leisure class)도 이 맥락에서 이해된다. 합리성 따위는 개나 줘버린, 과시적, 낭비적 소비를 일삼는 유한계급은 정통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 베블런은 이것이 부의 획득 경쟁에서 발생한 인간의 자존심과 약탈적 습관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경제학에서 베블런 효과는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사치품에 돈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에도 진화론은 학문 사이에 존재하는 선들을 넘나든다. 앞서 살펴본 4할 타자의 멸종도 야구와 진화론의 흥미로운 크로스오버다. 몇 년 전 베스트셀러가 됐던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의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도 진화론과 지리학의 접점에 있다. 왜 유럽이나 북미는 풍요로운데 아프리카는 그렇지 못한가? 이러한 불평등은 유전적 차이 때문인가? 이 책은 환경적 조건이 결정적이었다고 답한다. 그리고 각 민족이 그러한 환경에 처하게 된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다며 인종차별적 설명을 배격한다. 다윈이 자연선택을 특정 종이 우연히 그 환경에 적합했던 결과로 설명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일화다. 공자는 제자인 자공에게 앎의 본질에 대해 말한다. 자신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써 모든 것을 꿰뚫었을 뿐이라고. 이른바 일이관지(一以貫之)다. 공자의 이 가르침은 시공간의 커다란 간격을 넘어 진화론과 맞닿는다. 생물학에서 시작된 다윈의 대담한 발상은 현대문명의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로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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