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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Jul 10. 2023

커피의 추억

* 이 글은 @이유담 작가님의 2023년 5월 19일 글 '시아버지와 믹스커피'를 읽고 써본 것입니다.


나는 커피를 꽤 마시는 편이다. 대부분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출근 후 더블샷으로 1잔, 점심 먹고 1잔, 저녁 먹고 또 1잔, 야근이라도 하면 또 1잔, 새벽에 원고 쓰면서 1~2잔. 대충 하루 5잔 내외다. 어머니와 아내는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새벽 4시에 한 사발 들이켜도 끄떡없이 곯아떨어진다. 아내는 내가 둔해서 그렇다고 한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학 2학년 때였다. 고3 때도 잠을 쫓는다며 커피를 마시는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초특급 모범생이었던 나는 어른 되면 먹으라는 부모님 말씀에 따라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성인이 되어서도 잘 안 먹었다. 커피 말고도 마실 게 많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주랄지 맥주랄지 막걸리랄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의 막걸리로 시작된 그해 1999년은 밀레니엄으로 바뀌는 순간까지 술로 수미상관을 이루었다. 아마 그 시절 술에다 커피까지 마셨으면 내 위장은 진작에 빵꾸 났을 것이다.

     

당시 학생회관 층마다 커피 자판기가 있었다. 밀크커피 1잔에 150원이었다. 이것도 가격이 오른 것으로, 우리 학번 입학 전전 해에는 100원이었다. 2학년이 되어 술독에서 반쯤 빠져나오자 커피가 눈에 들어왔다. 마셔보니 맛이 괜찮았다. 한 번 두 번 마시다가 결국 마니아가 되었다. 그런데 같은 밀크커피라도 지금과는 맛이 전혀 달랐다. 요즘 나오는 맥심 화이트골드니 프렌치카페니 하는 프리미엄(?) 밀크커피들은 그야말로 기술혁신의 총아들이다. 그 시절 밀크커피는 훨씬 더 텁텁하고 특히 뒷맛이 좋지 않았다. 한잔 마시고 나면, 혀 깊숙한 곳에 이물감이 느껴져서 입을 헹구어야 했다.

김연아가 광고하는 맥심 화이트골드는 진심 밀크커피계의 GOAT라고 할만하다.

 

커피를 마시면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글을 쓸 때 커피를 마시면 글빨이 잘 받는다는 것이다. 학생회 정책 간부였던 나는 그때도 글 쓰는 게 주 업무였다. 대자보, 자료집, 정세분석, 선언문, 결의문 등등 종류도 많았다. 그럴 때 커피를 마시면서 일하면 희한하게 잘 되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나 같은 정책 간부에게 극성수기는 연말의 총학생회 선거였다. 애들 선거가 뭐 얼마나 하겠어, 싶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정권을 둘러싼 정파별 합종연횡과 권모술수가 다선 국회의원들도 울고 갈 수준이었다. 그래서 약 2주간의 선거운동 기간에는 매일 날밤을 새는 것이 당연한 일과였다.

      

그 광경이 아직도 기억난다. 좁아터진 동아리방(선거운동본부)의 가운데를 긴 테이블이 차지하고 벽면으로 컴퓨터가 세 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밤만 되면 너구리 굴 마냥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물론 그때도 선진화된 21세기였으니 실내에서 담배 피우는 몰상식한 인간은 없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신사협정이 선거 때만 되면 깨졌다. 나만 유일한 비흡연자로서 줄담배 대신 줄커피를 마셔대며 벌건 눈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책상에는 재떨이의 담배꽁초와 내가 먹은 커피의 종이컵들이 경쟁하듯 쌓여있었다. 내 커피에 누가 실수로 담뱃재를 턴 것을 모르고 마셨다가 그대로 뿜었던 적도 있었다. 형, 누나들은 막내인 내게 “너는 어떻게 된 게 담배도 안 피우고 글을 쓰냐? 그 커피는 또 뭐야?”라며 신기해했다. 이 버릇이 40대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질 줄은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2003년, 내가 기억하는 커피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있었다. 나는 군대를 다녀오고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다시 학생회로 기어들어가 있었다. 학생회 간부의 하루는 아침 선전전으로 시작한다. 7시 30분 즈음 유인물을 한 보따리씩 들고 교문으로 나가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복학하고 이틀째인가 되는 날이었다. 학생들이 웬 하얗고 커다란 컵을 들고 오는 게 눈에 띄었다. 저게 뭘까. 뭔데 한두 명도 아니고 저렇게 떼로 들고 오는 거지? 며칠 구경만 하다가 궁금증을 못 참고 후배에게 물었다.

    

“00아, 저 컵 뭐야? 뭔데 저렇게들 들고 와?”
“저거 커피잖아요. 처음 봐요?”
“커피? 아니 무슨 커피가 저렇게 커?”
“아니 이 형이 누가 복학생 아니랄까봐... 요즘은 다들 저렇게 마셔요ㅋㅋㅋ”
“헐...”

     

학교 앞에 로즈버드라는 테이크아웃 커피점이 있었다. 거기서 그렇게들 커피를 사서 등교하는 것이었다. 며칠 뒤 그 착한 후배는 나를 데리고 그곳에 갔다. 커피를 사주겠다며. 메뉴판을 본 나는 두 번 놀랐다. 일단 카페 아메리카노는 무엇이고 카페 라떼는 무엇이며 카라멜 모카는 또 뭐란 말인가. 영어인지 불어인지 독어인지 감도 안 잡혔다. 그리고 커피는 원래 이진법 아니었던가? 밀크커피 아니면 블랙커피. 이진법의 문명에서 십진법의 세계로 이동한 나는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두 번째 충격은 더 컸다. 커피 한잔에 2,300원? 그것도 제일 싼 메뉴가 그 가격이었다. 2년여 만에 학교에 돌아왔어도 학생회관 자판기 커피는 당연하다는 듯 150원이었는데. 그 10배가 넘는 로즈버드 커피는 말하자면 생태계를 파괴하는 괴물 같아 보였다. 그때의 문화충격이란 지동설을 처음 접한 중세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처음 로즈버드 커피를 마셔보았으나 맛도 없었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150원짜리 밀크커피만 마셨다.  

그 시절의 로즈버드 커피... 내가 다닌 학교 앞의 매장도 대략 이런 느낌이었다.

그 후로 어쩌다가 아메리카노, 그것도 벤티는 먹어줘야 성에 차는 덕후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중세인이 종교개혁과 30년 전쟁과 산업혁명을 거쳐 근대인이 되어가듯, 나도 서서히 그렇게 새로운 문명에 적응한 것 같다. 아니 적응한 정도가 아니다. 며칠 아메리카노를 안 먹으면 그 씁쓸한 맛이 절로 입에 맴돌며 금단 현상이 일어난다. 특히 스타벅스라는 자본주의의 맛, 전 세계 어디서나 공평한 그 탄 맛에 완전히 길들여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외국의 낯선 도시에 가면 중고 레코드 가게부터 찾는다고 했다. 나는 구글맵을 켜고 스타벅스 매장이 있는지를 우선 확인한다.

    

하지만 가끔은 20여 년 전의 그 학생회관 밀크커피가 그립다. 1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자판기에 넣으면, 50원짜리 동전과 함께 손에 쥐어졌던 따뜻한 종이컵의 느낌. 달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텁텁한,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뒷맛을 남겼던 그 커피. 냉정히 생각해보면 딱 150원만큼의 가치를 했던 것 같다. 그래도 가난한 지방러 대학생의 여유로운 시간, 또는 치열했던 시간을 늘 함께해주었다. 인생에서 가장 덜 이기적이었던 내 20대의 동지 같은 커피였다면 지나친 의미부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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