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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개' 아니라서 다행이야
낯선 이웃들과 한마음이 되다 & 반전의 결말
by
우니크
Jun 11. 2022
저녁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가게 앞에 웬 진돗개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아주 고운 아이보리 빛깔의 털을 가진, 눈이 참 예쁜 진돗개였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많은 동네라
가끔씩 물건을 사기 위해 잠깐 상점 앞에 반려견을 묶어두는 경우가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가려는데, 순간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진돗개의 목줄이 대형 캐리어에 묶여 있었고, 캐리어는 도보 옆 펜스에 자물쇠로 고정되어 있었다.
'보통 산책하러 나올 때 캐리어를 가지고 나오진 않잖아...?'
이상함을 느꼈지만 주인이 올 수도 있고 진돗개가 놀랄 수도 있어 몇 걸음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그렇게 약 20분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더군다나 반려동물과 산책하러 많이 나오는 공원 앞에 개를 유기하고 갔다는 사실이 기막혔다.
"어떡하지 진짜... 정말 누가 여기 버리고 간 건가.. 이렇게 사람 많은 도로 한복판에?"
주변에서 같이 상황을 지켜보던 행인이 내 혼잣말을 듣고 답했다.
"아까 여기 물건 사러 들어가기 전부터 개가 있었는데, 가게에서 나오고 나서도 계속 있더라고요."
"혹시 모르니까 제가 가게에 들어가서 주인 있나 찾아볼게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점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안에 계신 손님 중 밖에 개를 데려오신 분이 있는지 큰소리로 외쳤다.
"밖에 진돗개 데려오신 분 계신가요~? 밖에
진돗개 묶어두신 분 여기 없으신가요~
?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날씨가 따뜻해졌지만 여전히 저녁엔 바람이 불어 제법 서늘했다. 밤새 여기 이렇게 있는 걸까? 굶은 건 아닐까? 편의점에서 사료 캔이라도 사 먹여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주위로 몰려들었다.
진돗개는 정말 가만히 바닥에 엎드려 있었는데
,
그렇게 얌전할 수가 없었다. 눈꼬리가 쳐진 큰 눈망울이 왠지 슬프게 느껴졌고,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 너무 안쓰럽게 느껴졌다.
혹시 몰라 조심스럽게 진돗개 뒤쪽으로 다가가서 캐리어를 들어보았다. 순간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빈 캐리어였다.
진돗개 목줄이 묶여있던 캐리어
곧이어 가게 점원이 밖으로 나오더니 일단 경찰에 신고했다고 전했다.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도 무슨 일이냐며, 개를 누가 버리고 간 거냐고 물었다.
5분쯤 지나자 경찰이 도착했고 상황을 설명했다.
사람이 몰려들어도 크게 당황하지 않던 진돗개는
경찰관이 자기 쪽으로 다가오고 캐리어를 살피자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전혀 짖지 않았다. 너무 순한 아이였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저희가 데려가서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요. 만약 개가 몇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다면 구청에 연락을 취하면 담당자가 시설로 데려갈 수 있습니다."
"CCTV를 확인할 순 없나요?"
"이게 범죄 사건이 아니라서.. CCTV를 확인하는 건 어렵습니다."
"그럼 어떡하죠.."
"다행히 아주 추운 날씨는 아니라서.. 저희가 몇 십분 동안 방치되었다고 해서 조치를 취했다가 그 사이 혹시 주인이 데려갈 수도 있고요. 몇 시간 동안에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으면 구청에 연락을 취합니다. 구청에도 야간 당직자가 있습니다."
달리 방도가 없고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는 말에 마음이 착잡했다. 빈 캐리어에 묶여 약 30분째 여기 있었는데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몇 시간을 더 기다려봐야 한다니..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현실적으로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발만 동동 구르며 진돗개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었다
.
그런데 그때, 어떤 여성이 놀란 얼굴로 뛰어왔다. 그리고 여태까지 얌전히 엎드려만 있던 개가 소란스럽게 뛰어오르며 여성을 매우 반겼다.
진돗개의 주인이었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경찰관과 진돗개, 주위 사람들을 번갈아 보며 무슨 일인지, 혹시 진돗개가 짖었는지 물었다. 그런데 대화를 들어보니 영어를 섞어 말하는 것 같아 자세히 들어보니 외국인이었다.
그녀가 들고 있던 물건 상표는 아까 주인을 찾으러 들어갔던 다이X의 상표였다. 알고 보니 그녀는 한국어가 서툴렀다. 그래서 내가
가게에 들어가
주인을 찾았을 때 못 들었던 것이었다.
경찰관은 진돗개가 여성이 나타나자 보이는 반응과 여성이 캐리어에 채워진 자물쇠를 여는 것으로 보아 주인임을 확신했고
,
개를 이렇게 두시면 안 된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서툰 한국어로 죄송하다며 연신 인사를 하는 그녀에게 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영어로 말했다.
"Sorry, we thought someone abandoned the dog because he was here for more than 30 minutes, and the luggage seemed empty."
[죄송해요, 진돗개가 30분 넘게 여기 있길래 누가 버리고 간 줄 알았어요. 캐리어도 비어 보였고요.]
그녀는 미안하다며 인사를 했지만 사실 내게 미안할 일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다행이었다.
그 예쁜 아이가 버려진 것이 아니라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한마음으로 진돗개를 안타까워하며 자리를 뜨지 못했던 모습, 주인이 나타나자 안도하며
기쁘게 돌아갔다는
사실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기분 좋은 초여름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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