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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구름 Sep 20. 2020

일의 의미 (1) - 왜 일을?

'왜 일을 하는가?'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루는 오전 등굣길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한다. 뭐 특별한 이유 없이 한번 부려보는 응석이다. '왜 학교에 가야만 하는 거야?' 묻는데 나도 모르게 답변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학교 안 가면 커서 뭐 먹고살게?' 배워야 대학에 가고 대학에 가야 취직을 하고 취직을 해야 돈을 벌고 돈을 벌어야 먹고 싶은 것을 사먹지!


나의 숨은 논리는 그랬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너희들 학교 안 가면 경찰이 아빠 엄마 잡아가! 아빠 엄마 없이 살 수 있겠어?'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대화를 종료한다. 학교에 잘 다니면 일어날 좋은 일들과, 잘 다니지 않으면 일어날 좋지 않은 일들을 열거한다. 당근과 채찍의 주문을 외운다.


회사에서 직원들은 '왜' 일을 해야돼?라고 묻지 않는다. 부당한 일을 시키거나, 다른 부서의 일을 떠넘겨 받을 때,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느냐고는 묻는다. 일 하러 회사에 들어와서는 왜 일을 하느냐고 묻는 바보는 없다. 묻더라도 답은 뻔하다. 궁금하면 그만둬 보시든가.


회사도 우리의 기대에 부응해준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었던 똑같은 논리를 제시하면서.


열심히 하면 더 준다! 못하면 책상 뺀다!


하지만, 일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왜’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면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왜 일을 하는가?'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당연히 가장 먼저 나오는 답변은 '돈'이다. 직장인 중 한 명이 ‘'돈이요’라고 이야기하면, 다른 학생들이 웃는다. 나도 웃는다. 너무 뻔한 질문에 뻔한 답변이라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돈'이 일을 하는 유일한 이유인 것 같아 멋쩍어 웃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나서 다양한 답변들이 오고 간다. 자아실현. 개인의 성장. 재미. 가족.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서 '당신이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상속받는다면, 일을 계속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이를 줄여서 '복권 질문(lottery question)'이라고 부른다. 첫 설문은 1955년에 수집되었다. 나는 설문 결과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랐는데, 응답자의 약 80%가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15년 후, 1970년대에 실시된 조사에서는 질문이 약간 변형되었지만, 그 의미는 같다. '당신이 남은 여생 동안 편안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얻게 되면, 일을 계속할 것입니까?'  72%가 계속 일을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여전히 놀라운 수치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을 계속하겠다는 응답률은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나의 예상처럼 급격하게 낮아지지는 않았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의 조사를 보면 68%가 '일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심지어 1987년 일본의 사례를 보면 93%가 일을 계속한다고 했다. 실제 복권이 당첨된 사람을 추적한 연구도 진행되었다. 놀랍게도 100명 이상의 복권 당첨자들 중에 85%가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울산지역 40여 명의 직장인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결과는 비슷했다. 73%의 직장인들은 모두 어떤 형태로든 일을 계속한다고 답했다. 회사 일이 맞지 않고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이직을 해서라도 일은 계속하겠다고 한다.


'복권 질문'의 결과를 더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사람들은 일을 계속하기를 원하지만, 꼭 '지금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즉, 70%의 사람들은 여전히 일하기를 원하지만, 지금 현재 직장에 머물겠다는 사람은 30%로 줄어든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일이란 내 삶에 중요해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단, 지금 직장은 빼고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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