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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구름 Sep 23. 2020

인공지능은 인간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기계(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1984년 개봉한 영화 터미네이터는 인간과 인공지능으로 의식을 갖게 된 기계와의 싸움이었다. 영화에서 ‘스카이넷’이라는 인공지능은 인간을 멸종시키기 위해 핵전쟁을 일으키고, 살아남은 인간들을 제거하기 위해 터미네이터를 만들었다. 살아남은 저항군의 리더 ‘존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스카이넷은 T-800이라는 테미네이터를 1984년의 과거로 보내게 된다. 영화의 특수효과도 뛰어났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탄탄한 세계관으로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개인적으로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 보다 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1999년 개봉한 매트릭스였다.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은 인간을 적으로 간주하고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매트릭스에서는 자신들의 에너지원을 위해 인간을 활용하기로 한다. 커다란 인큐베이터에서 인간들은 가상의 의식세계 속에 살아가며 자신의 생체에너지를 기계에 공급한다.


애플의 시리, 구글의 어시스턴트, 아마존의 알렉사 등의 인공지능 비서들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 나는 아직 애플의 시리에게 명령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색하다. 가끔 장난 삼아 알람을 설정해볼 뿐이다. 하지만, 초등학생 자녀들은 시리와 대화를 곧잘 한다. 시리의 농담에 재미있게 웃는다. 시리에게 심심하다며 놀아달라고 떼쓰기도 한다. SF영화의 상상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영화처럼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게 될까?


인간이 만들어낸 피조물이 인간을 다스리는 현실은 먼 미래 인공지능이라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역사학자 유발하라리는 책 ‘사피엔스’에서 우리가 세계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한다. 예를 들어, 보잘것없었던 식물인 밀을 돌보고 대량생산을 하게 된 것은 생존과 번식의 관점에서 인간의 승리가 아닌 밀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세기에 발병된 인간의 피조물 ‘기업’은  인간을 길들여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기업은 본래 인간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혼자 일하기보다 여럿이 역할을 나누어 일을 하면 생산성이 높아지고 삶은 풍요로워질 수 있다. 기업은 사람들이 함께 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인간의 지배를 받던 기업은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풍요와 행복을 위해 기업을 창조했다. 이제 기업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인간에게 행복을 잠시 미루라고(포기하라고) 강요한다. 기업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인간의 가치가 낮아지고 있다. 기업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종(specie)으로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자신을 창조해낸 인간을 도구화, 수단화하고 있다.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의 영화처럼 인공지능이 자아의식을 갖더라도 인간을 지배하지는 못할 것 같다. 인공지능은 더 강력한 기업의 지배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인공지능 기술은 기업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있다. 은행들은 챗봇을 사용하여 고객상담사 대신 고객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자율주행을 통해 고객이 주문한 피자를 배달한다. 채용 면접관이 되어 응시자가 말하는 목소리 톤, 얼굴 표정, 답변을 통해 직무적합도를 판단한다. 마음만 먹는다면 수백 명을 동시에 면접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은 누가 더 기업에 쓸모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 경쟁하고 있다.


터미네이터의 '존 코너'와 매트릭스의 '네오'는 모두 인공지능과 기계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우는 저항군이었다. 기계로부터 인간의 지위를 되찾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 또한 기업의 지배를 받을 테니...





*위의 내용은 9월 3일 울산매일 칼럼에 작성한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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