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의미. 참 쓰기 힘든 주제이다. 그 이유는 나에게 있어서 '일의 의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의 의미'에 대한 주제는 꼭 한번 정리하고 싶었다.
앞에서 일은 직업, 경력, 소명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는 일을 통해 얻어지는 그 무언가이다. 즉, 일은 수단이자 통로이고, 이를 통해 돈, 경력, 소명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일의 의미에 대한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예일 대학교의 Amy Wrzesniewski 교수는 일의 의미(meaning of work)와 일의 의미충실성(meaningfullness of work)을 구분하여 설명한다.
일의 의미는 직업, 경력, 소명과 같이, 일을 통해 얻게 되는 것에 대한 의미이다.
일의 의미 충실성은 일의 수행 과정에서 일 자체를 통해 경험되는 의미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는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한다. 이때 '음식의 맛'에 대한 논의는 빠져있다. 살기 위해 먹든, 먹기 위해 살든, 음식은 맛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도 중요한 질문이지만, 일 자체가 의미 있게 경험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일의 의미충실성 (meaningfulness of work)이다.
일의 의미 충실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째, top-down 방식이다. 회사가 일을 수행하면서 의미와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직무를 재설계하는 방법이 있다. 둘째, bottom-up 방식이다. 스스로 의미 있는 일이 되도록 자신의 과업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일의 의미에 관련하여 내가 설명하고 싶은 것은 bottom-up방식으로서 일의 의미 찾기이다. 이를 직무 빚어내기(job crafting)이라 한다.
직무 빚어내기는 우리 스스로 주어진 과업의 경계와 관계를 재정의하여 일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직무 빚어내기가 새로운 단어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조사에 의하면 우리는 (알게모르게) '직무 빚어내기'라는 것을 통해 일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릴 적 꿈이 선생님이었던 한 사람은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일반 기업에 취업을 한다. 일을 하다 보니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 전문가가 되었다. 이런 전문 지식을 잘 정리하고 다듬어서 후배들에게 전수해주기 시작했다. 물론, 회사가 요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일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이것이 직무 빚어내기의 한 형태이다. 스스로 과업의 경계를 변화시켜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직무 빚어내기는 직무를 수행하는 우리들이 주체적으로 일의 의미를 변화시킨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아래의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과업의 변화
관계의 변화
인지적 변화
첫째, 과업의 변화이다. 이는 자신이 해야 하는 과업의 내용, 유형, 범위를 확장시키거나 변화시키는 것이다. 평소 IT기술과 마케팅에 관심이 있는 인사 담당자는 채용과정에서 IT기술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또한, 교수로서 교과서 내용만을 가르치는 것도 충분하지만, 현시대에 중요한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찾고 수업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것도 (너무 당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교수들도 많다) 스스로 과업을 변화시켜 일을 의미 있게 만드는 예가 될 수 있다.
둘째, 관계의 변화이다. 우리는 일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의사소통을 한다. 이때 관계 맺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변화시킴으로써 일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 위의 예처럼, 후배들을 관리/감독하는 관계는 자신의 전문지식을 전수해주는 멘토/멘티의 관계로 확장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나는 대학원에서 직장인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교실에서의 교수-학생 관계를 확장시키기 원했다. 이를 위해, 독서토론 모임을 만들고 그들과 교류하였다. 교실 밖에서는, 즉, 독서토론 모임에서 만큼은 각자 전문 지식을 가진 동료로 서로를 인식하게 되었고, 나는 그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단지 교수-학생의 관계를 변형시킴으로써 이후 가르치는 일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우리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의사소통한다. 이들과 맺는 관계를 조금만이라도 신경 쓴다면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있을 수 있다. 이는 관계 '무시'하기를 통해 관계에 일정한 선을 긋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 변화를 통해 일의 의미가 변화될 수 있다. )
셋째, 인식의 변화이다. 이는 자신의 과업은 그대로이지만 이를 인식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청소노동을 하는 루크라는 사람은 '진공 청소 돌리기, 화장실 청소하기 등등'의 해야 할 일들로 자신의 직무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통해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자신의 궁극적 과업으로 인지하였다. 이러한 인지적 변화로 자신의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직무 빚어내기
나는 '직무 빚어내기'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이 단어와 함께 과업/관계/인식의 변화를 곱씹는다. 이러한 단어와 개념은 내가 현재 처한 일의 현실에서 어떻게 일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나침판 역할을 해준다. 돈도 좋고, 경력도 좋고, 소명도 좋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의미있고 즐거워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은 지금 '주어진' 일에서 어떻게 일의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