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너빈 Feb 14. 2024

갑이 되어 다시 만나다. 계약직인 날 무시한 부장님.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거짓이 없음을 고하고 글 시작하겠습니다. 백프로 실화입니다.


첫 회사 다닐 때 알고 지내던 영업 부장님. 그분은 자회사 계약직이었던 저와는 다르게 모회사의 정직원이었어요. 너무 적었던 연봉으로(연봉 천오백) 그 회사를 퇴사하고 중소기업을 전전하다 운이 좋게도 꿈에 그리던 외국계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외국계회사를 입사하기 1년 반쯤 전이었던 거 같습니다. 어디로 이직할까 노래를 부르며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하던 그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xxx 영업부장님.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습니다.


나 : 부장님 안녕하심까! 어쩐 일이십니까!

그 : 어~ 잘 있지? 요즘 뭐 해?

나 :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죠~

그 : 그래? 혹시 이런 일 할 줄 알아? 블라블라..

나 : 아직 경험은 없는데, 지금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조금만 공부하면 잘할 수 있습니다. 마침 여기 파견 나온 직원분도 그 업무 실무담당이라 물어보며 공부하면 충분합니다!

그 : 아 그래? 그러면 생각하는 연봉 수준이 어떻게 돼?

나 : xx정도 받았으면 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 어 그래그래. 내가 조만간 연락 줄게~

나 : 넵! 수고하십쇼!


전화를 끊자마자 파견 나와있는 직원분에게 달려가 이것저것 묻습니다. 어떤 문서를 봐야 하느냐, 실무에선 어떻게 처리를 하냐 등등. 거의 한 달을 붙잡고 물어보고 공부했습니다. 나도 곧 저 연봉받을 수 있다! 를 외치며.


당시 하던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잘할 자신 있었거든요. 연락을 기다립니다. 한 달 반이 넘어가네요. 연락이 없습니다. 혹시 바쁠까 싶어 문자를 보냈어요. 답이 없네요. 일주일을 기다렸다 다시 문자. 이틀을 기다렸는데 또 답이 없네요.


결국 전화를 해봅니다. 오전은 바쁠 테니 그나마 괜찮을 거 같은 오후 3시 반으로 전화하기로 마음먹고 그 시간이 되자, 전화를 했습니다. 안 받네요. 한 번 더 해봅니다. 거절하네요. 미팅 같은 거 일 줄 알고 기다렸습니다.

그 기다림은 두 달이 지나서야 끝습니다. 까인 거죠.


'그리 높은 연봉도 아니었는데.'

'안되면 안 된다 말이라도 해주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두 달이지만 부풀었던 마음을 가지고 나름 행복하게 지냈다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몇 년이 흘러, 외국계회사 입사승인이 떨어지던 날.

저를 추천해 주신 장님이 당시 저희 회사(외국계)와 계약을 맺고 있던 회사(저의 첫 직장 모회사) 직원들과의 회식자리에 저를 부르더군요.


약속시간, 약속장소 앞.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그 영업 부장님이 들어가다 절 봅니다. 순간 움찔하던 그. 예전에 제 연락을 피한 게 기억났나 보죠.


그 : 여기 어쩐 일이야? 잘 지냈어? 오랜만이네~

나 : 아네 하하. 약속이 있어서요. 즐건 시간 되십셔~

그 : 그래그래. 들어가~


일부러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따가 통쾌하게 해 주려고요. 고깃집 안을 살펴보니 얼추 업체 직원분들과 제가 입사한 회사 팀원분들이 거의 다 모였네요.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 통쾌함!! 솟구치는 아드레날린!!

이건 경험해 본 분만 아실 겁니다. 거짓말 같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실제 이런 일이 저에게 일어났는걸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저를 추천했던 장님을 모시고 영상촬영을 할까도 생각 중입니다.


저를 추천한 장님이 이리 오라며 손을 흔드네요. 순간 모여진 시선. 아니 니가 왜?! 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전 회사 직원분들.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 앉으며 반갑게 인사를 했어요.


인사해 들. 1일부로 입사하게 된 X대리야. 다들 잘 알지?

안녕하세요~ 다들 잘 지내셨죠?


제가 보기엔 그랬습니다. 다들 놀라는 눈치였어요. 그중에서도 전 회사 영업 부장님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고기를 신나고 맛있게 먹고 2차를 가잡니다. 호프집 앞에서 담배를 피는데 영업 부장님이 다가옵니다.


전화라도 하지 그랬어~ 오늘 온다고. 축하해~ 무슨 일이야 이게.

전에 전화할 땐 받지도 않으셨잖아요. 문자도 몇 번을 보냈는데. 왜 그러셨어요?


순간, 예전의 그 두 달이 생각나며 조금 욱 했습니다. 순간 당황한 영업 부장님.

아, 그때. 그때 그 일 때문에 많이 바빠가지고, 아이고 연락을 준다는 게 깜빡했네. 미안해요~


존댓말을 말 끝에 붙이시던 영업 부장님. 물론 이후로는 저와 매우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퇴사를 알린 지금은 다시 반말을 하시며, 자주는 아니지만 연락도 하고 지내고 있어요.


사람일이라는 게 이렇게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영업 부장님 입장에선, 자회사의 계약직으로 있었던 팀 막내였던 제가 몇 년이 흘러 고객이 되어 나타날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렇게 찾아온 제 인생의 두 번째 터닝포인트가 이런 멋진 이벤트가 되어 제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뭐가 안되어도 사람인생, 모르는 겁니다. 막말로 이번주에 로또 1등당첨될지 누가 안답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