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1개월 차, 팀장에게 소리지른 사연.
니들은 판판이 놀면서 말야.
저 지금 밥도 못 먹고 이러고 있다고요! 그리고 X과장은 어제 보니까 오후 내내 인터넷 하고 별로 바쁘지도 않아 보이던데. 저 입사하고 첫 현장 외근인데 저한테 설명 좀 해주라고 해주시면 안 됩니까!!
16년 간의 일들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을 쓰고자 하니, 제가 무슨 성격파탄으로 비칠까 겁도 납니다.
첫 회사 신입사원 1개월 차. 팀장에게 언성을 높였던 적이 있어요. 당시 젊은 시절의 패기 더하기 억울함과 분노가 한데 어우러져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는데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저의 첫 직장은 외근이 잦았습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인터넷 설치기사처럼 여러 지점들을 돌아다니며 전산을 봐주는 일을 했었어요. 하루는 오전에 한 지점. 오후에 두 지점을 갔어야 했습니다. 사전에 스케줄링을 해서 시간에 맞추어 업무를 보고 이동하고 했었죠.
제 자리 전임자가 인수인계 없이 퇴사를 하는 바람에 전 외근 나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맨땅에 헤딩하듯 나간 첫날이었습니다.
외근 나가기 전, 각 시간마다 각 분야의 담당자분들과 미리 스케줄링을 다 해놓아야 하다 보니 하루 세 곳의 스케줄링을 잡는다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쌩 초짜기도 했고, 다른 선배들은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 자세히 알려주질 않았거든요. 그저 대강 이렇게 해라~ 정도로만 알려줬었어요. 현장마다 담당자도 모두 달라서 하루 세 곳이면 거의 9명의 스케줄링을 미리 잡았어야 했습니다.
첫 지점.
입사 후 첫 외근이기도 했고, 충분한 설명도 없언던지라 긴장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쉬운 편이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무스하게 잘 넘겼습니다.
그렇게 김밥천국에서 혼자 밥을 먹고 두 번째 지점으로 이동.
여기서부터 꼬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현장이 당시의 저에겐 어렵기도 했고 처음이라 감도 없었거든요. 일단 담당자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꼬였고, 버벅대는 저로 인해 더 꼬였습니다.
그렇게 세 번째 지점으로 이동.
일정보다 1시간 반 늦어졌어요. 어찌어찌 처리하고 세 번째 지점으로 이동하는데만 대중교통 1시간 20분.
도착하니 오후 5시더군요. 담당자분들께 미리 연락해서 죄송하다 하고 간 거라, 도착하니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여기는 앞선 두 개의 현장과는 또 다른 형태.
버벅거렸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현장 일이라 더 그랬어요. 좀 자세히 알려주지 라는 생각도 들고. 사무실에 있는 팀원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팀장한테 전화가 오네요.
그 : 아직 멀었어? 지금 7시야.
나 : 아네,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현장에서 시간이 좀 꼬여서 늦어지고 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
차장님, 식사하세요~
내 귀를 의심. 식사? 식사? 난 현장에서 이러고 X뺑이 치고 있는데 지들은 식사? 화가 조금씩 올라옵니다.
그 : 그러게 미리 시간약속을 철저히 잡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어야지. 지금 시간이 늦어지잖아.
나 : 아네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해보겠습니다.
그 : 사무실에서 XX씨 때문에 다들 기다리잖아.
나 : 죄송합니다. 최대한 해보겠습니다.
그 : 얼른 하고 마무리되면 전화해.
끓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단 이거부터 처리하자. 다시금 천천히 해봅니다. 시간은 어느덧 8시. 팀장에게 전화가 옵니다.
그 : 아직이야? 왜 이렇게 늦어진 거야 대체.
나 : 하.. 제가 처음이라 조금 늦어지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 : 그러게 시간약속은 잡으면 무조건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된다고!
나 : 후...
그 : 두 번째 지점에서 밀려서 이렇게 늦어지는 거 아냐. 시간약속을 하면 칼같이 지켜야 돼!
나 : 차장님! 저 지금까지 밥도 못 먹고 현장에서 이러고 있다고요! 그리고 X과장은 어제 보니까 오후 내내 인터넷 하고 별로 바쁘지도 않아 보이던데. 저 입사하고 첫 현장 외근인데. 인수인계도 없이 나와서 이러고 맨땅에 헤딩하고 있어요. 누구라도 저한테 현장 외근에 대해서 설명 좀 해주라고 해주시면 안 됩니까!! 그리고 어제만 9명이랑 스케줄링을 했어요. 누구 하나 도와주신 분 있습니까! 저도 할 줄 몰라서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요!
거의 랩을 했습니다. 래퍼인 줄. 언성을 높여가며 줄줄이 쏟아냈어요. 팀장은 알겠다고 얼른 하라고만 하고 전화를 끊네요. 그 뒤로 1시간이 더 걸려 밤 9시가 되어서야 일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여름이었고 옷은 땀으로 다 젖었고 밥은 못 먹어 배는 고프고 몸에선 땀냄새가 범벅이고 몸은 지치고. 월급 105만 원이라 아끼고 또 아끼던 때. 힘듦을 이기지 못하고 택시 타고 왔네요. 금액도 기억나요. 만 칠천 원.
당시엔 날도 덥고 짜증도 나고 힘도 들고 해서 그랬던 거 같은데. 사실 신입사원이 저러면 안 되죠 ^^;;
이후 외국계회사를 가며 고객이 된 저와 당시 팀장이었던 차장님과도 사이는 좋아졌습니다. 하하.
대한민국 직장인 분들 진짜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