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때는 무려 신입사원 한 달 차. 전임자가 인수인계 없이 제가 입사하기 한 달 전 퇴사를 해버려, 시작부터 얼레벌레. 일이 바빠 누구 하나 제대로 설명해 주는 사람도 없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서 시간만 때우던 그 시절.
나름 전공을 살려 관련 회사로 취직했습니다. 모회사가 있는 아주 작은 자회사의 계약직. 연봉 천 오백만 원. 실수령액 105만 원. 저의 능력을 알았기에 딱히 불만은 없었습니다.
허나, '난 누구, 여긴 어디?' 이러고 있는데, 당최 아무도 말을 시키지도 않고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심적으로 참 힘들더라고요. 다들 바빠 보이는데. 그렇다고 혼자 나가서 담배 피우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혹시 시키실 일 있으면 시켜주십쇼. 라고 말해도 시큰둥. 표정변화도 없이 기계적으로 일하는 그들.
조용한 사무실에 울리는 타이핑소리들이며. 그 중간에 어색하게 앉아 앞쪽에 있는 창문만 바라보던 나.
그런 날을 이어가던 어느 날. 어떤 과장이 엑셀파일하나 주면서.
여기 노란색 부분 음영 칠해놓은데, 여기만 계산해서 채워 넣어.
라며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첫 업무. 졸라 잘해야지. 하면서 성심성의껏 채워 넣었습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틀린 건 없는지 수십 번은 확인하고 회신을 했어요.
과장님! 메일 회신드렸습니다!
대답 없는 그. 그 순간엔 바빠 보였습니다. 일단, 그렇게 첫 업무를 완료하고 뿌듯해하며 앉아있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그놈 목소리.
야! 일로와 봐.
음? 난가? 쭐래쭐래 가보니. 이거 왜 안 했냐며 짜증을 부립니다.
아니, 니가 노란 부분만 하라며!!
그.. 노란 부분만 하라고 하셔서...
했더니, 상식적으로 노란 부분을 했으면 여기는 당연한 거 아니냐는 그.
후.......... 글을 쓰는 지금도 화가 조금 나는데요.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업무시간에 집 컴퓨터에 원격연결해서 게임을 하던 그. 갑자기 옆에 있던 대리 놈이 거듭니다.
과장님, 놔두세요. '저런'애들은 하나씩 다 알려줘야 돼요. XX야. 이거 보면 어쩌고 저쩌고.
니가 더 싫다 인마. 친한 척하지 마.
말을 하면 되잖아. 노란색 부분 다 하고 나면 이 부분까지 채워야 한다고 말을 하면 되잖아. 때려칠까.
하하. 이때부터 퇴사를 마음속에 담고 16년을 회사를 다닌 거였네요.
제 상식에선 말도 안 되는 걸로 욕먹고 난 후. 짜증이 납니다. 할 일도 없어 앉아있는데. 회사 첫 이미지가 이렇게 돼버린 거 같아 짜증이 납니다. 책상 위 노트 위에 끄적끄적.
퇴근시간. 눈치 보며 못 가고 앉아있는데, 팀장이 할 거 없으면 들어가랍니다. 하루종일 할 게 없었습니다.
말 끝나기 무섭게 가방 챙겨 들고 퇴근.
다음 날. 출근 후 여지없이 멀뚱히 앉아있는데, 대리 놈이 부릅니다. 사진을 보여줍니다. 아주 친절하게 사진까지 찍어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