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너빈 Oct 01. 2024

순한 양이 되라는 회사.

너 한테 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어.

보스기질을 버려라.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을까요? 저 말은 실제로 저에게 전달되었던 말입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요? 재직당시 저를 고깝게(?) 보던 상사들이 있는 편이었어요. 아침에 출근을 하면 팀원들을 데리고 우르르 몰려나가 티타임을 가지곤 했습니다.


근무시작 전 가지는 티타임을 저는 꽤나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각자 원하는 차를 한 잔씩 들고 밖으로 나가 잡담을 하기도 하고 일에 대한 얘기를 하기도 하고. 특별한 주제 없이 주저리주저리 얘기들을 하다 보면, 아 이런 생각들을 요즘하고 있구나 내지는 이런 부분들에 대한 불만들이 있구나 정도를 들어볼 수 있거든요.


한 날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근무시작 전 팀원들과 함께 티 타임을 가지기 위해 나가려는데 한 팀장이 저를 조용히 부릅니다.

'아침에 팀원들이랑 몰려 나가는 거 좋지 않아 보인단 말이 있어. 조금은 자중 해.'


에?! 좋지 않아 보인다고?

근무시작한 것도 아니고, 근무시간 시작 전에 팀원들이랑 차 한잔 나누며 담소를 나누는 게 좋지 않아 보인다고?


'누가 그럽니까?'

'뭐 누구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나도 솔직히 좋아 보이진 않아.'

'팀원 대부분이 모여 티 타임을 갖는 건 이런저런 장점이 있고 블라블라'

'팀장들 사이에서 얘기가 좀 나오고 있으니까 그냥 알고만 있어.'


아니, 이게 뭐라고.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팀원들의 생각도 들어보고 소소하게 팀워크도 챙기는 이런 작은 티 타임이 좋지 않아 보인다고? 전 오히려 반발심이 생겼습니다.

'에레이, 뭐 날 자를 거야 어쩔 거야. 난 이게 중요하다고 본다.'


알빠노!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지속적으로 쭈욱 나름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아침 티 타임을 계속 가졌어요. 뭐 차장 나부랭이가 나대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겠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팀장 밑에서 수행비서처럼 하는 부장이 어느 날 메일을 보내옵니다. 업무 로테이션 관련된 내용이네요. 쭉 읽어보니 아주 재미있는 한 마디가 눈을 휘어잡습니다.


'보스기질을 버려라'

눈을 의심했어요. 보스기질? 가만있어보자 내가 무얼 했지?

지난 시간을 머릿속에서 복기해 봅니다.


내가 이 구역 XXX야!!!

하면서 일을 하진 않은 거 같은데 말입니다. 그저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맡겨진 일을 하고, 그저 평범하게 퇴근하고, 그저 평범하게 간혹 언쟁도 조금 하고, 그저 평범하게 티 타임도 가졌고, 그저 평범하게... 응?!


아 저놈에 티 타임 진짜..... 팀원 후임들 좀 데리고 나가서 하루 두 번 갖는 티 타임.

아침 근무시작 전 한 번 그리고 오후 3시에서 4시 정도 다들 한숨 돌리는 타이밍에 또 한 번.

윗사람을 CC로 달고, 업무에 대한 분배와 해야 할 것들을 담아 메일을 보낸 것.

간혹 자리로 불러 이런저런 업무지시사항을 전달했던 것.(메일과 함께 구두 설명을 추가)

그리고 팀장과의 맞지 않는 성향으로 발생했던 두 어번의 언쟁.

친한 형처럼 느끼게 하고 싶어, 후임들에게 말을 놓고 지낸 것.(야, 너는 하지 않았어요. 이름을 불렀죠.)


개인적인 생각이었지만 이 모든 것들이 거슬렸나 봅니다. 아네 뭐, 인정합니다. 팀장도 아닌데 팀원들에게 그렇게 하는 꼴이 보기 싫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을 수도요. 난 그저 방향에 맞는 방안을 고민했었고, 나라면 저렇게 안 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많았을 뿐이었지만요.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듭니다. 리더로서 내 팀원 중 하나가 자처하고 조금은 리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리더는 그 팀원과의 소통에 조금 더 비중을 두며 수월하게 팀원들을 챙길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냥 이러고 있는 꼴이 싫었나 봅니다. 각자의 생각은 다르니까 충분히 인정합니다.


순한 양이 되라는 그 메시지를 보고 당시 퇴사에 대한 확신이 들어섰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에이, 그냥 시키는 대로 하란 것만 하고 월급이나 받는 인생도 나쁘지 않았을 거 같다.'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 무엇이건 뭐 이미 선택했고, 선택한 방향으로 인생은 흘러가고 있으니 후회해서 뭐 합니까. 그저 선택의 방향에 맞는 삶을 살아가야지요.


보스기질을 버리기 위해 아내에게 오늘도 따듯한 말 한마디를 건넵니다.

'내 마누라 파이팅! 오늘도 돈 많이 벌어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