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너빈 Sep 24. 2024

넌 왜 회의만 하면 그러냐?

밑에서 치고 올라온다는 게 이런 건가?

나 : 이런 이유로 저리 되었고, 이렇게 진행하려 합니다.

A대리 : 근데 이건 이게 맞는 거 같은데요. 이건 이게 맞지 않을까요?(나를 보며)

나 : (빠직?! 아니, 저 XX가 또?!)


사회초년생 시절. 주변 상사들로부터 이해력이 좋고, 손이 빠르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처음엔 잘 몰랐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빠른 이해력과 상대방이 하는 말의 뉘앙스에서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캐치를 잘 해낸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았습니다. 그렇게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가던 20대 시절.


어느덧 나이는 40대를 훌쩍 넘겨버린 시기. 물론 남자 40대 초중반이면 한창 일 열심히 할 나이임에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피지컬적인 부분이 20대, 30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부분은 어찌할 수 없더군요. 그래서인지 미팅이 잡히면 미팅자료를 사전에 꼭 검토를 하는 편이었습니다. 다들 그러시겠지만..


한 날은 팀원 중 한 명이 진행하던 일에 대해 팀 공유 차원으로 팀장이 미팅을 소집하더군요. 사무실이 달랐던 저는 이동을 하는 중에 사전에 당사자가 보내준 자료들을 읽어보았죠.


미팅시간 5분 전 도착. 회의실에 모두들 둘러앉아 있더군요. 반갑게 팀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팀장에게도 인사를 건네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회의.


B대리 : 블라 블라 어쩌고 저쩌고. 다음페이지를 보시면,

A대리 : 아, 근데 이 부분은 이렇게 하는 게 맞아 보입니다.

B대리 : (약간의 정적)아.. 네네.(약간 상기된 얼굴) 그게 나아 보입니다. 회의 마치고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설명회는 그렇게 대략 10분간 진행되었고 팀장의 한 마디를 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사전에 자료를 보내준 터라 다들 읽어보고 들어왔겠죠.


저 A대리는 저와 사이가 좋은 녀석였습니다. 약 5년 전 선, 후임으로 만나 호형호제하며 지내던, 나를 동생같이 따르던 녀석. 그날은 조금 의아한 모습에 갸우뚱했어요. 왜 저랬을까. 팀장포함 팀원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굳이 발표도중 그 부분을 잘라먹고 어떤면으로 무안(?)을 줘야 했을까. 사전에 자료를 주었을 때 미리 보고 미팅 전에 알려줘도 되지 않았을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


그냥 그렇게 넘겼습니다. 일전 A대리가 후임이던 시절엔 저와 미팅을 같이 들어간 적이 거의 없다 보니 내가 저 친구의 성향을 정확히 몰라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프로젝트를 팀원 대부분이 달라붙어 진행하던 때입니다.


제가 맡은 부분에 대해 PPT자료를 만들어 팀장에게 공유하던 날. 팀원 대부분의 인원과 팀장과 함께 미팅을 진행하다 일이 발생했습니다.


팀장 : 이 부분은 XX차장이 준비했으니 한 번 들어봅시다.

나 : 이런 이유로 저리 되었고, 이렇게 진행하려 합니다.

A대리 : 근데 이건 이게 맞는 거 같은데요. 이건 이게 맞지 않을까요?(나를 보며)

나 : (빠직?! 아니, 저 XX가 또?!)

나 : (조금 높아지는 언성) 이건 이거고, 그래서 이거인데 이것이 나아 보이네요.

팀장 : 오케이 자자, 그럼 일단 방법에 대해선 두 가지 모두 생각 좀 해봅시다. XX차장이 XX대리랑 같이 정리 좀 해봐.


하... 열받네요. 그렇게 종료된 회의. 나와 합이 잘 맞을 거라 생각해 직접 추천해서 데리고 온 A대리. 제가 준비한 PPT는 4장짜리였습니다. 길지도 않았습니다. 미팅 하루 전날 자료를 공유를 했었고, 오후 미팅인지라 오전에 한 차례 더 팀원들에게 리마인드를 주었었죠.(혹시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멘트와 함께.)


그런데 이건 나를 맥이려는 건가 싶을 정도로 지난번과 동일한 행동을 하더군요. 회의가 끝나고 저는 이동을 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 : 내가 미리 보낸 자료 보고 들어온 건가?

A : 아네 보내주신 거 봤습니다.

나 : 그러면 회의시간에, 팀장께 공유하는 자리에서 그러는 게 맞는 거 같냐?

A :..... 사전에 볼 땐 인지 못했는데 그때 생각이 들어서 그랬습니다.

나 : 너 지난번에도 그렇고, 왜 그러는 거냐. 일부러 그러냐.

A : 그런 건 아닙니다..

나 : 하.. 일단 알겠다.


이렇게 전화를 끊게 되었고, 나와 합이 잘 맞을 거 같아 데려온 A대리와는 예전처럼 사이가 돌아가지 질 않더군요.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일부러 팀장의 눈에 들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그 녀석 말대로 정말 인지를 못 하다가 그때 알게 되어 짚고 넘어간 건지는요. 제가 꼰대스러울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아무리 팀장에게 공유하는 자리라 할지라도 뭐 본인생각이 그렇다면 당연히 말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회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터라는 말 공감합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저의 30대 초중반 시절을 돌아보게도 합니다. 나도 아마 저 녀석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면서요. 저의 대리시절, 같이 일하던 과장을 어떻게든 눌러보려 애쓰던 저를 상기해 보며 지금이나마 그 A대리 녀석의 행동이 이해도 됩니다.


그 회사를 떠나고 후에 팀장의 오른팔처럼 업무를 보고 있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습니다. 녀석 나름대로 성공한 거겠죠. 어찌 보면 그런 녀석의 성향이 그런 자리를 만들게 된 거고 앞으로도 그렇게 회사생활을 하며 남들보다는 반발자국이라도 앞서 가려할 테니까요.


앞으로 그 녀석의 앞 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저의 행복한 앞날도 같이 기원해 봅니다.

PS.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 읍읍....(농담인 거 아시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