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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빈 Sep 25. 2024

40대에 퇴사하니 혼자가 되었다.

고독하구만.

지난 3일간의 통화기록.

아내, 아내, 아내, 아내...

내가 3일 간 통화한 사람은 오직 나의 아내뿐입니다. 통화목록을 보던 어느 날은 실제로 웃음이 터집니다.


푸하하. 이거 맞냐? 실화야? 정말 이렇게 전화가 안 온다고?


한 때는 전화 노이로제에 걸려 살던 시절이 있습니다. 정말 미쳐버릴 만큼 싫었던 전화 진동. 우웅~우웅~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려 실제 전화가 오지 않아도 진동이 느껴지는 신기한 현상을 겪으며 지냈습니다. 어제 통화한 사람의 이름을 주소록에서 검색하는 게 귀찮아 통화내역을 밑으로 쭉쭉 스크롤하며 내리던 기억.


퇴사를 한 뒤에도 한 동안은 전화가 종종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전 언제 부로 퇴사를 해서요. XX에게 연락하시면 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도 너무 싫었고 그런 전화조차도 싫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무시하거나 끊어버리면 안 될 거 같아 하나하나 다 받아서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일주일, 보름, 한 달이 지나고 서서히 전화 오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너무 좋습니다. 전화가 오지 않는 게 이렇게나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달, 달이 지나고 날은 무언가 엄청 허전함이 느껴집니다.

뭘까. 집에서 편히 쉬고 있는데 이 허전함은 뭘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전화가 옵니다. 나도 모르게 오~ 하면서 전화를 받습니다. 아내지요. 우리는 하루에도 4번에서 5번은 통화를 합니다. 짧게라도 합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럽니다. 예전엔 짧은 통화가 많았습니다. 어, 지금 바쁜데 이따 전화할게 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긴 했지만요.


그 많던 영업담당자분들. 그렇게나 많던 날 찾던 이들의 전화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야말로 뚝! 끊어졌습니다. 머슬메모리라고 들어보셨나요? 운동을 한창 하던 사람이 어느 날 운동을 끊고 지내다가 몇 달이 지나서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 생각보다 빠르게 예전의 몸의 수준을 찾는다고 합니다. 몸이 기억을 하는 거죠.


일종의 머슬메모리일까요? 전화가 오지 않는 건 너무 편하지만 눈과 귀는 언제나 전화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메시지가 오면 오는 그 순간 읽고 답장을 해버립니다. 마음으론 부정하지만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형, 동생 하며 지내던 관계들.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를 배려해 주던 그런 관계들. 심지어 내가 데려온 후임 녀석들에게서 조차 연락이 오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냈는데 퇴사하고 한 달째까지는 종종 연락이 오더니 지금은 그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즈음에 몇 명의 오랜 친구와의 관계를 끊어내었습니다.


그나마 20대나 30대 초중반이었다면 조금은 나았을까. 40대가 훌쩍 넘어버리니 이제 친구들도 본인들의 가정을 돌보느라 얼굴 보기가 힘듭니다. 직장인시절, 자리를 혼자 있는 공간으로 이동해 달라는 요청까지 했을 정도로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아직은 좋긴 하지만, 순간순간 훅 들어오는 왠지 모를 외로움(?) 같은 감정은 부정할 수 없네요.


왜 전문가들이 그러잖아요. 나이가 들수록 혼자 있는 시간에 적응해야 한다고. 혼자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만약 없다면 그것을 발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요. 나이가 들면 은퇴를 하게 될 것이고, 자식이 있다면 결혼을 해서 내 품을 떠날 것이고,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나의 배우자가 나보다 세상을 먼저 떠날 수 있는 것이고.


혼자가 되는 상황에 익숙해져야 하며, 혼자인 환경을 나름 즐길 줄 알아야 할 거 같습니다. 친구보다, 지인보다 내 가족이 1순위이며, 그것보다 선 순위는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합니다.


PS. 혼자할 수 있는 최고의 취미. 건강도 함께 챙길 수 있는 일명 '헬스'를 적극 추천드리는 바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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