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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빈 Dec 18. 2023

자존심 세니까 건들지 마세요.(무너진 자존감)

너 나 무시하냐?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10대 시절, 돈이 없어 밥을 굶었던 적도 있었네요. 저보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 있었던 분들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나 이렇게 힘들게 컸어라고 가난했던 과거를 유세 떨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존심이 셌던 가난한 집 자식. 그저 이 한마디가 저의 인생의 대부분을 대변한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나와는 다른 결을 지닌 그녀를 만나며 바뀌게 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자존심만 더럽게 세서 어따 써먹어.

자존심이 엄청 셌습니다. 물론, 지금도 백 프로 다 버리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거란걸 인식했고, 바뀌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제 많이 바뀌기도 했고요. 제가 봤던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대개 비슷하더라고요. (다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오로지 개인경험에 의존했을 때)


이상하리만큼 상대방의 말투, 단어 하나, 리액션 정도, 눈빛등에 화를 냈습니다. 스스로도 난 자존심이 세다고 생각을 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애가 어떻게 사회생활을 했지 싶을 정도니까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밥을 먹으며 친구와 일상적인 대화를 하던 도중,

- 나 : 어쩌구 저쩌구.

- 친구 : (반찬을 집으며) 그랬구나~

- 나 : (흥분) 야, 나 무시하냐? 사람이 말을 하면 눈을 봐 인마.

- 친구 : 으...응?! 왜 그래 인마 갑자기.


심각하네요.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조금이라도 나를 무시한다라는 느낌을 받으면 참지 못하고 그대로 표출을 했으니까요.


10년째 어머니와 30만 원짜리 월세 살면서. 한 달 벌어 한 달 살던, 가진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놈이 회사에서는 온갖 허세를 떱니다. 외삼촌이 파주에 땅을 일부 주기로 했다, 그래서 주말에 내 땅을 보고 왔다는 둥.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왜 저런 거짓말을 했을까. 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저런 것들을 난 얘기하고 다녔을까.

당시엔 어디서나 당당히 말했습니다.


"난 자존심 쎈놈이야."


그 누구든, 나를 가볍게 보지는 않을까를 아주 심각하게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없어도 있는 척. 있으면 훨씬 더 있는 척.



자존감은 바닥인 인생

자존심과 자존감의 개념조차 모호하던 그때. 자존심이 셌던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자존심이 내 삶의 원동력이라는 착각을 했었지요. 물론, 어느 한편으론 도움이 된 것도 있었습니다. 실제 당시의 저를 움직이게 했던 힘이기도 했으니까요.


- 이런 말을 하면 날 어떻게 볼까?

- 이런 행동을 하면 날 어떻게 볼까?

- 어머니랑 10년째 30만 원 월세 사는 걸 알면 비웃겠지?

- 어머니랑 삼겹살도 주기를 정해놓고 먹는 걸 알면 비웃겠지?


가정환경은 개인적으로 밑바닥이라 생각했지만, 주변에선 날 그렇게 보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어머니는 빵배달을 하셨고.

세후 105만 원을 받던 저였기에.


월세내고, 생활비 쓰고, 빚 원리금을 갚고 나면 그야말로 쓸 돈이 빡빡했습니다. 10대, 20대를 이렇게 살고 있었기에 자존심만 세지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던 거 같네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평범하지만 나쁘지 않은 외형을 물려받았기에, 주위에 친구들도 좀 있었고 여자친구도 늘 있어왔었습니다. 그럴수록 저의 주변의식하는 버릇은 점점 더 커지기만 했습니다.


언제나 불만이 가득 넘쳤었고, 부정적 인식의 끝을 달렸으며, 주변을 엄청 의식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녀의 자존감

그렇게 30대 중반까지 살았습니다. 운이 좋아 외국계 대기업도 들어가게 되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죠. 아내는 세상 순둥이입니다.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세상물정도 잘 모르던 친구였죠.

둘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저의 말도 안 되는 분노표출을 말없이 받아주었습니다. 앞에서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환하게 웃었습니다. 진심으로 그 일이 있었는지 조차 망각한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제 앞에서 연기하는 줄 알았습니다. 결혼하고 7년 뒤에야 안 사실이지만, 아내는 정말로 금방 잊는 성격이라고 합니다.


아내 : 난 금방 잊어. 왜 그런진 잘 모르겠어. 그 당시는 잠깐 속상한데, 5분 정도 지나면 아예 생각이 안 나.

아내 : 다른 좋은 것들이 많아서 그런가. 잘 모르겠어. 난 금방 잊히던데?


저와는 하늘과 땅차이만큼의 태도를 가지고 있던 그녀.

32살 때 제 앞에서 실수했던 후배 놈에 대한 미움이 전 39살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잊히지가 않아요. 무시당한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표출해서 풀지 않으면 당일은 잠을 못 자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7년이 지난 일을 39살 때까지도 미움이 남아 있었겠죠. 마흔두 살인 지금도 생각나니까요.


옆에서 자세히 관찰해 보니, 아내는 주변을 별로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냥 본인이 즐거우면 끝이더군요. 아내도 개인사업을 시작하기 전, 마흔 살까지도 월급이 200만 원이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처가댁 친척들이 물어보면, 개의치 않고 월급을 공개합니다. 200만 원 받는다고.

그리고 또 하하호호 거립니다.


아내 월급을 물어보는 그 친척들의 심리와 눈빛, 태도로 인해 전 그날밤 또 잠을 못 잡니다. 분노합니다. 어떤 심리로 물어본 건지, 어떤 심리적 보상을 받기 위해 아내에게 저런 질문을 하는지 알 거 같아서 분노가 치밉니다.


아내에게 기분 나쁘지 않냐 물어봐도, 딱히 그런 거 없답니다. 그렇다고 거짓말하는 것도 웃기지 않냐고 합니다. 저와 살고 있는 지금이 즐거운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냡니다. 너도 주변시선 좀 그만 살피랍니다. 피곤하다고.


"아내는 자존감이 높더라고요. 저와는 다르게."



자존심 따위, 내가 좋으면 장땡이지.

저 날 이후로, 제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주변을 신경 쓰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합니다. 저 또한,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오래 걸렸어요. 스스로 많이 바뀌었구나라고 느끼기까지."


아직은 다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정말 많이 바뀌었습니다. 작은 일들에는 전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뭐 이럴 수도 있는 거 아냐? 내 가족만 좋으면 되는 거 아냐?라고 자문합니다.


확실히 인생에 예전보다 많이 편해졌습니다. 없는 걸 부풀려 인정받고 싶었고, 없어도 있는척하며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상대방이 날 존중한다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조금 건방진 생각일 수 있지만, 상대방이 뭐라고 날 평가해? 나랑 내 가족만 좋으면 그걸로 된 거야,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10대, 20대, 30대를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런 자존심이 원동력이 되어 저를 끌고 왔을 수도 있지만, 좀 더 빠르게 깨달았더라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행복한 시간이 길어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40대 중반에 퇴사한 사실을, 너무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고 있는 저를 발견했답니다.ㅋㅋ

누가 뭐라든 그게 제 인생에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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