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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빈 Dec 30. 2023

내가 다 짊어져야 해? 중년 직장인 퇴사고민.

비겁한 변명입니다.(네, 알아요~)

세후 105만 원. 건강검진 없는 소기업 계약직.

사회생활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봉을 올리고 좋은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습니다. 남들 다 한다는 자격증부터, 집안사정으로 인한 전문대 졸업장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노력까지.

정말 오로지 돈만 보며 20대와 30대를 불태웠습니다. 5개의 직장을 다니며, 참 아등바등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봉을 높여야 산다.

시작은 그랬습니다. 집안사정으로 실질적인 가장이다 보니 세후 105만 원으로는 생활이 안되더라고요. 흔히들 먹는 삼겹살조차 마음대로 사 먹지 못했으니까요. 무조건 연봉을 올려야 한다, 이직만이 살길이다를 외치며 그렇게 지난 16년을 직장에 녹여내었습니다.


이직에 대한 갈망과 연봉을 높이고자 하는 집념으로 16년간 5개의 회사를 다니게 되었어요.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가 일명 '딸랑이'를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아뇨, 살아남으려면 해야죠."


연기대상을 받아도 될 만한 연기력을 탑재한 '딸랑이'는 효과적이었습니다. 5개의 회사 중 가장 중요한 회사는 지인추천으로 입사하게 된 것이었거든요. '딸랑이'의 효과였죠.


열정이 없어도 있는 척.

야근하는 척.

업무 관련 고민을 엄청나게 하는 척.

일을 엄청 많이 하는 척.(물론 일이 많긴 했습니다만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처럼 오버하는 것이죠.)


이것도 다 연기력에 기반합니다. 결국 그렇게 '딸랑이' 짓과 '연기력'을 혼합해서 이직을 성공시켜 연봉을 차근차근 올려갔습니다.



내 몸값 올리는 게 꼭 정답은 아니야.

5분 대기조 같은 삶을 16년을 살아왔습니다. 나에게 의지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도, 내 가정을 위해서라도 정말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래 글처럼 결국 연속적인 현타를 맞게 되었고, 생각이 전환되게 되었어요.

https://brunch.co.kr/@woonubin/7

내 연봉은 회사가 나를 품어주어야만 지켜질 수 있는 것이고, 필연적으로 찾아오게 될 그 시기가 오면 연기처럼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었습니다.


위 글내용처럼 그걸 느낀 후, 생각의 전환을 해야 했습니다.


"나만이 꼭 정답인 것처럼 살아왔네."


내가 아니어도, 내 가족 중에 나보다 좋은 능력을 발휘할 사람이 있을 거다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물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지금 현재 눈치는 조금 보이지만,  그 방법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가족(저의경우는 아내)에게 투자하자.

내 아내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마흔 살이 넘도록 월급을 200만 원가량 받던직업이었기때문에, 돈을 떠나 맞벌이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사실, 일을 하지 않아도 큰 상관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긴 했습니다.


퇴사를 고민하기 시작할 무렵, 아내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금방 잊는 본인은 모르지만 저는 아는 강한 멘탈.(이건 지난 제 글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언제나 웃는 얼굴.

모난데 없는 둥글둥글한 성격.

본인 분야에서 15년을 이어온 성실함.(하나의 브랜드에서.)

직장이 아닌, 개인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분야.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내에게 개인사업을 제안해 보았지만 처음엔 거절당했습니다.

본인은 그럴 깜냥이 안된다며 잘 못할 거 같다며 말이죠.


하지만, 16년을 갖은 '딸랑이'와 '연기력'으로 살아남은 저 아닙니까. 아내에게도 일종의 가스라이팅(나쁘게 말하면), 내지는 응원의 말을 반복적으로 하며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결국 아내는 해보는 것으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죠.



내 연봉을 넘어선 아내.

시작한 첫 달부터 아내는 이미 기존받던 본인의 월급을 넘는 순수익을 내었습니다. 처음엔 신기해하더라고요. 이게 내가 번게 맞냐면서. 몇 번이고 엑셀을 띄워놓고, 매출과 고정지출, 세금을 제외하면 네가 번돈이 이게 맞다고 알려주었어요.


권리금에 각종투자비를 거짓말처럼 6개월 만에 회수하였습니다. 저도 처음엔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코로나가 처음으로 만 명을 넘긴 시점에 시작했거든요.


하지만, 제가 아닌 아내에게 투자하자는 저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고, 지금도 아내는 순항하며 제가 받던 월급보다도 더 많이 벌고 있습니다.


"저 투자금을 아내가 아닌 나에게 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하이엔드급 자격증을 준비 중이었어요. 비싼 자격증이라 학원수강비며 접수비며 시험덤프비며 실습장비 빌리는 돈이며, 거의 천만 원 가까이 드는 그 자격증. 물론, 한 번에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 나이에 저런 자격증을 취득한다고 이직을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자격증 수당 십만 원 더 받을 수 있었을 거 같습니다.


물론, 나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앞만 보던 시야를 가끔은 옆에도 보고, 아래도 보고 하면서 이런저런 가능한 방법을 따져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에 따른 리스크를 감내해야 하는 것도 본인의 선택입니다. 저는 참고로 무언갈 하기 전에 가장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내가 견딜 수 있을지를 숫자를 적어가며 계산해 봅니다. 이 정도면 괜찮아, 견딜 수 있어라는 판단이 서면 시작하거든요.


덴젤워싱턴이 펜실베니아 대학 연설에서 아래와 같은 멋진 말이 많은 영감이 되었습니다.


I Found that NOTHING in life is worthwhile unless you TAKE RISKS, NOTHING.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가치있는것을 얻을 수 없다. 그 어떤것도.

To get something you never had, You have to do something you never did.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걸 가지려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것을 해야만 한다.



미안해, 근데 나 믿어봐도 돼.

이 글을 아내가 볼지 안 볼지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그러했듯. 저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걸 가져보기 위해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던졌습니다.


앞으로 어떤 앞날이 그려질지 감히 어떤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리스크가 있었지만, 과감하게 한 발을 내디뎌준 아내에게 감사하고, 상황은 완전 다르지만 저 또한 그러한 길을 가고자 노력 중입니다.


그간의 내 인생이 말해주듯, 나 자신은 나를 믿기에 좋은 생각만 하며 백수생활을 즐겨보고자 합니다. 잘 안되면 또 어떻습니까 그 과정 속에서 얻게 되는 배움 역시 앞으로의 나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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