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지난 16년 간의 직장생활 중 가장 쇼킹했던 사건.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써보고자 합니다. 정말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졌던 그 기억. 저와 한 팀에서 13년 간 같이 일했던 분이 있습니다. 정말 오래된 사이였죠. 저와 합을 맞추며 일한 기간이 길었던 만큼 비록 회사에서의 친분이었지만,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똑같은 하루하루가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회사라는 집단에서는 아주 작은 이벤트라도 발생하면 모두의 입은 하늘 위를 떠다닙니다. 직장인 분들은 아실 거예요. 소소한 직장생활의 재미 중 하나이죠.
그렇게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30분쯤 지난 후.
바람 좀 쐴 겸 해서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경찰 3명이 서있습니다. 지루한 회사생활에 한줄기 재미를 느끼게 해 줄 사건이 발생한 것인가 싶었죠. 상기된 얼굴로 1층 구석에 서서 귀를 한껏 열고 지켜봤습니다.
잘 들리진 않지만 신고가 들어왔네 어쩌네 하는 경찰관들. 조금 더 가까이 가 봅니다.
신고가 들어와서 5층을 살펴봐야 합니다.
어떤 신고요?
어쩌고저쩌고.
5층이면 밥 먹는 탕비실이 있는 층인데? 호기심이 폭발합니다. 5층으로 향하는 경찰관을 따라 괜히 일이 있는 척 따라갑니다. 5층엔 저와 13년을 함께 일한 팀원도 근무하던 곳.
여자경찰관분 2명은 여자화장실로 들어가고, 남자 경찰관 1명은 제와 같은 팀에서 일하던 그분쪽으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왜 저분을 향해 걸어가지?
그분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경찰관을 힐끗 보더니 사색이 된 얼굴. 사람 얼굴이 저렇게 하얘질 수 있구나를 잠시 생각하던 그 찰나. 여자 경찰관들이 돌아옵니다. 손에 뭔가를 주렁주렁 들고.
남색 외투 1개.
박스 1개.
그리고.......... 소형 카메라......
일할 때는 그렇게 빠릿빠릿하지 않던 머릿속에서 갑자기 모든 상황이 급 정리가 됩니다.
외투를 물어보던 아주머니.
5층을 살펴본다던 경찰분들.
저희 팀원쪽으로 향하는 남자 경찰관의 발걸음.
사색이 되어 하얗게 질린 저희 팀원.
여자 경찰관분들의 손에 들린 외투, 박스, 소형카메라.
아...... 설마...... 그거냐.... 아닐 거야..... 에이, 설마..........
남자 경찰관분이 저희 팀원에게 작은 목소리로 뭐라 뭐라 얘기하더니 같이 온 여자 경찰관들과 함께 나갑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제 눈앞에서 사라진 4명.
어쩐지 점심에 밥 먹고 올라왔더니 다른 팀 사람들이 몰카 어쩌고저쩌고 하던데. 바로 이 얘기였습니다. 꿈인가 싶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저와 13년을 같이 일하던 모범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책을 너무 좋아해서 1년에 천만 원 이상씩 책을 사던 사람.
집에 있는 방하나가 책으로 가득 차 있던 사람.
일주일에 책 배송만 몇 개씩 오던 사람.
주변에 책을 잘 빌려주던 사람.
책에 살고 책에 죽던 그런 사람.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던 바른 사람.
회사와 집 밖에 모르는, 본인은 여자는 별관심 없다던 그 사람.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저희 회사와 아웃소싱 계약을 맺었던 회사의 직원분이었습니다. 일도 정말 잘했어요. 비록 회사는 달랐지만 저와는 오랜 기간 정도 많이 쌓이고 친분도 있던 사이였죠.
다른 세계에 와있는 기분이 들어군요. 그냥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뉴스에서나 보던 몰래카메라 범인이 저분이라니.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이거 맞는 건가?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전화를 해볼까? 조사받고 있으려나?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가 지난 뒤 다음 날. 그 회사 영업대표분으로부터 듣게 딘 사실.
오늘부로 해당 직원은 해고되었다. 최대한 빨리 백업인력을 구하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
어제 오후에 그리 되었는데, 벌써 정리가 되었답니다. 거의 반나절만에.
이후 포렌식을 했다느니. 여자직원들에게 추가고소를 당했다느니. 구치소에 들어갔다느니. 촬영을 한지가 3년 정도 되었다느니. 무수히 많은 소식들이 제귀에 들려왔습니다. 일하다가 잠깐잠깐 멍해집니다.
정말, 진심으로, 하늘에 맹세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와중에 지난 몇 년을 돌이켜봤습니다.
여자에 관심이 없다며 본인은 회사가 편하다 말하던 기억.
전기세를 아낀다며 한 여름이면 주말에 사무실에 나와서 자기도 했었고.
주말출근을 상당히 자주 했던 기억.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모두 퇴근한 늦은 시간엔 불도 꺼놓고 일하던 기억.
그 모든 게 카메라에 있는 메모리를 갈아 끼우는 행위를 위한 거였더군요. 일종의 배신감과 함께 안타까움, 그리고 다른의미로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저렇게 몇 년을 속여온 게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요.
마음속에는 악마의 얼굴을 하고, 겉으로는 세상 좋은 사람인 척. 책만 좋아하는 직장인 인 척. 여자에 관심 없는 척. 지금생각해 보면 모든 게 '척'이었던 그 사람.
징역을 갔다는 소식을 끝으로 저도 이제 그 사람에게서 관심을 접었습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저와 어떤 친분이 있었어도 성범죄는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니까요. 제 가족이 그런 몰카범죄에 당했다고 하면 저는 그야말로 눈이 돌아갈 거 같았거든요.
안타깝고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불쌍하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어떤 환경이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죗값은 당연히 충분히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해보기도 하고. 에이 이제 남인데 뭐 하러 신경 쓰냐 그냥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는 생각도 하고. 지난 13년 간 같이 했던 기억들도 떠오르기도 하고.
결국 참지 못하고,
사건을 떠나서 인간대 인간으로서 그동안 수고 많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
라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며칠 뒤 온 답장.
이렇게 못난 모습으로 떠나게 되어 미안하다고. 행복한 앞날만이 가득하길 바란다고.
그 사람을 못 본 지도 벌써 4년이나 되었네요. 지금은 뭐 하고 살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가족보다 더 긴 시간을 회사에서 같이 생활한 사람인데 이렇게 모를 수도 있구나라는 사실에 섬뜻해지기도 합니다. 저와 가깝게 붙어 지내던 사람이어서 더 그랬던 거 같습니다.
이렇게 소중했던 인연이 또 한 명 끊어졌습니다. 일할 땐 저와도 잘 맞던 사람이었거든요.
누구 하나 믿기 어려워진 세상입니다. 사기꾼이 들끓으며 사람들의 등을 처먹는 시대입니다. 온라인의 발달로 사기수법은 더욱 교묘해졌고요. 성범죄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 옆의 좋은 사람이라 믿었던 인연들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었어요.
내 곁을 어느정도 내어줄 건지는 본인의 판단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조금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모든 것에 의심을 가지고 보려는 노력도 분명히 필요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