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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빈 Jun 20. 2024

직장인 퇴사 마렵게 하는 멋진 상무님.

어떻게.. 출, 퇴근길 뛰어다니시나요?

30대 중반. 운동을 참 열심히 하던 그때. 팀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던 그 시절.

웨이트 트레이닝에 한창 빠져 정신 못 차리던 그때. 헬스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사무실에 이미지가 각인되었던 그 시절.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한 상무님이 내가 운동하는 걸 평소에도 은근히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내려치기 하는 분이 있었다.


매일 운동하느라 업무 보기가 힘들지 않아?

운동한다고 피곤해서 점심시간에 자는 건가?

너무 심하게 하면 다쳐. 그거 안 하느니만 못해. 적당히 해. X과장 너무 과한 거 같아.


그렇다. 데드리프트라는 운동을 하다 119에 실려 간일이 있은지 약 한 달 정도 지난 뒤라 그러려니 했다. 저런 말할 수도 있지 뭐. 정도로 가볍게 넘겼다.


그러던 어느 점심시간. 자유배식을 하던 구내식당. 줄을 서서 밥과 반찬을 열심히 담고 있는 그때.

반대편 줄 앞쪽에 그 상무님이 보인다. 별 신경 안 쓰고 그저 밥을 퍼담고는 테이블을 따로 앉았다.


X과장. 운동 아주 열심히 하더라고요. 팔뚝도 아주 튼실허니.

상무님과 같이 밥을 먹던 어느 부장님이 적막한 점심시간 분위기를 깨뜨리고자 한마디 거든다.

대각선 뒤쪽 테이블에서 밥을 먹던 나는 슬쩍 듣곤 속으로 어깨 으쓱.

음.. 이 맛에 운동하지.


이어 나온 상무님의 한 마디.

그거 팔뚝 튼실하다고 뭐가 좋아? 팔 두꺼워서 그걸 뭐에다 써? 적당히 해야지.


빠직. 승질난다. 왜 나의 취미생활을 폄하하는가.

단 한 번도 내 입으로, '나 운동한다!!! 부럽지!!'라고 자랑한 적 없다.

업무에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

내 할 일은 열심히 했다.

점심시간에 밥을 빨리 먹고 자는 것도 내 휴식시간을 쪼개서 자는 거지 업무시간에 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 한 가지 설명을 덧붙이자면, 글로 쓰다 보니 저분의 말투나 이런 것들이 설명이 어려운데, 상상과는 다르게 굉장히 나긋나긋한 말투를 지니신 분이다. 위에 말들을 굉장히 나긋나긋한 말투로 했다고 보면 된다.


그 상무님은 마라톤을 좋아한다. 마라톤 대회도 종종 나가기도 하고, 해외에 산악트래킹등을 하러 간혹 떠나기도 하셨다. 그리곤 카톡 메인사진으로 그런 사진들을 올려놓으셨다. 마라톤을 좋아하는 걸로 소문이 자자하셨던 상무님.


"그래서 상무님은 출, 퇴근길 뛰어다니시려고 마라톤 하시나요? 어디에 쓰려고 해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왔지만 꾸역꾸역 삼켰다. 밥이 어떻게 넘어갔는지도 모르게 점심을 먹고는 사무실에 돌아와 눈 좀 붙이려 하는데 이상하게 그 상무님 눈치가 보인다. 별스럽지 않게 내뱉은 상무님의 그 한마디로 인해 눈치를 보는 나를 발견한다.


생각해 보니 더 승질난다. 다시 돌아와 평소대로 의자를 제끼고는 쪽잠을 청했다. 15분 정도 잤으려나.

업무시작 5분 전 귀에 꽂은 에어팟을 통해 알람이 울리고 잠에서 깬다. 눈을 비비며 화장실로 가는데 그 상무님과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했다.

자다 깨서 그런가 조금은 빨개진 눈과 잠에서 깬듯한 나를 보며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하신다.

어제 운동 많이 했나 봐. 많이 피곤해 보이네 허허허.


저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에라이. 이렇게 된 거 아예 내 운동 루틴을 설명해 주자.


네 상무님. 어제는 미는 운동을 하는 루틴이었습니다. 플랫 벤치프레스 6세트. 인클라인 벤치프레스 6세트. 인클라인 덤벨프레스 6세트를 하고, 밀리터리 프레스와 사이드레터럴레이즈를 각 6세트씩 했습니다. 약 1시간 정도 진행했구요. 이후에 삼두운동을 30분 정도 하면서 운동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은 가슴부터 어깨, 삼두까지 근육통이 좀 있습니다. 하하하하.


네 상무님이라고 말을 시작하자 무슨 말인지 듣기 위해 걸음을 멈춘 상무님께 위에 쓴 거보다는 조금 더 디테일하게 어제 운동루틴을 설명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내 설명을 1분 정도 듣다가,


아 그런가. 허허허.

하며 들어가셨다.


기분 탓인가 싶지만, 이후로 나에게 저런 식의 말은 하지 않으셨다. 자연스럽게 내 기분도 조금 풀렸던 기억.

그래. 그냥 말속에 어떤 식이라도 질문의 뉘앙스가 비친다면 무조건 다 설명해 주자.


상무님이 했던 말에선 '어제 운동을 많이 했나 봐'를 질문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세상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내가 예전 아내 생일 때 써준 '생일 축하해~ 사랑해 여보~'라는 포스트잇을 8년째 고이 간직하는 와이프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에겐 너무나 하찮은, 그저 글자가 몇 개 적힌 포스트잇이지만 저런 식의 쪽지를 처음 받았던 아내에겐 얼마나 소중한 종이쪼가리(?) 이겠는가.


그저 나의 경험만을 떠올리며,


'이게 맞을걸~ 나보다 젊은 친구~'


이런 사고방식은 절대 피해야 한다. 나도 앞으로 더욱더 조심해야겠다. 나이는 먹어도 꼰대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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