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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Dec 24. 2023

발자국

 눈이 둥실둥실 내렸다. 하늘 위를 둥실둥실 떠다니는 눈은 사라지지 않고 바닥에 쌓이는 눈이다. 눈사람을 만들 수 있는 눈. 발자국을 만들 수 있는 눈. 군인들을 슬프게 만들 수 있는. 그런 눈. 팔을 쭉 뻗어 둥실둥실 내려온 눈송이를 손아귀에 가둬본다. 자세히 뜯어보고 싶었는데 손아귀에 쥐자마자 사라져 버린다. 몇 번이나 잡으려고 해도 눈앞에서 눈이 계속 사라진다. 아이 약 올라. 올해 나는 손에 쥐고 나면 사라지는 눈 같은 것들을 좇았다. 가질 수 없지만 가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 쌓이기 전에 섣부르게 다가갔던 것들. 멀리서 봐야만 했던 것들. 함박눈을 보며 지난날의 후회 따위는 찬 공기와 함께 훅 집어삼킨다. 숨만 쉬어도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어서 겨울이 좋다. 손에 쥐면 사라졌던 눈들이 바닥에 쌓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눈길을 따라 걷는다. 얼룩덜룩한 발자국이 찍혀있다. 희지도, 검지도 못한 회백색이다. 발자국의 주인들이 어떤 모양새로 걸어갔을지 상상해 본다. 눈길에 난 발자국만 보아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의 발자국임을 알 수 있다던 어느 시인의 말을 떠올려본다. 내 마음은 회백색이라 그런지 다정한 연인들의 모습을 떠올리지는 못한다. 다만, 무언가에 쫓기듯 서둘러 걸어가는 사람들의 잔상이 어른거린다. 그래서 나는 얼룩덜룩한 회백색의 발자국들을 볼 때마다 세상의 매정함을 느낀다. 그 발자국들에서 세상의 성난 발자국을 본다. 그리고 방황하는 마음의 발자국을 본다.     


 마음의 속도가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울 때가 있다. 숨이 찰 때마다 나는 시를 읽고 심지어는 또 쓰기도 한다. 그런 시간을 가지다 보면 내가 좇으려고 발버둥 치는 대부분의 것들이 사실 별거 아닌 듯 느껴져 좋다. ㄴr는 rㅏ끔 sl를 쓴다.......     


 애석하게도 내 능력의 한계를 알기에는 몇 번의 습작이면 충분했다. 그러면 그렇지. 공대생들이란 시를 보고 오그라든다고나 할 줄 알지, 시를 쓰려고 덤벼들어서는 안 되는 족속들인가. 아는 단어는 왜 이렇게 없는지, 상상력은 또 얼마나 빈곤한지. 그런 주제에 사랑은 그냥 사랑이라고 말하기 싫고, 꽃을 보면 꽃이라고 쓰기는 싫다. 좀 더 참신한 비유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번엔 써지지 않는 글의 꽁무니를 쫓는 것이다. 


 그래도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글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한 과정이긴 하겠지만 뿌듯할 거라 믿는다. 그러니까 그게 무엇이 되었든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쓰자.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먹지만 말고. 제발. 그러다 보면 내가 남기고 지나간 발자국들이 언젠간 한 편의 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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