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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Dec 31. 2023

명당

 1층 집에 살았던 기억이 있다. 전세니 월세니 보증금이니 하는 개념은 잘 모르는 어린 나이였지만, 아파트든 빌라든 맨 아래층이 왜 가장 싼 값에 거래되는지 직접 살아보니 손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사하기 전에 살던 집에서는 창문을 열면 파란 하늘이 활짝 펼쳐졌는데 이사 한 후로는 더 이상 그런 풍경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커튼 너머로 보이는 낯선 사람들의 그림자. 담배 연기. 가끔, 술 취한 사람의 소변보는 모습. 소변의 냄새. 그리고 아무리 문을 꼭꼭 닫고 있어도 어떻게든 들어오고야 마는 수많은 벌레들.

     

 결혼과 동시에 모든 의리는 사라져야 하는 거야.     


 술이 조금 오른 엄마가 나를 째려보면서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게 엄마한테는 ‘모든 집에는 소화기를 놔둬야 하는 거야’ 정도의 당연한 원칙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의리 빼면 시체인데 결혼하긴 글렀다고 이야기하니 등짝 스매시가 날아왔다. 한해의 마지막을 가족과 보내기 위해 춘천에 내려왔다가 부모님의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아빠의 터무니없는 의리 때문에 어렸을 적 우리 가족이 많이 힘들었다는, 흔하디 흔한 사연이다. 반지하가 아닌 게 어디였나 싶지만, 내가 당시의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부모님이 얼마나 큰 노력을 했을지 떠올려보니 죄송하고 또 감사하다.      


 오늘은 할아버지의 납골당에 방문한 날이기도 하다. 나는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그와 큰 유대감을 쌓지 못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나 돌아가신 지금이나 할아버지를 뵙는 일은 영 어색하고 서먹서먹하다. 그때 내가 할아버지와 어색하게 된 것은 유년 시절 우리 가족이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앞에서 아버지는 늘 죄인이었고, 어린 나는 할아버지가 늘 무섭기만 했다. 그 흔한 사랑방 사탕 하나 얻어먹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할아버지의 집에 가는 게 즐거울 리 없었다. 어려서 어색했던 할아버지와의 관계가 커서라고 유들유들해질 리가 없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할아버지의 납골당에 갈 때 꼭 나를 대동하고 가신다. 나는 그런 일이 솔직히 조금 귀찮고 피곤하다.


 납골당은, 말하자면 죽은 사람들의 아파트였다. 일 층은 싸고 눈높이에 딱 맞는 중간층은 비쌌다. 넓이에 따라 가격도 달랐다. 할아버지의 집은 밑에서 일곱 번째 칸 정도에 위치해 있다. 눈높이에 딱 맞는 좋은 위치다. 나는 내 멋대로 납골당의 5층~7층 사이를 로얄 층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명당이다. 한편, 누군가의 자리는 맨 밑바닥의 좁은 곳이었다. 사람들의 발 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입주해 있다.      


 나는 납골당에 입주해 있는 고인들의 영혼에 대해 상상했다. 그중에서도 맨 아래층에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의 영혼을 상상했다. 그 자리에서는 누군가의 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혹시 아들이 아닐까. 손주가 아닐까. 납골당 안팎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납골당 맨 밑층에 입주한 누군가의 영혼이 혼자 기대했다 실망하기를 반복할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를 뵈러 온 납골당에서 이름 모를 타인의 외로움을 생각하며 나는 할아버지가 입주해 있는 로얄층을, 명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묻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나의 얼굴을 어렵지 않게 보고 계신 건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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