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재능 vs 숨겨진 노력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누군가의 성과를 볼 때, 그 뒤에 감춰진 노력을 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진 것 같다. 수영을 못하던 사람이 어느새 잘하게 되면 "연습을 많이 했나 보네."보다는 "저 사람은 원래 운동 신경이 있었겠지."라고 쉽게 단정 짓는다. 마치 타고난 재능이 모든 걸 이뤄낸 것처럼 말이다. 노력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재능이라는 이름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왜 사람들은 다른 이의 노력을 제대로 보지 않으려 할까?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나 유명인의 '피, 땀, 눈물' 이야기는 그렇게도 듣고 싶어 한다. 수없이 반복된 훈련과 좌절 끝에 이뤄낸 성과라는 서사에 마음이 빼앗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가까운 사람의 노력보다는, 멀리 있는 사람의 성공 이야기에 더 마음을 여는 걸까?
성공의 정당화
성공한 사람들의 성과는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과 다르기 때문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나 세계적인 음악가들은 우리와는 다른 차원에 있는 듯 보인다. 그들의 노력은 비범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으로 보이고, 우리는 그들의 성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반면, 가까운 친구나 동료의 성공은 어떨까? 그들의 성취는 상대적으로 나의 현실에 가깝고, "나도 할 수 있었던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그들의 노력 이야기는 우리의 흥미를 덜 끌게 된다. "저 사람도 노력해서 성공했네."라는 말이 우리에게 위안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의 부족함을 직면하게 만드는 불편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 회피
누군가의 성공을 노력보다는 재능으로 설명하면 우리는 더 편안해진다. "저 사람은 원래 재능이 있었으니 저렇게 잘된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이 굳이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준다. 반면, 그 사람이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나는 그들의 성과를 보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
인지적 편향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잘할 때, 그들이 겪었을 수많은 노력과 시행착오를 상상하기보다는 "저 사람은 원래 잘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편하다. 이러한 심리를 '인지적 편향'이라고 한다. 복잡한 과정을 단순화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의 성취를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그들이 나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노력의 가치를 재능으로만 치부하는 심리는 우리 안에 깊이 자리 잡은 편견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성취를 보고 단순히 "타고난 재능"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거쳐 온 길을 조금 더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결국, 우리도 그들처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꿈을 이뤄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