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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팀목 Jun 08. 2023

가끔 입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지난번 브런치스토리에 '빙산의 일각'이라는 글을 썼어요.


그 글에서 심연에 쌓여 있는 빙산이 없이 바다에 떠 있는 것은 부유물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말이라는 것이 부유물일 때가 참 많습니다. 특히,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경우는 더욱 악취가 나는 부유물일 때가 있죠.


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수사구조개혁'을 떠들었던 주요 인물들을 보면서 우리가 가끔 입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메라비언이 법칙(Albert Mehrabian의 저서 「Silent Messages」에 포함된 내용)에 따르면 대화는 언어적인 표현과 비언어적 표현으로 나뉘며 우리가 소통을 할 때 상대방으로 받는 이미지는 몸짓 55%, 음색이나 억양 등이  38%를 차지하고 실제 받는 이미지 중 언어의 내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7%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또한 전문가일수록 비언어적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하네요.


한 사람이 대화를 하는 순간에도 그가 한 말의 내용은 7%에 불과한 비율을 차지합니다. 그가 말하는 7%가 과연 부유물인지 빙산의 일각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사실 그 사람 자체를 알아야 합니다. 


차라리 입이 없었다면 우리는 항상 말과 행동이 일치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놈의 입이 내뱉는 말은 당최 그것이 빙산의 일각인지 부유물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립니다. 


최근 경찰이 남긴 부유물 중 가장 국민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친 부유물 중 하나로 수사권 독립을 들 수 있습니다. 


'수사권 독립'은 경찰대학 졸업생들의 자격지심을 가리기 위한 쑈였습니다. 


우연하게도 경찰에서 수사권 독립을 외쳤던 주요 인물들의 90% 이상은 저와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거나 과거에 친구였던 사람들입니다.(지식뿐만 아니라 도덕성에도 문제가 많았던 인물들임을 고백합니다. 아울러 수사권 독립은 외쳤지만 정치적으로는 전혀 독립된 처지들이 아니었다는 점도 고백합니다)


문제는 그들의 언어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이들의 언어가 공존하면서 논쟁을 이끌어야 했는데, 다들 엘리트라고 추앙받던 경찰대학 출신들이었으므로 누구 하나 감히 그 논쟁의 판에 끼어들지 못했습니다. 


다른 의견이라도 내면 득달 같이 달려 들어서 마치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들을 억압하는 헌병경찰쯤으로 취급했었으니까요.


그들은 2018년 저에게 수사구조개혁단에 들어올 것을 요구했고 분명히 '저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반대합니다.'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만드는 일이라고 하여(내심 제 의견이 반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 초안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부분은 "검사의 직접 수사권을 배제하고 검사는 오로지 경찰의 수사를 감독한다"였습니다. 


이에 대해 민갑룡 청장은 


"안돼 검찰도 수사하게 해 주야지"


"안돼 지휘는 무조건 없애"


"안돼 사법경찰관, 사법경찰리는 유지해야 해"로 일관했고 당연히 제 의견은 모두 묵살되었습니다. 


제 의견이 중요하다 또는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의견은 아무런 비판도 없이 수용되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검찰도 수사하게 해 줘야지"와 "지휘는 무조건 없애야 해"라는 두 문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검찰도 수사하게 해 줘야지"에 함축된 의미는 "같이 먹고살아야지"입니다. 


"지휘는 무조건 없애야 해"에 함축된 의미는 "나도 고등학교 때 공부 잘했는데 지는 검사고 나는 경찰이네 아이고 기분 나빠"에 불과합니다.(아 그리고 지휘가 없어진 것도 아닙니다. 형사소송법의 전 영역과 다른 특별법에 무수히 많은 지휘가 남아 있습니다.)


"사법경찰관, 사법경찰리는 유지해야 해"의 의미는 "경찰대학 졸업생이 경위로 임관하는 간부이니 비간부와의 차이를 두어야 우리가 폼나"였습니다(사법경찰, 행정경찰의 구분은 범죄수사와 경찰행정이 구분된 프랑스형사소송법에서 유래된 제도이기 때문에 우리의 경찰제도와 맞지 않아 수사의 주체를 "경찰공무원은..."이라고 변경하려고 했습니다). 


수사구조개혁단에서 이 세 가지와 그 이외의 수많은 요구사항에 대한 진중한 토론과 연구가 전제되어야 함을 요구했지만 직속상관의 대답은 당연히 No였는데 그 이유가 걸작입니다. 


"이미 청장님은 우리나라만 검사가 경찰을 지휘하는 줄 알고 계셔 이를 번복하는 보고는 못해"


저는 경찰공무원들이 건전한 토론문화를 정착시키지 못하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할 것임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매일 안타깝습니다.


경찰대학생 졸업생 자신의 승진과 명예, 그리고 법조인에 대한 자격지심 따위 때문에 밤낮없이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숭고한 경찰관들을 욕보이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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