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얇은 귀와 담임선생님

모든 권력을 의심하라

by 버팀목

고등학교 3학년, 도시락을 싸 줄 엄마도 없고 밥을 사 먹을 돈도 없어서 점심시간만 되면 운동장 수돗물을 마시며 버텼다.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자존심도 상하지 않았다. 내가 하도 당당하고 성격도 지랄 맞아서 친구들이 날 동정하지도 않았다.


4월인가 5월인가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날 부르시더니


"관희야 내가 배불러서 그러는데 이 도시락 점심에 먹든지, 야자 할 때 먹던지 해라"


"네?"


이렇게 무심코 건네받은 도시락을 야무지게 먹어 치웠다.


그 후로 한 두 번은 배가 부르시다는 핑계를 대시더니 언제부터인가 당연한 듯 매일 도시락을 두 개 챙겨 오셔서 1년 동안 날 보살펴 주셨다.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문 후배로부터 나의 담임선생님이 은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담임선생님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고마운 분이다. 이미 그전에라도 자주 연락을 드렸어야 했고 지금이라도 연락해야 한다. 사실 나는 담임선생님을 자주 생각한다. 내 내면의 도리는 항상 나에게 담임선생님을 생각나게 한다. 그런데 내 내면의 한쪽 구석에는 선생님에 대한 원망이 조금 자리 잡고 있고 그 원망은 나의 도리를 그저 의무감으로 변질시키게 되고 의무감으로 하는 행동을 허락하지 않는 내 양심은 나로 하여금 연락을 주저하게 만들어 왔다.


선생님에 대해 가지게 된 원망은 선생님 잘못이 아니다. 그분의 조언은 날 위한 것이었고 그 조언에 따라 달라져 버린 내 인생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우연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경찰대학을 추천해 주셨고 아무런 정보를 얻을 재간이 없던 나는 당연하게도 경찰대학을 입학했고 경찰대학은 나를 폭력적인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때로부터 28년 동안 폭력의 가해자와 폭력의 피해자를 넘나드는 삶을 살면서 '보이지도 존재하지도 않은 국가'에 충성하면서 살았을 뿐, 착한 아들, 다정한 남편, 따뜻한 아빠는 나에게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난 사실 선생을 믿지 않았다. 아버지에 이어 나에게 일상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학교는 맞기 위해 등교하는 곳이었고 나의 모든 선생은 권력자, 부자 또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에게만 정성을 쏟았다. 왜 살아야 하는지, 공부를 왜 잘해야 하는지, 수학, 과학,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 대학은 왜 가야 하는 것인지 알려준 선생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3 담임선생님은 내가 믿는 유일한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용접공이 되는 것이 내 꿈이었다. 대학에 간다든지 무슨 과목을 전공한다든지 이런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물으셨다.


"관희 너 어디 갈래?"


"어디를 가다니요? 저 졸업하고 취직할 건데요."


"취직은 대학 졸업하고 해도 되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다시 생각해 보고 와"


내 귀는 그때부터 얇았나 보다. 특히 선생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지붕을 뚫고 나갈 정도이니 당연히 어딜 가는 게 좋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 서울대 의대를 가자! 가서 부패한 정권에 대해 열심히 투쟁을 해서 내 선배들처럼 훌륭한 지성인이 되어 보자'


"선생님, 저 서울대 의대 갈래요."


"너 돈 있어?"


"네? 돈이요?"


"학기당 300만 원은 있어야 할걸, 학비는 어떻게 하게?, 잠은 어디서 자고?"


"그럼 어쩌죠? 잠도 재워주고 학비도 공짜인 대학 없을까요?"


"있지, 경찰대학은 다 공짜야 그리고 전체 기숙생활이야"



이 짧은 대화가 내 인생의 향방을 바꾸어 놓았다.


가정폭력을 피해 도망간 곳에서 만난 것은 학교 폭력과 직장 내 폭력이었다.


내 삶의 주체가 되어 선택하지 못하고 소나기를 피해 달아난 곳은 늘 호랑이 굴이었다.


공부를 한 것도 맞지 않기 위해서 한 것일 뿐이고


경찰대학을 간 것도 도망을 위해 간 것일 뿐이고


사기업에 취직한 것도 경찰로부터 도망하기 위한 것일 뿐이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것도 교수님이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일 뿐이고


죽어가는 나이에 접어 들어서야 난 내 삶의 주체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첫 과정 첫 강의에서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있다.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많이 안다고도 생각하지 마세요. 난 내가 맞다고 생각하고 내가 아는 것만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그렇게 보일 뿐이에요. 내 강의를 들을 때는 비판적으로 들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 것이 됩니다."


내 딸과 아들이 좋은 대학을 가면 나는 좋다. 자랑삼을 만한 것이 있으니까.


좋은 대학을 갔다고 해서 내 딸과 아들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세상이 모순 덩어리라는 것을 알아갈 테고 그 모순 속에 살지 않기 위해 더욱더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테고 나중에야 모르지만 계속 고뇌하는 삶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난 내 아이들이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기를 바란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이쁘게 사랑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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