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변한 것은 없는데 전태일 열사는 왜 희생했나?
세상에 변한 것은 없는데 전태일 열사는 왜 희생했을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전과 함께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전태일 열사가 외쳤던 말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22세였다.
“하루에 하숙비가 120원인데 일당 오십 원으론 어림도 없지만 다니기로 결심을 하고, 모자라는 돈은 아침 일찍 여관에서 손님들의 구두를 닦고 밤에는 껌과 휴지를 팔아서 보충해야 했다. 뼈가 휘는 고된 나날이었지만, 기술을 배운다는 희망과 서울의 지붕 아래서 이 불효자식의 고집 때문에 고생하실 어머니 생각과 배가 고파 울고 있을지 모르는 막냇동생을 생각할 땐 나의 피곤함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1965.8.25. 일기에 이렇게 썼다.
2022. 12. 26.부터 2023. 3. 31. 까지 나는 서울의 한 학원에서 매일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강사 한 명에 딸린 연구원 4명과 3명의 조교, 이들은 그 강사를 위해 책을 쓰고 문제를 출제하고 약을 챙겨 먹이고 점심 밥상을 차려주고 개인이 얻은 아파트에 이삿짐을 날라 주고 치과 예약을 해주고 건강검진 예약을 해주고 개인 휴대전화를 대신 사주고 화장실 청소를 해주며 주차장 요금을 결제해 주러 매일 주차장까지 따라가 주고 있었다.
대표가 잔소리를 할 때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두 손을 모은 채 30분, 1시간을 서 있어야 했다. 대표가 키우는 개들의 배변패드와 사료를 주문해 주며 예약이 되지 않는 식당에 미리 가서 웨이팅을 해 주는 것도 일과 중 하나였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에 학생들이 풀어야 할 모의고사 문제를 그 전날 22시나 23시에 강사가 보내주면 문제를 전부 풀어 보고 오타 교정, 편집, 인쇄를 해야 하기에 그다음 날 새벽 3시나 4시에 퇴근하고 있었고 그다음 날은 어김없이 오전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다. 1년에 가끔 있는 일이 아니라 계속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초과근무수당도 지급되지 않았고 토요일, 일요일에 출근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연구실장은 지친 몸을 이끌고 병원에서 수액을 맞아 가면서 버텨내고 있었다. 이런 일이 2023년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한 번은 대표와 저녁 술자리를 하면서 “대표님 연구원들 많이 힘들 거예요. 일이 너무 많네요.”라고 했더니 대표 왈 “연봉을 그만큼 주는데 당연히 해야죠.”라고 응대하는 것을 보고 대략 어떤 인간의 유형인지 짐작할만하여 아까운 말을 아꼈는데 다음날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나에게 전달되었다. 요지는 “앞으로 더 힘들 텐데 열심히 하라는 말은 못 할지언정 새로 들어온 사람이 건방지게 그런 말을 해서 물을 흐리지 말라.”는 취지였다.
연구실에서 그 문자를 봤는데 읽자마자 ‘씨발년’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참자! 참자! 난 강사이기 때문에 개인사업자다. 연구원들도 성인이니 알아서 할 게다. 괜히 남 일에 나서지 말자.’ 몇 번을 다짐한 후에 “네 대표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타협했다.
같은 연구실에 있으니 연구원들의 지친 일상과 대표와 강사의 행태는 계속 날 거슬리게 하였고 세종의 집에 내려와 있던 토요일 오전 9시 반 단체 카카오톡의 대화를 읽자마자 ‘씨발 너무하네’라고 욕설을 해버렸다.
대화방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토요일(평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다!!) 새벽 4:30 연구실장 : “오늘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퇴근하겠습니다.”
(같은 날) 오전 9:35 연구실장 : “출근하였습니다.”
대표 : “교수님 나오셨나요?”
연구실장 : “아직 출근 전이십니다.”
대표 : “교수님 공진단 챙겨드려야 하는데 늦게 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다음부터는 늦어도 9시까지는 나오세요.”
연구실장 : “죄송합니다.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듣기로는 대표가 개를 5마리 키운다고 한다. 차라리 연구원들 4명을 개 4마리라고 생각하고 대해주면 어떨까? 연구원의 입장에서는 개가 되는 편이 개이득일 게다. 일단 나라면 분명 대표의 직원이 아니라 대표의 개로 태어나는 선택을 하겠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일한다. 미치지 않고서는 일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란 말이다.
가끔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기도 하지만 일을 해야 돈을 얻게 되고 그렇게 얻은 돈으로 내 삶을 살아간다.
대표의 입장에서 자기가 필요한 돈을 벌어주는 사람들이 직원들이다. 자기를 대신해서 돈을 벌어주는 직원들에게 “일해 주어 고맙다. 고마움의 표시로 봉급을 준다. 많이 못 주어 미안하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돈을 주니까 일해라”라는 덜떨어진 생각으로 회사는 클 수 없다. 제정신으로 경영을 해도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 어려운 마당에 덜떨어진 생각으로 회사를 운영하면 그 회사는 흥할까? 망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집사람에게 그간의 상황을 이야기를 했다. 집사람 왈 “미친 거 아니야? 그래도 자기는 가만히 있어야 해! 괜히 성질 못 참고 관여하지 말아. 자기가 이야기한다고 알아들을 사람들이 아니구먼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왕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자기가 이야기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아 오히려 자기만 바보 될 거야.”
절절히 맞는 말이다. 지천명의 나이인 오십이 넘어서도 저러는 거 보면 내가 상대할 사람들이 아닌 것은 맞다. 집사람에게 약속했다. “알았어 가만히 있을게 물론 날 건드리지 않는 이상....”, 집사람도 ‘날 건드리지 않는 이상’이라는 나의 조건에 동의를 했다. 그날 이후 난 “제발 날 건드려다오”라고 바랬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그날은 2023년 3월 31일이었고 그날 난 학원에서 나와서 스스로 무직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쯤에서 내가 왜 학원을 가게 되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설명의 중간중간 깨알같이 내 자랑을 할 수 있어서 글 쓸 맛이 난다.
난 2004년부터 무서운 형사 아저씨들에게 강의를 해 왔다. 중앙경찰학교, 경찰수사연수원, 경찰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한 경력도 있다. 2005년부터 책을 써 와서 현재까지 대략 10여 권의 책을 쓴 것 같다. 25개 로스쿨에 론칭한 경찰학 커리큘럼도 설계했고 로스쿨에서 교육할 교수들도 직접 양성하고 로스쿨에 필요한 책도 기획, 편찬했다. 사이버보안과 디지털증거를 전공해서 헌법, 형사법 쪽 지식은 꽤 있는 편이다. 형사법 분야 논문도 대략 10여 편, 관련 연구보고서도 두 세건 수행했고 2018년에는 개정 형사소송법안을 축조하기도 했으니 대략 형사소송법에 관련해서는 어설픈 학원 강사보다는 잘 알고 있다.
조직 생활에 맞지 않는 성격이라 대기업도 2년도 안 되어 사표를 던지고 온갖 채용사이트를 도배하던 중에 형사법 강사로 활동 중인 선배와 연이 닿아 법을 강의하기로 하고 학원가로 진출했다. 오래간만에 틀에 박힌 교과서 공부를 시작했고 1달 반 동안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법 강의를 준비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승진 과목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여 실무종합이라는 경찰학의 아류 과목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때 내 심정은 어땠을까? ‘그래 법이야 나중에 다시 하면 되니까 일단 까라면 까자’, ‘이 바닥에서 성공하려면 선배 말 잘 들어야지, 내가 법보다는 실무종합을 더 잘할 수 있다고 판단하셨을 거야’ 등등 애써 억지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님을 각색하기 위한 각종 변명거리를 생각해 내고 다시 으쌰으쌰 하기 시작했다.
난 총론 파트를 담당하고 그 선배는 각론을 담당하기로 했는데 그 선배가 시간이 안 된다는 이유로 결국 내가 총론, 각론 책을 쓰고 선배는 강의만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 후로 한 달 동안 시중에 나온 책을 전부 읽고 풀고, 시중에 나와 있는 강의를 전부 듣고 900페이지 정도의 책 초안을 모두 집필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주 전 또 다른 요청사항이 들어왔다. 상품을 하나 기획하고 있는데 경찰학 문제를 매일 출제하고 학생들이 틀린 문제를 집중적으로 케어할 수 있도록 개인별로 맞춤형 문제를 다시 출제하라는 것이었다. 난 또다시 “네 해볼게요.”라고 승낙을 했고 대표와 기획팀 간부는 상품 기획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3월 31일까지 2주 동안 또 다른 과목을 위해 달렸다. 상품 기획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3월 30일 회사는 나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아니 통보도 없이 해당 상품의 모집 광고를 게재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이관희 교수가 매일 문제를 출제할 것이다. 그리고 문제에 대한 강평도 할 것이다. 그리고 토요일에 상담도 할 것이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상품이 원래 600만 원인데 할인해서 130만 원가량에 판다는 것이다.
‘엥! 나도 모르는 내 일정이 ㅠㅠ’, ‘한 명당 130만 원? 대체 몇 명을 모집한다는 거지?’, ‘난 아직 강사 계약서도 안 썼는데 뭐 어쩌자는 걸까?’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어찌 된 영문인지 확인이 필요하여 이를 기획한 실장을 찾아갔다.
실장 : “그때 회의할 때 들으셨잖아요? 그리고 토요일에 시간 안 되시면 조종하면 되죠.”
철저한 ‘을’인 나 : “그때 제가 해보겠다고 했고 기획을 해보신다고 했잖아요. 그럼 어떻게 기획할 것인지 제 시간은 어떤지 등 상의하실 줄 알았죠.”
실장 : “아니 회의할 때 분명 다 알았다고 해서 한 건데 이제 그러시면 어떻게 해요.”
슬슬 열받는 나 : “기획이란 게 뭐예요. 제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옆 사무실인데 몇 명을 모집할 거다. 앞으로 구체적인 계획은 이렇다. 뭐 그 정도는 이야기를 해 주셔야죠.”
실장 : “저한테 그러시지 말고 경영진한테 가서 이야기하세요.”
꼭지는 돌지만 참고 있는 나 : “이러니까 작년 7월에 설립한 회사에서 직원이 반이나 퇴사하는 거 아닌가요?”
실장 : “그건 그 사람들이 못 버틴 거죠. 경영진 입장을 생각해 보세요. 돈을 그렇게 많이 써서 회사를 만들었는데 잘 되어야죠. 그래야 직원들도 잘 되는 거고, 제가 5,6군데 회사를 다녀봤는데 다 마찬가지예요. 열정페이로 일하는 거죠. 그리고 강사가 자기 과목 떼어주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후배니까 키워주는 건데 이박사 님도 열정페이로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욕 나올 뻔한 나 : “네 알겠습니다.”
연구실로 돌아오자마자 대표와 그 대단하신 선배가 있는 단체 카톡방에 최대한 감정을 숨기면서 ‘내가 너희들의 도구니? 돈 좀 있다고 사람이 우습니? 회사도 날 선택하는 것처럼 나도 회사를 선택하는 거야 그게 계약이야 멍청이들아! 그것도 모르면서 법을 가르치니? 그리고 말이야 법을 가르치려면 최소한 법은 지켜라’는 취지의 말을 남기고 떠나게 되었다.
보통의 기업은 퇴사율이라는 것을 관리한다. 퇴사한 사람을 병신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퇴사하게 만든 회사를 돌이켜 보는 것이다. 경영의 기본이다. 그런데 난 그 학원을 운영하는 경영진이 구멍가게라도 운영해 본 적이 있나 하는 아주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그리고 근로기준법을 외치면서 꽃다운 생을 마감한 전태일 열사가 2023년에는 왜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