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는 국민에 대한 서비스다.

꼬리가 개를 흔드는 수사 中

by 버팀목

수사는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국민에 대한 서비스다. 수사가 왜 서비스일까?


국가권력의 작용을 입법·행정·사법의 셋으로 나누고, 이를 각각 별개의 독립된 기관에 분담시켜 상호 간에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려는 정치조직의 원리를 3권분립이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3권분립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의 검찰제도는 3권분립의 원리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는 형식적으로 행정부이면서 실질적으로는 사법에 관여하고 있고 특수계급화된 현상을 이용하여 입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반헌법적, 반민주적 관청으로 3권분립의 원리 바깥 쪽에 위치하고 있다.


3권 중 사법이란 “구체적인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당사자로부터의 쟁송의 제기를 기다려, 독립적 지위를 가진 기관이 제3자적인 입장에서 무엇이 법인가를 판단하고 선언함으로써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작용”을 말한다.


사법부는 스스로 법적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쟁송을 제기해 주기를 기다리고 이를 판단할 뿐이다.


누구든지 법원에 소를 제기해 주어야 비로소 사법부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범죄에 관하여 소를 제기해 주는 것을 우리는 ‘소추’라고 한다. 이러한 소추를 누가 하는가는 입법정책의 문제일 뿐 당연히 누구에게 소추권이 있다고 정해진 것이 아니다.


프랑스, 독일, 일본과 같은 나라처럼 우리나라도 국가소추주의를 택하고 있다. 범죄를 당한 피해자가 직접 소추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소추의 서비스를 대행해 주는 제도이다.


범죄를 수사한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경찰은 국민이 범죄의 피해를 입으면 국민을 대신하여 법이 허용한 권한을 활용하여 피해를 준 범인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경찰이 사건을 재구성하고 피해를 준 범인을 가리키는 증거들을 수집해 주면 검사는 피해자를 대신하여 소추해 주고 법정에 출석하여 피해자를 변호해 준다.


범죄 수사는 형사소송법이나 대법원이 언급한 것처럼 ‘공소를 제기하고 유지하는 활동’의 측면에서 바라보게 되면 마치 수사기관이 사법부를 위해 종사하는 자로 인식될 수 있다. 특히, 스스로 준사법기관이라고 칭하고 수사권과 기소권 및 형벌집행권까지 가진 검사의 입장에서는 행정과 사법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권력’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근대 경찰을 창설한 영국, 범죄 수사를 자치권의 일환으로 보는 영국, 범죄 수사를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했던 영국은 사인소추가 헌법상의 전통적 권리로서 인정되고 있다. 피해자 개인뿐만 아니라 시민이나 단체를 불문하고 누구라도 형사절차를 개시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19세기 전반에는 피해자에 의한 소추 압도적이었으며 경찰에 의한 소추는 7%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런데 피해자 개인이 범죄를 소추하기 위해서는 증인확보의 곤란, 소송비용의 부담 등으로 인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공적 소추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현재와 같은 형태로 확립된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수사권은 경찰, 검사의 고유한 권한이 아니라 시민의 권한을 대행해 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 검사가 마치 정의의 화신인 행세를 하며 온갖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얼마나 철없는 짓인지 이해할 수 있다.


수사기관, 기업의 내부감사인은 국민, 고객, 주주, 법인을 대신하여 수사 및 조사활동을 하는 것이지 범인과 비위행위자를 심판하는 사법부 또는 징계위원회가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망각하는 순간 나치 시대의 장교들, 제주 4·3사건 무고한 시민을 무참히 살해한 경찰들, 4.19 혁명에서 시위대를 사살한 경찰, 5.18 민주화운동에서 시민에게 총을 쏜 군인들, 남영동 대공분실의 이근안, 그리고 현재와 같이 수사권을 정치도구화하는 검찰과 같이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고 고문하는 행동을 마치 국가를 위해 충성하는 거룩한 일쯤으로 착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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