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권력을 의심하라
1960년 6월 15일 대한민국헌법 "경찰의 중립을 보장하기에 필요한 기구에 관하여 규정을 두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3.15. 부정선거에 경찰이 깊이 개입했기 때문에 신실된 조항이다.
또한, 경찰공무원법은 경찰공무원이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하게 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난 경찰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정치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정치적 중립의무를 지키는 것과 정치를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계기가 있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당시 나는 사이버수사대장으로 재직 중이었고 이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곧 이은 속보에서 '유서가 컴퓨터에서 발견되었다.'는 내용을 접했다.
'아 자살이구나' 정도였다. 난 그때만 해도 정당이 무엇인지,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왜 죽은 건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에게 '유서가 컴퓨터에서 발견되었다'는 속보는 그저 '디지털포렌식이 필요하겠구나. 조만간 나를 부르겠구나' 정도였다. 경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에 전화해서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음을 보고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런데 상부에서는 아무런 지시가 없었다. 이상했다. 왜 날 안 부르지? 대체 누가 지휘를 하는 거지?
결국 언론에서 유서가 조작되었을 수도 있다는 등의 의문을 제기하자 그제야 전화가 울렸다.
"사이버대장 빨리 와서 컴퓨터 봐봐"
"분석관이랑 장비 챙겨서 가겠습니다."
"장비는 무슨 장비야 와서 파일만 열어보면 되지!!"
"아닙니다. 분석이 필요하니까 장비 챙겨서 가겠습니다."
유서의 조작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해당 파일의 작성일자만 확인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문서 작성 프로그램인지, 그 프로그램 안에 존재하는 메타 데이터뿐만 아니라 운영체계에 저장되어 있는 파일의 생성, 수정 시간, 컴퓨터의 암호, 운영체제의 암호, 인터넷 접속환경 등 다양한 분석이 필요했다.
전직 대통령의 사저는 너무 평범했다. 대통령이 살고 있었던 집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소박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쓰던 컴퓨터에는 손주들의 사진으로 채워져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이 쓰던 글들이 있었다.
유서파일을 분석하는 중간중간에 그 글들을 읽었다. 뉴스에서 접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비리로 인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중이었고 난 의례 '모든 대통령이 다 똑같지 뭐 이 사람도 비리가 있었구나'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쓴 일기 형식의 글을 통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고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알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은돈을 받지 않았다. 그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당최 글을 쓸 수도 없을 정도로 괴롭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나더러 받지도 않은 돈을 받았다고 인정하란 말인가? 내가 받았다고 인정하는 순간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던 사람들, 앞으로 정치를 하려고 하는 정치인들을 희망을 꺾는 것이 된다. 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검찰은 내 가족들을 계속 수사할 것이다. 가족을 선택해야 하는지, 날 지켜준 사람들을 선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대략 이러한 취지였다.
유서 파일을 포렌식 한 결과 전혀 위조나 변조의 흔적은 없었다. 이후에 나는 CCTV 분석, 통화기록 분석과 더불어 모든 경호관들에 대한 면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모든 사람을 존중해 주었고 너무도 겸손하였으며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마추어처럼 면담 도중에 경호관과 펑펑 울기까지 했다.
내가 만약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이었다면 난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
나도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살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도록 몰아붙이는 것, 그건 국가에 의한 살인이다.
수사를 하면서 국가에 의한 살인을 직접 목격한 이후로 난 정부를 믿지 않는다. 언론도 믿지 않는다.
모든 권력은 의심해 봐야 한다. 그 권력의 크기가 어떠하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