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자유는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는 존재일 것이다.
우리에게 자유는 마치 물이나 공기처럼 일상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만약 지금의 자유가 사라진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할까?
그리고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까?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 지식인들의 글과 행동에서 우리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식민시절과 군부독재 시절을 지나오며 그 시대를 담았던 작품들은 자유를 잃은 삶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또한 자유를 이야기하고 신념을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를 알려준다.
냉전시대의 주축이 된 소련이라는 나라에도 누구보다 용감하게 펜을 들어 자유를 이야기하고, 신념을 지켜나간 이가 있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나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
체제 비판으로 인한 오랜 수용소 생활과 망명을 감수해 낸 사람.
러시아의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그렇게 자유를 이야기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1. 운명을 바꾼 편지 한 통
1918년 러시아의 키슬로보츠크라는 지역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냉전시대라는 가장 아픈 시대의 증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글을 통해 우리는 시대의 아픔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오롯이 느낄 수 있고,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신념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전시대에서, 독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우리의 역사 또한 솔체니친의 작품에 대해 공감과 이해 한 스푼을 더할 것이다.
대학 졸업 후 독일과의 전쟁이 발발하자 소련 육군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하던 그는 중대장으로 임관하여 많은 전투에 참여하고, 적성훈장까지 받기도 한다.
전투에서의 용기를 보여주고, 국가안보를 수여한 이에게 주어지는 적성훈장을 받은 그.
국가를 위해 헌신하던 그는 어째서 국가 체제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오랜 수용소 생활까지 겪어야 했을까?
그 중심에는 1924년부터 1953년까지 무려 29년을 소비에트 연방의 실권자이자 독재자로 군림한 스탈린, 그리고 편지 한 통이 있었다.
오랜 세월, 권력의 정점에서 공포로 나라를 다스린 스탈린.
조국을 사랑했기에 그는 독재체제하에 멍들어가는 조국의 모습, 신음하는 수많은 이들의 얼굴을 외면할 수 없었으리라.
나라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기에 기꺼이 독립을 외치고, 자유를 외치며 스러졌던 역사 속 수많은 이들처럼 그 또한 기꺼이 고난과 고통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군 복무 중 친구에게 보낸 스탈린의 독재와 정치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 한 통.
그 편지는 그를 무려 10년간의 수용소 생활로 내몰게 된다.
2. 펜으로 이야기한 자유와 신념
철조망과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던 수용소.
세상과, 그리고 자유와 동떨어져있었던 그곳.
일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는 그곳의 수용자들이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아마도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는 제대로 된 생활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세상에 나간다 하더라도 다시 적응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 두려움 속에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수용소를 벗어나고자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수용소 생활에 잠식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서 솔제니친이 그려낸 수많은 수용자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살을 에이는 시베리아의 바람과 끝없는 노동의 고통, 그 끝없고도 가장 원초적인 괴로움을 견뎌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고통과 두려움의 시간을 솔제니친은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수용소군도> 등의 작품에 오롯에 녹여낸다.
10년이라는 고된 시간 끝에 새로운 삶을 맞이하며 그가 써 내려간 글은 어쩌면 지난 고통을 치유하는 그만의 방식이자, 신념과 자유를 향한 용기의 결정체가 아니었을까.
많은 예술가들의 삶을 살펴보면, 그들은 자신의 삶에 다가온 큰 변곡점을 작품에 투영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작품은 그 자신에게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시공간을 뛰어넘어 수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삶의 시각과 의미를 통찰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작품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어찌 보면 단순히 수용소 생활과, 그 생활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10년간 자신을 짓누른 엄혹한 시간의 잔상을 되새기며 작품을 써 내려갔을 작가의 마음, 그리고 작품을 통해 자신이 고통 속에서도 품고 있던 자유와 신념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의지를 생각한다면 작품은 단순한 글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삶을, 그 삶의 고통마저도 오롯이 투영한다는 것.
더불어 그 작품이 꺾이지 않는 신념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한 편의 글을 통해 한 사람이 삶에서 마주친 파고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파고는 지나간 후에는 추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또 어떠한 파고는 시간이 흐르더라도 생생한 고통으로 남아 외면하고 싶기도 하다.
외면하고 싶은 그 파고의 시간을, 자신의 신념을 기꺼이 쏟아부을 용기를 가진 작가.
삶과 글로 자유에 대한 신념을 오롯이 보여준 그에게 한 사람의 문학가에 대한 존경, 그리고 한 사람의 인간이 겪었을 고통에 대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
3. 꺾이고, 버텨내고,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들
“1961년까지 나는 내 평생 내가 쓴 단 한 줄의 글도 인쇄해서는 안 되는 것을 확신했을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알려질까 봐 두려워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내가 쓴 글을 보여주지 않았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그의 글에 대해 남긴 이야기이다.
그가 글을 쓰고, 그 글을 세상에 내보이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는지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두려움 속에서도 그는 그가 겪은 수용소에서의 참상과 고통받는 조국의 모습을 적어 내려갔고,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그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러나 소련 정부와 소련작가동맹은 노벨상 수상과 추방 사이의 가혹한 선택을 강요한다.
문학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노벨 문학상 수상의 기쁨 또한 그는 마음껏 누리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의 글을 마음껏 보여주지도, 최고의 영예를 누릴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시간들은 어쩌면 그에게 수용소 생활만큼이나 가혹하고도 두려운 시간이지 않았을까.
이처럼 때로는 두려웠을 수많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용소 군도>라는 작품으로 또다시 자국이 벌인 참상을 이야기한다.
원고를 지키기 위해 밀반출까지 감수하며 쓰인 <수용소 군도>는 서방에 그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되고, 솔제니친을 결국 서독으로 추방당하게 된다.
이후 솔제니친은 서독에서 스위스로, 그리고 미국으로 이동하며 기약 없는 타지 생활을 하게 되고, 그의 고단한 여정은 1991년 소련 붕괴 후 1994년 러시아로 돌아오며 끝을 맺게 된다.
수용소 생활, 이후에도 이어진 불안정환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신념과 자유를 이야기했고, 이를 위해 수없이 용기를 냈다.
이후 그가 세상을 떠난 2008년, 러시아 언론은 솔체니친의 죽음을 두고 "러시아를 대표하는 양심 중 1명이었으며, 조국 러시아를 향한 긴 발걸음이 이제 멈추게 됐다."라고 애도했다고 한다.
죽어서는 러시아의 양심으로 남았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겪었을 번민과 고통은 쉽게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삶은 그 강도와 생생함이 덜하기 마련이다.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과 삶을 지나 보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글을 통해서라면 우리는 그가 투영하는 삶의 모습 -행복과 번뇌, 그리고 고통까지도- 을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다.
작품이 오랜 시간 읽히고 인정받는 이유 중에는 그 작품이 전해주는 '시대정신'과 '삶'의 생생함이 있지 않을까.
솔제니친 또한 그가 생각하는 시대정신과 그의 삶 전부를 작품에 담아내었기에 수많은 이들의 마음에 남아있는 것이리라.
그의 삶, 그의 작품은 이야기한다.
자유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신념을 지키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이 세상은 용기 있는 자들로 인해 조금 더 나아간다고.
괜찮겠냐는 누군가의 한 마디,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나의 진심과 신념을 접어두곤 하던 시간들.
또 삶을 벼랑으로 내모는 두려움과 고통에도 담대히 맞서며 자유와 신념의 용기를 굽히지 않은 또 다른 이들의 시간들을 함께 떠올려본다.
그리고 묻는다.
'내가 지나온 시간은 과연 스스로의 양심과 신념 앞에 부끄럽지 않은 시간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