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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Oct 20. 2023

입에 쓴 약이 모두에게 좋습니다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건만


서울 지방청 소속의 한 과에서 일하기로 했지만 현 소속이 중부청에 남겨져 있어 서울청으로의 전입이 어려워졌다. 결국 세무서 단계에서의 이동만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지방청 인사가 끝나면 세무서 인사가 시작된다). 그 시기 마침 신랑이 남쪽으로 발령 나면서 아기와 함께 남쪽으로 가게 되었다.


주체적인 삶은 개뿔. 주어지는 삶이라도 제대로 살아야지.  


어이없는 실수로 남편을 따라가며 이번에는 제대로 남편을 원망했다.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해도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그 사람 밖에 없었다. 본인이 한 것은 오로지 결혼한 것 밖에 없을(없다고 생각할) 그는 또다시 영문도 모른 채 원망을 들어야 했다. 신생아를 키워야 했으니, 비논리적인 원망을 참고 들어줄 정도로 인생에 여유가 많은 때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간 세무서였다. 게다가 발령 난 과는 컨테이너 별관에 있었다. 출산휴가 중 발령이라 서장님과 직원들께 발령인사만 하고 올 계획이었다. 퉁퉁 불은 몸을 이끌고 (찬바람 쐬면 통풍으로 평생 고생한다던데) 세무서를 들렀다. 마침 직원들 전입 발령이 있어 내일 인사배치를 한다고 한다. 감사하게도 서장님께서는 인사배치날 과장을 직무 대리할 차석이 참석하기로 했다고 걱정 말고 잘 쉬라고 하셨다.


출산휴가가 끝나면 일하게 될 컨테이너 박스에 갔다. 얼굴이 검게 그으른 차장님을 뵙고 반갑게 인사드리려는 때 툭 말씀하셨다.


'내일 인사배치 날인데 과장님이 나오실 수 없을까예?'

'마.. 제가 하기로 했는데 제가 가면 아무래도 우리 과 인사배치할 때 좀 밀린다 아입니꺼'


고민해보겠다고 말씀드렸지만 1) 서장님께서 오지 말라고 하셨는데  2) 몸상태를 아시면서도 (출산해보지 않은 분들은 정말 알기 어려운 상태이긴 하지만) 3) 처음 뵙자마자 말씀하시니 힘든 마음을 왔다갔다했다. 밤새 뒤척였다(보나 마나 잘 잤겠지만). 고민된다면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나으므로 길을 나서기로 했다. (어려서 몸이 약해 건강에 엄청난 주의를 기울였던 나로서는 나름 평생 통풍으로 고생할 두려움을 무릅쓴.. 전쟁 중 고심 끝에 내린 결정과 같았다;)


몸을 꽁꽁 싸매고 대망의 인사배치를 하러 갔다. 한두 시간이면 될 줄 알았다. 직원들의 인사소표가 이 과, 저 과 옮겨 다니며 순간순간 서장실에 모인 분들의 얼굴색이 변했다. 서울과 경기권에 있다 넘어온 내가 이 지역 사정을 알리 없으므로 차장님이 컨테이너 박스에서 서장실로 수시로 넘어와 건네주는 비밀쪽지(꼭 붙잡아 와야 하는 인물들과 절대로 오면 안 되는 몇몇의 인물이 담긴)를 움켜쥐고 있었다.


쪽지 안 인물들이 넘어갈 때면 잠깐 일어났다 앉기를 몇 차례. 그렇게 자정이 가까워오는 순간 어떤 소표가 우리 과로 들어왔다. 젊은 마음에 이 정도는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하셨을 수 있으나, 그것은 내 사정이었다. 나와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은 무슨 잘못인가. 열악한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이제나 저제나 어떻게 배치가 끝날까 기다리며, 그것도 출산휴가라 한동안 자리를 비운다는 과장과 함께 일해야 하는 직원들은 잘못이 없지 않은가.


'서장님, 제가 경험도 미천한 데다 이제 휴가를 갔다 몇주를 넘겨야 나오게 됩니다. 과장도 없이 직원들이 일해야하는 상황을 배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컨테이너에서 일하는 환경도 열악한데 인사배치까지 신경 써주지 않으시면 사기가 저하되어 서장님 서운영이 어려워지지나 않을지 우려됩니다.'(라고 얘기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일어서서 '서장님.. 그건 좀..' 이 정도가 다였을 가능성이 높다.)


어찌 됐든 직원배치는 선방하며 끝났다.




자정을 넘기고 우리 과 직원들과 자축하며 퇴근했다. 그리고 며칠을 몸살을 앓았다. 비타민씨 10알을 먹고 잔 덕분인지 통풍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나오길 바라던 차장님의 투박한 진심이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하게 다가왔다. 다른 모든 부수적인 것들은 조용히 가라앉고. 마음 깊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가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는가.


그때부터다. 어려워도 해야 할 이야기, 들어야 할 이야기를 정중하게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감사하고 반가운 것이. 본인만 생각하면 굳이 힘들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우리라는 공동체가 마음에 있어야 가능하다. 당장은 소화하기 어려워도 그것이 모두에게 좋다. 나에게 좋다. 우리에게 좋다.


하지만 당장에 부유하던 것들이 가라앉고 중요한 것들만 남게 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세월을 감내할 정도의 책임과 마음이 있어야 미움과 오해받을 위험(또는 평생 풀어지지 않을 위험)을 무릅쓰게 된다.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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