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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 Oct 21. 2023

이제는 내가 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다시 한번. 인생은 어디서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떻게 풀릴지 모른다.



당시 지방청 보직 경험이 부족한 나(행정고시 특성상 결국 본청에서 세무 현장을 지휘하는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세무서와 지방청 현장을 알아야 한다. 국민들이 국세청을 만나는 곳은 결국 현장이므로)를 걱정해 주신 지방 청장님께서 서울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추천해 주셨다. (시골 작은 세무서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지방청장님을 뵐 수 있었고, 결혼과 출산으로 업무경험을 쌓지 못하고 있는 자원을 지방청으로 추천해 주시는 감사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정말 예상하기 힘든 선물 같은 일이지 않은가)


굴지의 대기업을 조사하는 곳으로 발령이 났다. 당시 해당 국은 인사를 앞두고 조직확장 중이었다. 예상보다 많은 결원이 있었고, 운 좋게 전입할 수 있었지만 청장님도 놀라셨다(추천은 했지만 이곳에 정말 갈 줄이야. 그 당시 조사국에는 행정고시 출신들이 많지 않았다. 국세청에 여성이 많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 것처럼 조사국에 행정고시 출신들이 많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어린 세무서 과장이 갑자기 한양으로 급 상경 하게 되다니. 남편 덕이라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뭘 해도 남편으로 인해 인생이 꼬이는 것 같아 울화통이 쌓이는 때였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정작 발령인사를 간 날 국장님께서는 남편과 관련해서 적합한 자원인지 고민했다고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런 것이 문제가 되고 저렇게 생각하면 저런 것이 문제가 된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많지 않았다. 한동안은 모든 것이 억울했다. 겨우 남편과 분리되었다 했더니 그것 조차도 남편 덕이라니.  


처음에는 붙잡고 하나하나 설명을 했다. 설명할 기회가 주어지면 말이다. 그 기회마저도 주어지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나는 이렇게 변화가 많은 상황에서 나로 살아남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살아가는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도움이라곤 되지 못하면서 힘들게만 하는 존재. 내 노력과 이름을 앗아가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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