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 Oct 22. 2023

그저 최선을 다해 걷습니다

그것이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이 남자와 헤어지지 않는 한,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있는 한, 벗어날 수 없다.


정말 한 톨만큼도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바라던 대로 유부녀가 되었고, 가족 구성원이 생겼다. 내가 바라든 바라지 않았든, 인지하고 있든 인지하지 않았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혜택을 본 부분도 분명 있을 터였다.


여자로 태어나서, 또는 남자로 태어나서, 이 지역에 태어나서, 이 가정에 태어나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구조적 혜택 또는 불이익이 분명 있다.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이상 완전 무결하게 오롯이 혼자서 일군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개인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고고하게 이뤄낸 것이라고 그렇게까지 안달복달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주어진 것이 무엇이었든, 어떤 이유로 주어졌든,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가야 할 길을 성실히 가는 것뿐이다. 기회를 준 분에게 죄송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기회로 그 기회를 잃은 분에게 죄송하지 않는 방법은.


그래서 또 내가 가진 특성ㅡ성별, 나이, 입직경로 등ㅡ으로 인해 대표성을 갖게 된 후배들에게 그 기회의 문이 닫히지 않게 하는 길은 그저 마음을 다해 걷는 수밖에 없다. (지금은 조사국에 젊은 행정고시 출신들도 많이 근무하고 있다. 다양한 입직경로의 자원이 근무하며 섞이고 더 나아지는 것. 그것으로 나름 그 당시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마음이 좋다.)



그렇다 해도 누가 뭐라 해도 남편 덕이라고 하지 못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당시 내 마음에는. 스스로에게도 그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이전 13화 이제는 내가 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