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는 일을 바라보며 힘들어 하기보다는
첫 오리엔테이션날.
오십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한 강의실에 모였다. 약 과반을 차지하는 미국인과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이 친구들이 앞으로 2년 동안 대학원 생활을 함께 할 같은 그룹 원우들이었다. 서로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각자 자리 앞에 꽂아 두고 이름이 호명되면 발표를 하는 수업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매 수업시간 발표 점수를 매기는 조교가 따로 있는.
각자에 대해서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 학교에서 공부하는지 궁금했었다.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외교관, 공무원, 전역군인,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다 온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영어라고는 한국식 영어 교육만 받으며 영어학원을 다녔던 내게 (단기 방문학생 시절보다는 나아졌다고 할지언정) 그들의 고급영어와 정치경제 주제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몇 시간 동안 따라가자니 정신없었다.
기숙사 방에 돌아와서야 잘 잡아매고 있던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었다. 창문 앞 수납형 벤치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 세계에서 온 원우들 이름과 하던 일들, 학교 생활에 대해서 정신을 곤두세우고 듣다 탈진할 것만 같다.
가족도 없이 어떻게 이 생활을 지속할지 막막함 속에 이 학교 나이만큼 오래되어 검게 익은 나무의자에 입은 옷 그대로 선크림 비비크림 화장 그대로 (선크림은 꼭 지워야 하는데) 드러누웠다.
너무 오래 누워있어 허리가 아파 눈을 떠야 하지 않을까 하다 또 들이닥칠 현실에 대한 고민이 두려워 눈을 뜨지 않기로 선택하기를 몇 번 반복하다 온몸이 얻어맞은 것 같이 아픈 지경에 이르러 일어나 앉았다. 충전율 1%(그때나 지금이나 허기진 내 폰)의 휴대폰은 이미 이틀이 지난 일요일이었다. 벌써 주말이 끝나고 학교 갈 시간이 되었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나를 안도시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세상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없다고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니었다. 가족이 있는 한국 역시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 터였다.
지금 당장 혼자서 바꿀 수 없는 것에 후회하며 매달리기 보다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과 함께하는 사람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것이 망망대해에 침전하던 내게 던져진 통나무 한 자루였다. 혹시나 힘이 한쪽으로 쏠려 떨어질세라 그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힘든 시기를 위태위태 건너갈 수 있게 해 준.
영화 속에서만 보던 학교에서, 궁금해마지않던 전 세계에서 모인 멋진 사람들을 만났지만,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눈에 아른거린다는 말을 아는가. 잠깐 정신을 놓고 있으면 아이가 눈에 아른거렸다(지금 저기 배를 드러내고 소파에 누워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허공에 춤사위를 보이는 저 아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이가 맞는지)
죄책감 역시 늘 곁을 서성이고 있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밤이 되면 갖은 생각에 잠들기가 어려워 미국에서 시중 판매가 허용된다는 성장 호르몬 일종인 멜라토닌ㅡ승무원 시차적응 필수품이라는 수면유도 호르몬ㅡ을 월마트에서 사 먹었다. 효과는 꽤 좋았다. 계속된 그리움과 자책으로 멜라토닌 없이 잠들기 어려운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