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치영 Oct 21. 2023

그렇게 믿기로 합니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법정스님이 우리 학교에 오셨다.


미국 강연 투어 중이라고 하셨다. 큰 강당이 꽉 메워졌다. 한참 강연이 진행되고 드디어 묻고 답하는 시간이 되었다. 법정스님 강연은 녹화되어 유튜브에 올라오기도 하는데, 주목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던 내(내 초상권은 소중하니까)가 그날 손을 번쩍 들었던 것은 살기 위해서였다.


혼자서 끙끙 앓고 지내다가는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유학온 친구들에게 한정 없이 기대기에는 그들도 나름 힘든 하루를 버티고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이기적일 수는 없었다.


"아이를 한국에 두고 왔습니다. 아이가 보고 싶고, 여기서 혼자 뭐 하는 것인가 죄책감이 들어서 힘듭니다."


스님: 그렇게 걱정되면, 돌아가세요.


"국가 프로그램을 통해서 들어온 것이라, 제가 돌아가면 기관에 미치는 영향이 있어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스님: 아이는 누가 봐주세요?


"친정부모님께서 주중에 봐주시고 남편이 주말에 친정에 내려가 아이를 봅니다."


스님: 아이는 잘 지내요?


"네, 아이는 매일 통화하는데 잘 웃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생각하시던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아기가 엄마 같고, 엄마가 아기 같네. 아기가 잘 지내고 있으면 된 것 아닙니까. 엄마도 여기서 잘 지내고 돌아가면 되지. 보고 싶네 마네 징징 짜면 뭐가 바뀌나요. 아기가 잘 지내고 있다니, 엄마도 아이처럼, 잘 지내요."


통나무 한 자루에 의지해 떠있다 잠겼다 하며 간신히 숨을 쉬고 있던 중에 스님이 던져주신 조각배가 동동 떠왔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배 위에 올라탔다.


주변에 친구들이 몰려와 위로했다. '스님 참 너무하신다. 어떻게 말을 그렇게 아프게 하실 수 있어..' 이런 위로였다. 실은 스님이 내리친 죽도가 깜짝 놀랄 정도로 시원했다. 그날 이후로 멜라토닌 없이 잠들 수 있었다.


아기가 엄마 같고, 엄마가 아기 같네.
아기가 잘 지내고 있다니 엄마만 잘 지내면 되겠네






나의 부재가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우리의 결정으로 딸 인생이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죄책감이 힘들게 했다. 많은 미디어에서는 생후 3년 동안 아이 인격이 형성되고, 엄마가 대부분의 책임을 진다고 했다.


아직 결정도 되지 않았던 아이 인생이 나로 인해 이미 다 망가진 것처럼 절망적인 말들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아이는 잘 크고 있었다(한 살짜리 아이가 엄마 마음 편하라고 웃어 보이는 거짓 웃음일 수도 있을까? 그렇다 해도 아이가 잘 크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그것이면 됐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대신 내 눈앞에서 웃고 있는 아이를 믿기로 했다.

내 마음만 잘 다스리면 된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 시절을 지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시기 나를 두고 새로운 이름표가 붙었다. 아이도 두고 남편도 두고 가다니

독한데 (근성 있다고 해주시면 안 되나요)

ㅎㅎㅎ


풀썩


미혼으로 좋은 발령지에 배치받으면.. ‘무슨 수를 썼길래..’


그렇게 보일 수 있죠.. 유부녀가 되어 아이도 낳고 가정을 꾸리니.. ‘회사에 책임을 다 안 하는 것 같은데..’


그랬죠.. 지방청에 들어가 열심히 일하려 하니.. 남편 덕이지’


그럴 수 있겠네요.. 그럼.. 공정하게 시험으로 유학을 다녀오는 건 어떠세요.. ‘독하신데요’





뭐 어쩌라는 거야 정말

누가 좀 가르쳐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