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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우석 Feb 27. 2020

동기 부여와 동기 감퇴의 트리거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때 필요한 것

훗날 우리는 지금을 어떻게 기억할까, 2020년 2월, 바이러스는 어떤 기준으로도 차별하지 않기에 도시는, 아니 국가는 많이 위축되어 있다. 각급 법원의 재판 일정도 모두 밀려 본의 아니게 기존의 스케줄이 모두 취소된 상황에서, 나는 강제로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혹자는 재택근무를 시작하였다 하고, 혹자는 강제적으로 연차를 소진해야만 한단다. 코로나19가 전역을 강타한 까닭이다.


우리는 항상 휴식을 갈구하지만, 그건 우리가 휴식을 선택할 수 있을 때 그런 것이다. 이렇게 우울한 분위기에서 강제로 쉬라고 하면 룰루랄라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어찌 되었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삶에 어떤 방식으로 동기를 부여해야 하나.


개인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여부를 차치하고, '동기 부여' 전문 강사라는 직업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동기 부여가 중요하다 믿는다. 동기 부여는 중요하지,  결국은 동기가 없으면 결과물을 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대개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결과가 중요하다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항상 동기 부여가 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만들고 그걸 소비하는데 익숙한 사람이다. 굳이 외부의 어떤 자극을 찾지 않더라도, 항상 하고 싶은 게 있고, 해내야 하기 때문에 실행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유니크 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다만, 에너지 총량의 법칙에 따라 그 에너지 레벨이 결국은 남들보다 빠르게 떨어진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반면, 나와 같은 범인들은 사실 동기 부여의 트리거가 필요하다. 그 트리거는 유형별로 다양하고 상황마다 달라진다. 책임감일 수도 있고, 가족이거나 애인일 수도 있으며, 아주 높은 확률로 돈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어떤 동기 부여의 트리거에 민감한가, 그걸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꽤나 유용하다.


동기 부여의 대상이 거창할 필요도, 트리거도 대단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면 훨씬 가볍게 다가올 것이다. 나는 운전할 때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차는 막힐 수도 있고, 갑자기 졸음이 올 수도 집중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사고는 텐션이 떨어졌을 때 발생한다. 운동도 유사하다. 플랭크를 한 5분 하고 싶은데 동기 부여가 없으면 나는 주저앉고 말 테다. 내 코어 근육도 함께 무너질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지? 나는 그래서 동기 부여의 트리거로 몇 가지 음악을 선정해왔다. 클래식하게 <Going the distance>를 틀기도 하고, 바비의 <연결고리X힙합>은 꽤 오랜 시간 이 리스트의 상단에 위치했다. 지디/태양의 <Good Boy>를 거쳐, (여자)아이들의 <Lion>까지 아이돌도 가리지 않았다. 이런 음악 리스트를 몇 개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14년 무사고 운전자'와 '운동 잘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해야 할 때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지 말아야 할 때, 무조건 다 놓아야 할 때는 또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이를테면 동기 감퇴다. 자면서 꿈자리가 사나우면 다음날 하루 종일 피로하듯이, 우리는 우리 안의 동기라는 스위치를 잠시 끄고 무조건 적인 휴식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 반드시 온다.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잠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기 위하여 머리를 비워야 할 때. 그때도 과연 우리는 최선을 다해 동기 감퇴를 위해 노력하고 있나, 그 트리거를 찾아내고 잘 이용하고 있는가.


NBA 선수들을 직접 보면, 일종의 위화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농구를 하기 위해 어딘가에서 특별하게 만들어진 기계 같다. 스포츠 사이언스의 결정체인 그들은 크고 길고 두껍기 그지없는데 누구보다 높이 뛰고 누구보다 빠르다. 그래서 뭔가 다른 세계의 생명체(?)들이 보여주는 농구 쇼를 관람하는 것 같다. 그런 수준의 선수들에게도 NBA는 연속 경기를 많이 배치하지 않는다. 백투백 경기에서 많은 스타 선수들은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동기 감퇴는 동기 부여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우한이라는 곳에서 넘어온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 따위에, 그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사회의 불편한 공기 - 마스크, 불신, 강제 연차 소진 -를 트리거 삼아 동기를 감퇴한다. 이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지금이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할 때라면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방식으로 다시금 동기를 감퇴시킬 필요가 있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보이는 고양이의 자세', 우리의 동기 감퇴 트리거가 이런 것이라면 세상은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사실 세상이 행복해질 필요는 없지, 우리가 행복해질 것이다. 모두의 양 손에, 그들 자신이 선택한 동기 부여와 동기 감퇴의 트리거가 한쪽씩 쥐어진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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