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우석 Mar 10. 2020

습관 형성 이론의 비밀

2020, 나의 운동 달력에서 알게 된 것

작년 말인지 올 초인지 모르겠는데 동생은 본인이 조만간 홈 트레이닝을 하겠다며, 딱 21일간 연속으로 해본다는 말을 덧붙인 적이 있다. 왜 21일인고 하니 그 이후로는 습관이 형성되어 억지로 하지 않아도 알아서 몸이 기존의 루틴을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이 이론이 맞는 것인지 찾아보았지만 성형외과 의사 맥스웰 몰츠의 가설로 추정된다는 것 외에는 사실 따로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 추정은 아마 손이나 발이 절단된 환자가 신체 일부를 잃었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는데 걸리는 시간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하나 이 또한 레퍼런스가 명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해 초, 여러 동네 헬스장을 기웃거리던 내가 결국 '홈 트레이닝'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나서는 이 이론에 맞게 진행을 해보려는 의지가 생기게 된다. 내가 직접 습관 형성의 비밀에 대하여 실험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나의 운동 달력은 2020년 1월 8일부터 시작되었다.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10일까지 약 두 달이 지났다. 운동 달력의 1월에는 총 2회, 2월에는 총 4회만 제외하고는 매일 홈 트레이닝을 했다. 루틴도 거의 유사했다. 프로그램을 일정하게 정하고 순서도 일치하도록 세팅했다. 간혹 몸이 아픈 정도에 따라 스트레칭을 먼저 하는지 나중에 하는지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었다.  


몸 상태는 계속 좋아졌다. 기본적으로 나의 근력 운동이라는 것이 상하체 밸런스를 잡아서 궁극적으로는 주말에 하는 농구 퍼포먼스를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는지라, 아주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운동 자체도 할 때는 꽤 재밌고, 집약적인 프로그램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거나 비효율적이라는 느낌도 전혀 없었다.


몇 차례 구멍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지방으로 출장을 가거나 업무 때문에 너무 늦은 귀가를 하는 경우 등, 핑계가 아닌가 하면 그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름 떳떳하게 자부심을 가지고 달력에 표시를 해왔다. 다소 의아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습관으로 형성되는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운동은 할 때는 재밌지만 하기 전에는 너무 하기 싫은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시계를 보고 30분만 더 쉬고 해야지 왕좌의 게임 한 편만 보고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몇 시간을 흘려보낸 적도 있다(그래도 하기는 했다).


코로나 사태는, 농구 모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2월 이후 거의 모는 체육관은 문을 닫은 상태고 기존에 대관했던 체육관도 취소가 다반사였다. 농구라는 목표가 없어지니까 운동은 더 하기 싫었다. 3월 첫 주에는 갑자기 허리 통증이 생겼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해도 할 수 없지만 진짜 아팠다. 코어 운동과 스트레칭을 두 달이나 거의 매일 했는데 왜지? 하면서 어쨌든 며칠 운동을 쉬게 된다.


하는 건 어렵지만 쉬니까 걷잡을 수 없이 쉬게 되었다. 쉬는 것은 너무 좋았다. 결국 나는 습관 형성에 실패한 것이다. 21일이라니,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닌가.


3월의 운동 달력이 초라하지만 그래도 뭔가 배에 살이 붙는 느낌이 싫어 운동 달력을 다시 채우고자 하며 지난 1월과 2월을 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위화감이 들었다. 동그라미를 세보니까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껏 21일을 연속으로 운동해 본 적 조차 없었던 것이다.


현실과 타협하며 중간의 펑크 난 날들은 모두 운동을 21일 이상 지속하기 전에 발생했다. 21일은커녕 최장 연속 운동일은 12일이었다. 그 이론이 맞다면, 나는 아직 검증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셈이 된다.


하지만 나는 아마도, '억지로',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21일'이나 연속으로 지속할 수 없기에 그런 이론이 나온 건 아닌가 생각한다. 금전적인 보상도 정신적인 압박이나 책임감도 없이 해내야 하는 일이다. 오직 '하나의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스즈키 이치로는 은퇴한 다음날도 자택의 웨이트룸에서 스트레칭을 포함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치로는 이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 걸까, 나는 이치로가 그렇게 운동하는 거 자체를 엄청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곁을 떠났지만 코비도 그랬다. 하지만 코비는 은퇴하고 이제는 아무거나 맛있는 거 먹을 수 있어서 좋겠다고도 말했다. 식단 조절을 21일이 아니라 21년 가까이 했던 사람인데 말이다. 운동선수들이 은퇴와 동시에 소중히 지켜왔던 루틴을 버리는 모습을 보니, 이 확신은 커지다 못해 맹신이 된다.


내 운동 달력은 앞으로도 많은 동그라미로 채워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홈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저절로 하게 되는 습관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지는 않는다. 아마도 계속하기 싫어하는 나 자신과 싸워가면서 해나가게 될 것이다. 애초에 싫어하는 일을 의지만 가지고 '습관'으로 만들기라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2020년 운동 달력을 통해 내가 알아낸 습관 형성 이론의 비밀이다. 어쩔 수 없이 21일을 연속으로 해야 한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요컨대, 아마 당신에게 어떤 '습관'이 있다면, 아마도 좋아하는 일이거나,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일 테다. 본인이 21일 간 연속으로 그 습관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 아니라.




 







이전 04화 동기 부여와 동기 감퇴의 트리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