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우석 Jan 26. 2020

상대적으로 절대적인 것 찾기

자기 객관화의 출발

책을 많이 읽던 시절에 나의 책 선정 기준은 '작가'였다. 어떤 작가의 글이 좋았으면 계속 그 작가의 책을 찾아 읽는 것이다. 작가마다 좋아하는 포인트는 달랐다. 누구는 문체가, 누구는 구성이, 누구는 소재가, 누구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런 점에서 아이디어의 대가였다. 그 문체는 딱히 특출 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어차피 번역본을 봤지만), 아이디어는 항상 감탄스러웠다.


추후 '상상력 사전'이라는 보완된 버전이 나왔지만,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단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르베르의 책이었다. 이 책은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것이 이를테면 작가의 잡다한 지식과 단출한 생각을 기록한 메모지를, 책으로 엮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타이틀이었다. 지식의 앞에 붙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이라는 수사는 꽤 큰 울림으로 지금껏 영향을 준다.


나는 자기소개서 첨삭을 무척 많이 했다. 알음알음 부탁으로도 했고, 돈을 받고 업으로도 한 적 있으며, 지금도 기회가 닿으면 종종 사람들을 도와준다. 내가 생각하는 자기소개서 작성의 총론은 나중에 한 번 글로 정리할까 하는데, 어쨌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우선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상대적으로 절대적인 것'을 찾는 작업이다.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절대적인' 것이다. 이는 인터넷에 잊을만하면 올라오는 '상대성 떡대론'과 비슷하다. 우리 영화계에서 대체재가 거의 없는 마동석의 떡대는 오승환에게 미치지 못하고 오승환은 이대호에게, 이대호는 현주엽에게, 현주엽은 서장훈에게, 서장훈은 샤킬 오닐에게, 샤킬 오닐은 결국 야오밍에게 미치지 못하는 사진들이 연이어 올라온다.


그러면 마동석은 절대적인 떡대를 가졌다고 하면 틀린 이야기가 되고 야오밍만 절대적으로 거대한 사람인 걸까, 그건 또 그렇지가 않다. 그보다 더한 거인은 존재했고 존재할 수도 있으니까. 요컨대 마동석은 '상대적으로 절대적인' 거대 떡대를 가진 배우로, 그 장점을 활용하여 자신의 커리어에 잘 이용하고 있는 영리한 사람이다.


이 이론은 경제를 배울 때 언급되었던 비교우위론과도 유사하다. 국가 사이에 체급 차이가 큰데도 무역이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절대 우위'와 '비교우위' 이론은, 우리 내부의 어떤 것을 찾기 위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것 중에는 분명히 '상대적으로 절대적인 것'이 존재함에도, 대개는 이것을 찾기 이전에 외부 환경에 나를 던져놓고 난도질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본인은 자꾸 작아지고 무의미한 존재가 되며, '자기애'는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사진에서나 발견될, 실재하지 않는 이론이 되어버린다.


스테판 커리가 나타나기 전에는 포스트업이든 드라이브인이든 일단 공을 인사이드로 투입하고, 거기서 다시 아웃사이드로 나오는 공을 슈팅으로 연결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심지어 스테프도 그렇게 받아 던질 때 더 잘 넣는다. '인사이드 아웃', 이 쉽디 쉬운 농구 이론은 우리의 '자기 객관화' 방법에 그대로 투영되어도 무방하다.


그래서 비교는 내부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 마음의 소리를 통해 내가 가진 '상대적으로 절대적인 것'을 찾고 나면 외부와의 비교는 사실 크게 의미가 없다. 어차피 내가 팔아야 하는 물건은 정해진 셈이니 이제 그걸 갈고닦으면 될 일이다. 이제 '자기애'는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사진으로부터 나와 나의 자기 계발 욕구가 되고, 결국엔 '자존감'으로 치환된다.   


말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건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글은 그보다 훨씬 어려서부터 계속 잘 썼다. 그렇다고 내가 말을 가장 잘하고 글을 가장 잘 쓰지는 않았으며, 않을 테지만 어쨌든 그랬다. 다른 재주도 많았지만 탤런트가 많으면 어중간한 트위너가 될 뿐이라는 사실을, 오랜 NBA 시청을 통해 알고 있었던 나는 다재다능함을 거세해왔다. 대신 그 반대급부로, 꾸준히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무한대의 자부심을 가졌다.


내게는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말하기와 글쓰기였던 거고, 이제와서는 변호사가 되었으니 정말 너에게 잘 맞는, 적합한 직업을 갖게 되지 않았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말해준다. 그게 변호사 직업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직업과는 무관하게 나는 일찍이 내가 가진 상자에서 그것들을 찾고 꺼냈다.


출발은 '상대적으로 절대적인 것'을 찾는 데 있었다.

여전히 나는 내가 쓰는 글은 특별하다 믿고, 내가 하는 말은 즐겁다고 확신한다.





이전 02화 월요일의 공포는 어디서 오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