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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우석 Jan 13. 2020

월요일의 공포는 어디서 오는가

어김없이 월요일은 와버렸다.


일주일 중에 가장 영향력이 큰 요일은 무엇일까, 경쟁을 붙여본다면 아마 월요일과 금요일이 투쟁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도 주 5일 근무제가 제대로 확립된 이후 금요일의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오버올로 월요일을 이겨낼 요일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나는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여간해서는 서울시내에서 차를 굴리려고 하지 않는다. 뻥 좀 보태면 걸어가는 게 빠르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는 차 안에서의 사투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서울의 금, 토는 재앙이다. 하지만 일요일은 다소 다르다. 누가 내 치즈를, 이 아니고 그 많던 차들을 옮겼을까, 싶을 정도로 도로의 차들이 급격히 줄어든다. 그래서 나는 차를 이용해야 하는 스케줄을 주로 일요일에 잡는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일요일의 자체의 특징이 아니고, 월요일의 위엄에서 기인한다. 월요일이 오고 있다는 공포가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더 이상 소모하지 말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요일 오후의 해가 지는 노을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우울감을 경험한다. 월요일은 사실 일요일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자명하다.


일을 다시 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이토록 거대한 '월요일의 공포'를 설명하지 못한다. 사실 송무 변호사를 기준으로 월요일은 대개의 경우 다소 한가한 요일이다. 재판이 많이 잡히는 요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와 같은 변호사들은 대개 화수목에 재판을 몰빵 하기 때문에, 그 요일에 서면 작업이 필요해지면(사실 서면 작업은 매일 한다) 시간의 안배에 실패하고 야근과 새벽 출근과 뭐 기타 좋지 못한 일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면 사실 월요일은 다소 여유 있게 '한 주의 업무를 준비하는 요일'이라고 볼 여지도 크다. 문제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학창 시절부터 답습된 '월요일의 공포'는 우리에게 '월요일은 무언가를 시작해야만 하는 날'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그래서 월요일 아침에는 의욕적으로 뭔가를 시작해야만 한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월요일 오전은 과잉 의욕과 과잉 업무, 과잉된 감정과 부딪치는 일이 잦다. 나의 경우에는 거의 모든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이 월요일 아침 9시 만을 기다리다가 나에게 전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소 해이해지는 금요일 오후와 노느라 바쁜 토요일을 지나, 예열의 일요일 저녁을 거쳐 모아진 모든 질문 에너지를 월요일 오전 9시에 뿜어내는 것이다(재밌는 건, 그래서 평소 거의 없는 매너콜이 월요일에 집중된다는 점).


그렇기에 일요일 저녁 즈음에 나는, 다음 날 오전에 받게 될, 수많은 전화에 대한 공포가 생기는 것이다. 사실 그 전화 중 대개는 월요일 오후나 아니면 그냥 화요일, 아니 그다음 주에 해도 무방한 것들이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나도 꽤 많은 사람들에게 '월요일의 공포'가 될 수밖에 없다. '내일은 천 변호사가 연락을 해오겠군, 월요일이니 말이야' 같은 개념으로 말이다.


일요일에도 학원에 다녔던 내가 돌아와서 숙제를 하면, 엄마는 슬그머니 과일 같은 것을 깎아서 방에 넣어주곤 했다. 그러면서 좀 쉬고 하라는 말을 했다. 학창 시절의 우리 엄마는 상당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했는데 그래서 나는, 학교든 학원이든 숙제를 놓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쉬고 하라는 말을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도 나도 월요일 아침을 위한 예열이 필요했던 거다. '월요일의 공포'는 그렇게 우리가 만들어냈고, 그래 놓고도 매번 우리가 싸우는, 고양이 꼬리잡기 같은 형태로 삶에 존재한다.


그리하여 오늘도 어김없이 공포의 월요일은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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