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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우석 Mar 11. 2020

스트레스의 효용 가치

고민을 안 해서 고민이 없으면 고민이 없겠다

스트레스에도 미덕이 있을까, 그걸 찾아보자 생각하고 열심히 스트레스를 받으며 좋은 점을 찾은지도 어언 3년 정도가 되었다. 변호사 3년 차 시절 극심한 스트레스에 길거리에서 혼잣말을 웅얼거리고 수면장애에 시달리던 본인을 발견한 바로 그때가 시작이었다. 결국 나는 장기 휴가를 내고 필리핀의 노을을 2주 정도 보고 나서야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무모한 시도는 '스트레스는 백해무익한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이를테면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더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백해무익한 것에서 미덕을 찾겠다는, 시적 허용 같은 이야기였다. 스트레스에 미덕 따위는 없었다.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찾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면 이걸 좀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나는 스트레스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것은 선천적인 문제, 그러니까 키가 작은 것과 유사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능력을 발전시켰다. 그건 스트레스로부터 도망가는 능력이었다. 낮은 드리블로 탈압박을 잘하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나는 꽤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며 살아왔다. 실제로는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것뿐이다.


'시험'이라는, 잘하지만 하기 싫은 것을 끝내고 필드에 나와서 직면한 무서운 점은 나의 이러한 능력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었다. 스트레스를 피하는 능력은 그걸 피할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에만 빛을 발했다. 그런데, 대개의 스트레스는 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된 거다. UFC 룰에 맞게, 케이지를 이용하는 훈련을 해왔는데 현실은 무한대의 공간, 무한대의 시간에서 무기까지 들고 싸우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심각했다. 스트레스 해결의 방법을 모르는 나로서는 그 상황을 회피하는 기술조차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망각'을 택했다. 선택적으로 기억을 지울 수 없으니 외부의 도움이 필요했다. 대부분 사용하는 걸 택했다. 술이었다.


술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었다. 마시는 순간과 마신 후 잠들기까지, 쿨쿨 자고 다음날 일어날 때까지를 커버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숙취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몇 년쯤 지속하자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었지만, 건강 자의식 과잉에 오래 사로잡혀 있던 나에게는 그 지속 기간이 너무 짧았던 게 충격이었다. 더 커다란 스트레스 상황으로, 나는 알아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동안 나는 조금씩 변했다. 스트레스 회피형 인간인 점은 본질적으로 비슷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최대한 직면하고자 한다. 술로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식도 포기했다. 다른 방식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절한, 그리고 철저한 휴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의 좋은 점 찾기도 계속되었다. 미덕이 없다는 것은 밝혀졌으니 이제 남은 것은 효용 가치다.    


좋은 점은 없지만,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듯이 스트레스에도 반드시 효용가치가 있을 것이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이 넓은 우주에 지적인 생명체가 지구의 인간뿐이라면 그건 엄청난 공간의 낭비'라는 문구처럼, 거의 모든 사람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라는 것에 효용성이 없다는 것은 가치의 낭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나는 몇 가지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1)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의 '금전'으로 치환된다. 엄청난 프레셔를 안고 사는 스타들은 단적인 예시이고, 우리의 일상에서도 그렇다. 스트레스의 크기는 대부분 연봉에 반영되고(물론 언제나 충분하지 않다), 그 반영된 부분과 스트레스의 크기를 저울질하여 그 차이가 너무 클 때 우리는 이직이든 휴직이든 결정하게 된다. 


2)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를 구하기 위해 애쓴다. 자기를 사랑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남으려 노력한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생존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같은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 그 불쌍한 나를 빨리 그곳으로부터 피신시켜야 한다. 그렇게 나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순간 정도의 효용을 얻을 수 있다.


3) 스트레스 상황이 해소되었을 때의 카타르시스. 이건 일종의 마약 같은 거다. 나는 아니지만, 이 느낌이 좋아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어쩌면 나도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르브론 제임스를 응원하면서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지만 2016년 우승 순간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계속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하다. 


4) 도망칠 수 있는 스트레스도 존재한다. 내가 선택하는 '인간관계'의 문제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인간관계 말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친구, 지인, 동일 커뮤니티의 공유자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그 관계를 정리하는 것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이 경우 우리는 유일하게 스트레스라는 거대한 존재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나는 이것부터 시도해보는 것이, 스트레스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중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조금 즉흥적으로 쓰였다. 왜 갑자기 이 주제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서,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에 대한 준비도 부족했다. 그래서 지금 글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를 모르는 점이 또 하나의 스트레스로 엄습한다. '고민을 안 해서 고민이 없다면 고민이 없겠다'는 명언은, 어차피 우리는 고민을 하게 되어있으니 받아들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스트레스를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도망을 쳐봤지만 결국 스트레스는 거대한 쳇바퀴와 같았다. 이제는 그 친구를 받아들이고, 그나마 좋은 점을 찾아 취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긴다.


어떤 형태로는 나는 이 글을 끝낼 것이다. 그러면 또 하나의 새로운 스트레스로부터는 해방되는 것이다. 재빨리 여기서 글을 줄여, 그 행복감을 빨리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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