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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우석 Jan 20. 2020

선택은 우리 몫이 아니야

너는 왜 변호사가 되었니? 에 대한 대답의 일부

넷플릭스와 왓챠, 유튜브 프리미엄을 모두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콘텐츠 선택에 상당히 보수적인 타입이다.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이주의 신작' 리스트를 막 뒤지다가도 결국 '예전에 재밌게 봤던 것'을 다시 보는 편을 선택한다. 본 걸 또 보고 쿨타임 지나면 다시 보고하니, 위 플랫폼들은 하나 같이 내가 봤던 걸 매번 추천 콘텐츠로 띄워준다. 그러면 나는 그걸 또 본다.


2020년 1월, 넷플릭스에서 <응답하라 1988>이 서비스된다는 소식은 그래서 반가웠다. 응답 시리즈 전편이 재밌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88을 가장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8화를 가장 좋아했고,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권지용도 좋아하는데 19880818로 8자가 많은 팔자). 97과 94를 생각하면, 정작 가장 먼 세대의 이야기 었음에도 계속 곱씹으며 봤던 기억이 난다.


각설하고, 몇 화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15화 정도로 추정되는 편에 덕선이가 아빠와 월드콘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대화는 처음에는 대학 이야기로 시작해서 결국 아빠는 딸에게 "그래서 우리 덕선이는 꿈이 뭐대?"라고 묻고, 덕선이는 "나는 꿈이 없어, 나 진짜 멍청이 같지" 라며 눈물을 흘린다. 꿈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책하게 되는 거다. 다른 애들은 다 하고 싶은 게 있다. 꿈이라고 하면 거창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고자 하는 길이 있는데, 덕선이는 그게 없는 게 속상했던 것이다. 원대한 꿈을 꾸라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 자신의 몫이라고, 어른들은 말하곤 했다. 지금의 어른들도 그리 말한다.


극 중에서 어린아이들의 장래희망 1순위는 과학자, 하지만 뉴스는 70년대의 장래희망 1순위는 공무원이었다고 말한다. 공무원이 장래희망인 시대, 어딘가 낯이 익지 않은가. 유행이 돌고 돌듯, 꿈은 돌고 도는 것일까. 어렸을 때 내 꿈은 '검사'였다. 장래희망 칸에 그 두 글자를 항상 적어 놓곤 했다. 변호사를 하고 있으니, 최소한 카테고리만큼은 꿈에 근접한 셈이다. 근데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면, 솔직히 나는 검사가 뭐하는 건지 잘 몰랐다. 생각해보니 축구선수가 하고 싶었다. 실제로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를 너무 잘해서, 인근 중학교의 코치가 우리 집에 오기도 했다. 엄마는 단칼에 거절했다. 단호했다. 부모님의 기준으로, 축구선수를 하기에 나는 성적이 너무도 뛰어났던 것이다. 나는 뭘 하는지 모르는데도 검사를 꿈으로 '선택'한 아이였다.


학업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특목고에 진학하고, 입시에 실패하고 수능을 여러 번 보면서 내 장래희망은-그게 검사든 축구선수든 농구선수든 간에- 희석됐다. 수능 점수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고, 실패하거나 경쟁하는 게 싫어 중간 어디쯤에서 즐거운 사람으로 살았다.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은 주변에 별로 없었다. 아니, 애초에 사람에게 하고 싶은 게 있는 건 당연한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어른들의 말과는 달리, 선택은 온전히 나의 몫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중에 좀 더 자세히 글을 적을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적당히 좋은 공기업에서 일을 하다가, 그 안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팀장님의, '이곳에는 너의 미래가 없으니, 아직 젊을 때 다른 공부를 하던지 해서 전문직을 노려봐라'라는 회식 자리 한마디에 전문직을 '선택'했다. 그 후에는 전문직 시험 중 내가 붙을 수 있는 시험이 무엇인지, 어떤 시험이 나의 공부 스타일에 부합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달을 고민했다. 실패율은 가장 낮아야 했다. 그리고 그 길이 바로 로스쿨 진학이라는 판단이 서자 나는 곧바로 로스쿨 입시를 '선택'했다. 로스쿨에서의 경쟁은 상상 이상이었다. 판사와 검사는 될 수 없겠구나, 그래서 빨리 포기했다. 남은 것은 변호사였다. 그래서 나는 변호사를 '선택'했다. 이후에도 나의 '선택'은 계속됐다.  이 모든 선택들을 온전히 내가 한 것으로 보기는 다소 이상하다.


지나고 보니, '선택'은 내가 하는 게 아니었다. 부모님, 형제, 친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영향, 사회적인 분위기, 내가 처한 그때그때의 환경들이 선택을 강요한다. 선택지는 생각보다 너무 적어서 내 역할은 그 안에서 재량을 발휘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다만,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 된다. 그래서 그 책임이 가끔은 다소 버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을 뿐인데, 선택했으니 책임을 져야 하는 셈이다.


꿈이 없어 눈물을 흘리는 덕선이에게 아빠는 아빠도 꿈이 없었다고, 꿈은 이제 가지면 된다고 격려한다. 하지만 성동일의 현재 꿈은 세명의 자녀가 건강하게 크는 것뿐이다. 그건 정말 아빠가 온전히 선택한 꿈일까, 아니면 선택해야만 하는 꿈일까, 애초에 꿈이긴 꿈인 것일까.


선택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 아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선택지가 많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를 쓸 뿐이다. 노력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운이 좋으면 더 많은 선택지를 갖게 된다. 심지어는 애초에 선택지가 많은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모두의 현재는 그렇게 운이 좋거나 부단히 애쓴 결과이니, 너무 과신할 필요도 고민할 필요도,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런 식으로 나는 변호사가 되었고, 저마다는 저마다의 인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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