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우석 Feb 14. 2020

법리는 쉬울지 몰라도 사람은 어려운 법

이혼 사건의 실재

(커버 이미지 출처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51)


1. 의뢰인은 단호했다. 오랜 시간을 생각했고, 수많은 주변인들과 상의했고 결국은 선택하게 되었다며 나를 찾았다. 이혼이었다. 사유는 많았다. 의뢰인은 재산분할도, 위자료도 필요 없다고 했다. 당장 이 사람과의 모든 법적인 인연을 정리하고 싶다. 이 사람은 이혼을 원치 않지만 나는 참을 만큼 참았다. 이제는 용서의 문제가 아니니 법적인 절차에 따라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당장 소송에 착수해 달라고도 했다. 나는 일사천리로 소장을 작성했다.  


2. 오전 7시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처음에는 자느라 받지 못했고 그다음에는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았다. 급기야 문자가 왔을 때는 콜백을 해야만 했다. 오늘 당장 이혼하고 싶다는 사람이었다. 누구의 소개로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는 배우자라고 했다. 배우자가 먼저 연락하기 전에 본인이 먼저 컨택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준비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하니 오전 8시까지 우리 집 앞으로 오겠다고 한다. 대충 준비를 하고 나갔다. 2시간의 긴 상담을 하면서 거의 동시에 나는 일사천리로 소장을 작성했다.


3. 제가 양육권을 가져올 수 있을까요, 의뢰인은 다급했다. 양육권 다툼은 이러저러하다는데, 다른 변호사는 이렇다던데 본인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만 데려올 수 있다면 자신은 아무것도 필요 없단다. 이미 별거한지는 오래고 배우자와는 연락도 하고 싶지 않다. 아이는 현재 배우자가 기르고 있고 본인은 주말에만 아이를 데려와 함께 있는데, 이 모든 지긋지긋한 과정을 정리하고 싶다. 당장, 간단하게라도 이혼 소장과 양육권 청구를 주장해달라 하여, 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일사천리로 소장을 작성했다.


우리 사무실이 이혼 전문 로펌이 아니고 나는 가사 전담 변호사도 아니지만, 상담이 들어오는 사건들 중 상당한 비율로 '이혼'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는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변호사를 찾아오지만, 협의 단계에서도 이견이 있거나 신청서를 깔끔하게 작성하기 위하여 변호사를 찾는다. 어쨌든 이혼 사건은 가장 흔하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분쟁의 유형이다.


이혼 사건은 법리적인 검토가 아주 오래 필요하지는 않다. 이 견해는 물론 개인적인 것이지만 대부분의 변호사님들도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 가장 복잡한 것은 재산분할이겠지만 그것도 법리적인 검토라기보다는 재산의 목록과 재산의 가액, 분할의 방법과 비율 등을 결정하는 지극히 테크니컬한 부분의 복잡함이지 그 안에서 엄청난 법리적 판단이 개입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민법 중 상당히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족법 파트에서 상속에 관한 법리를 빼고 남는 것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혼(과 그 제반 권리관계에 관한) 사건은 변호사가 수임해서 소장을 작성하기까지의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몇 안 되는 유형이라 하겠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이혼 사건을 간단하고 쉽다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법리는 쉬울지 모르지만 사람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부분 소송이 그렇지만 이혼, 가사는 더욱 그렇다.


연애의 메커니즘을 돌이켜보자. 연애를 한 적이 없다면 일단 눈물을 닦고 짝사랑의 감정을, 다시 떠올려보자. 제대로 된 사랑의 감정을 가졌다면 애정이 싹트는 순간, 서운한 순간, 미워지는 순간, 미움이 다시 눈 녹듯 녹는 순간, 그래서 애정이 더 커지는 순간, 이런 순간들의 반복, 그러다 보니 애정과 미움의 어딘가에서 나도 나를 잘 모르겠고 내 감정을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연애가 이럴진대, 그 과정을 거쳐 결혼에 골인한 사람들이 그 과정을 다 되감기 하여 그것도 법원의 재판을 통해 헤어지고자 하는 것이다. 그 감정의 소모와 기복을, 과연 제3자는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소송의 절차 중 대개 당사자들의 감정은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뜨거운 얼음' 같은 것이다. 운동 후 냉찜질이 좋겠다가도 얼음찜질이 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것은 계속 변한다. 변호사는 그 기복에 맞게 적정선을 유지하면서 감정을 헤아리고 때로는 직언도 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그 물타기도 쉽지 않다. 차라리 첨예한 법리로 다투는 사건이 나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물론 그렇지도 않다).  


위 3가지 사례의 당사자는 모두 달랐다. 하지만 현시점에서의 결론은 모두 같다. 세 케이스 모두, 배우자와 혼인 관계를 유지하며 잘 살고 있다. 분쟁의 불씨야 당연히 있겠지마는, 나는 이제 저분들의 긴박함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심호흡을 권하고 시간을 두고 더 생각할 것을 건의한다. 이른 아침에 미팅을 잡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나열하자면 많다. 절대로 이혼하고 싶지 않다. 절대로 아이를 키울 수 없다. 재산 분할은 더 유리하게 되어야 한다. 위자료는 반드시 받아내고야 말 것이다.


이런 주장들이 소송의 진행 중, 아니 소장이 들어가기 전에도 정반대로 바뀌는 경우를 왕왕 본다. <21 아이덴티티>까지는 아니라도, 어쨌든 '내 안에 너 있다' 정도는 된달까.


사람을 대하는 것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타입인 데다가, 사람과 상황을 판단하는데 탁월한 능력(통찰력)을 지녔다고, 나는 스스로를 생각해왔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그런 능력이라는 게 얼마나 허상과도 같은 것인지, 오늘도 겸손을 배우며 일한다. 사람은 너무 어려운데, 어렵다는 것을 각오하고 접근해도 언제나 그 이상으로 어렵다. 실제로는 결코 풀 수 없는 문제라고, 하지만 풀고 싶어 미치겠는 문제라고 되뇌어 본다.









이전 08화 선택은 우리 몫이 아니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