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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우석 Feb 15. 2020

스페셜리스트 딜레마

전문가의 자세, 전문가를 대하는 자세에 관하여

다소 허울뿐인 상황에 놓여있지만(변호사가 3만 명을 넘었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 이와 관련해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그래도 전문직' 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하는 것들이다. 필드에 투입된 직후 이 말을 들을 때면, 뭔가 드디어 이 사회에서 내가 '스페셜리스트'의 반열에 올랐나 싶은 어깨뽕을 경험하곤 했다. 물론 그때는 정말 자격증만 들고 있는 수준일 뿐이었고, 지금은 조금 낫지만 나 자신을 '스페셜리스트'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겠다. 내가 나를 그렇게 믿는가 와는 별개로 말이다.


어쨌든 사회에서 '전문직'이라고 불리는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으니 여러 가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의뢰인과의 크고 작은 갈등은 컨트롤하기 어려운 고난도의 문제다. 이건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의뢰인과 전문가 사이의 서로 다른 입장과 태도에서 기인한다. 요컨대, '스페셜리스트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다.


2020. 2. 14. 방영한 핸섬 타이거즈에서도 이러한 딜레마는 드러났다. 지난 글(https://brunch.co.kr/@woosswooss/8) 에서 서장훈 감독을 성토한 적이 있는데, 이번화에 생긴 갈등에 관해서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갈등의 표면적인 구도는 이상윤 VS 서장훈이었다. 대회 실전을 앞둔 마지막 평가전, 문수인이 없다고는 해도 상대방에게 참패를 당하는 상황에서 쉽게 불거질 수 있는 가벼운 말다툼이었다. 


농구 전문가(말이 전문가지 우리나라 역사에서 농구를 제일 잘한 사람(중 하나)이다) 서장훈은 자신이 그동안 여러 차례 숙지할 수 있게 훈련한 패턴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대해 불만을 가졌고 그 질책이 이상윤을 향했다. 반면 이상윤은 이제 한 달 정도, 동호회 농구 대회를 난생 처음 제대로 준비한 농구 좋아하는 연예인일 뿐이다. 실전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패턴이 무수히 깨지는 과정을 경험했고, 그 과정 중에는 본인의 실수도 있었지만 상대의 좋은 대처, 짧은 공격 제한 시간, 그리고 같은 편의 미숙한 수행능력 때문인 경우도 있었다. 서장훈의 질책이 부당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말다툼은 길지 않았지만 임팩트는 있었다. 태도에 관하여 논하기 시작하면 갑론을박이 있을 것이기에 상황만을 놓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무수한 전문가-의뢰인(고객)의 다툼이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왜 쟤는 내 마음을, 상황을, 내가 원하는 것을 몰라주는가 하는 것이다. 너한테는 쉬울 수 있지만 나한테는 어려울 수 있는 바로 그 일 말이다. 스페셜리스트의 입장은 간단하다. 그럴 거면 왜 나한테 부탁을 했지?


다시 핸섬 타이거즈로 돌아가 보자. 서장훈이 조금만 더 유하게, 분위기를 밝게 해 주면 좋겠지만 현역 시절의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모습은 거의 박장대소급 임을 알고 있다. 서장훈은 어쨌든 이 팀을 가지고 결과를 내기 위해 존재하는 스페셜리스트이고, 강한 팀들을 상대로 몇 가지 패턴이 당연히 수행되어야만 승리 가능성이 담보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의 눈높이가 어딘가 잘못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선수들은 최고의 전문가가 시키니까 일단은 열심히 따라가 보는 상황인데, 누적된 패배는 자신감의 결여와 전문가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돌아온다.


소송 대리인, 또는 변호인(이 두 가지는 명백히 다르다, 나중에 다른 글에서 한 번 정리할 것이다)을 사임하는 경우가 있다. 쉬이 일어나는 케이스는 아니다. 상당히 찝찝하고, 우울하기도 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의뢰인과 내가, 서로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모든 전문직이 그렇겠지만, 변호사는 상당히 다양한 스타일로 일한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르게 접근하고, 전혀 다른 형태의 서면을 쓰기도 한다. 꽤나 개성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이다. 다만, 그 스타일 때문에 생기는 의뢰인과의 케미스트리 문제는 항시 존재한다. 원하는 대로 해주기를 원하는 의뢰인에게, 내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변론하는 변호사는 맞지 않는 것이다(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스페셜리스트의 딜레마'가 그렇다.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는 하지만 오히려 전문가의 도움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과정에서부터 삐걱거림이 생기는 것이다. 삐걱거리는 과정을 통해 좋은 결과가 창출될 확률은 희박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만 굳이 왜 모로 가야 하는지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스페셜리스트도, 그의 도움을 청한 의뢰인도 지치고 힘들기만 하다.


이상윤과 서장훈의 갈등은 순간적인 것이고, 아마 쉽게 봉합될 것으로 본다(문수인이라는 완벽한 치료제가 있다). 하지만 '의사-환자'의 관계와 같이 판단과 수행이 모두 스페셜리스트의 몫이고 이를 위한 지식과 정보의 불균형이 현저히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언제든 스페셜리스트의 딜레마는 발생할 수 있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필요적 변호사 변론주의'를 채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든지 재판에 참여하고 그 과정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전문가를 대하는 사람의 자세에 관해서도 생각해본다. 우리가 찾은 전문가는 당연히 우리에게 베네핏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좋은 결과를 좇기 위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노하우를 사용해주는 사람이다. 반드시 전부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그 프로세스에 대한 그들의 이해도는 인정받아야 한다. 


전술한 대로 나는 내가 비로소 스페셜리스트가 되었나 하는 자뻑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의 자세는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안다. 언젠가, 변호사란 '의뢰인이 하고 싶은 말을 법률적인 언어로 바꾸어 유효하게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일종의 통역이나 번역가와 유사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리의 스탠스는, 아마 그 정도일 때 가장 빛이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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